친교실

제목 욕설과 퓨전한글(?) 2013년 11월 14일
작성자 장혜숙

 

 거리를 다니는 중에 어디에서나 욕하는 소리를 자주 듣게 된다. 근래에 거리에서 많이 익숙해진 욕들이지만 아직도 욕 소리가 들리면 귀가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지하철 안에서 마주 위치한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욕으로 대화하는 소리를 본의 아니게 듣게된다. 맞다. 화가 나서 내뱉는 단순한 욕 한 마디가 아니라, 욕으로 이어가는 대화이다. 바라보는 나는 움찔 놀라고, 거침없이 욕지거리를 웃으며 이어가는 아이들은 자연스런 모습이다.

아이들의 인물을 관찰해보면 정말 예쁘고 단정하게 생긴 여학생, 인물도 체격도 멋진 남학생, 볼에 아직 젖살이 남아있는 귀여운 어린 학생들, 그 모습에 나는 또 깜짝 놀란다. 거칠고 밉상인, 우락부락한 인상, 그런 모습에서 나오는 욕이라면 크게 놀라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이들은 어쩜 그렇게 하나같이 다 예쁘고 멋진지, 그 아이들이 욕으로 대화를 이어간다는 것이 나는 정말 이해할 수 없다. 이런 내가 늙고 촌스러운 사람이라 신세대를 이해하지 못해서 그러는 것일까.

말공대를 잘하는 어린 손녀를 생각해본다. 지금 욕이 빠지면 말을 이어가지 못하는 아이들도 다 그렇게 예쁜 어린아이였었겠지. 말공대를 잘한다고 칭찬을 받기도 했던 예쁘고 순한 어린아이였었을텐데...

말은 살아서 흘러가는 시대의 언어이니 아마 지금의 욕설문화도 얼마쯤 흐르고 흘러가다보면 그것이 욕설이 아닌 일상의 대화로 받아들여질지도 모르겠다. 그런 날이 정말로 올까? 아닐 것이다. 그렇게 돼서는 안된다는 사람도 다수이니, 우리 말이 거친 욕으로 바뀌는 것을 막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는 무리들도 많이 있으니, 우리 말의 곱고 아름다움은 훼손되지 않을 것이다.

(주제가 되는 욕을 옮기지 않으니 참 엉성한 글이 되었는데, 욕은 단어 한 마디도, 짧은 대화 한 줄도 옮겨 쓸 자신이 없다. 욕이라면 이렇게 나처럼 옮기는 것조차 할 수 없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많을 것이다가 아니라 그런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거리에는 말 만큼이나 많은 글자들이 넘쳐난다. 이정표, 상호를 적은 간판, 홍보용 플래카드, 각종 광고 문구 등 많은 글자들이 눈에 띤다. 언제부터인가 이 글자들은 우리가 흔히 사용하던 낯익은 글자가 아닌 새롭게 디자인된 이미지 글자가 많아졌다. 어떤 글자체는 정말 멋져서 넋놓고 감상할 때도 있고, 또 어떤 글자체는 눈에 거스르기도 한다. 마음에 들거나 싫거나 하는 것은 보는 사람마다 다 다른 개인차가 있는 게 당연하다. 서로서로 기호가 다르니까 문자 디자인을 보는 눈도 다 다를 것이다.

글자에는 많은 서체가 있고, 상형문자인 한자도 곧 디자인 글자라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 화원들은 문자도를 그리기도 했고, 이응노 화백은 문자 자체가 바로 추상화라고도 했다. 그렇게 글자는 기호화된 그림이니 많은 디자인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그 동안은 단순한 몇 가지의 글자체를 상용해왔고, 우리들은 아주 적은 종류의 서체를 통용하는데 큰 불편을 느끼지 않았다.

컴퓨터 시대에 와서도 먼저 개발된 서체를 여럿이 함께 써왔었는데, 점차 그 쓰임의 범위가 넓어지고 블로거들은 개성적인 글자를 사용하려고 남이 애써 개발한 서체를 찾아 마음 대로 사용하게 되었다. 지금 거리에 넘쳐나는 이미지화된 글자들은 디자인에 민감한 현대인들의 개성과 더불어 어쩌면 폰트의 저작권 강화가 맞물려 생겨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이것도 역시 시대의 흐름이다. 폰트 저작권 도용 문제가 커지며 출간되는 책들은 저마다 다른 디자인의 글자로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데 이런 현상으로 책이 더 아름다워지기도 하고, 잘 못 사용하면 아주 어색하게 되기도 한다.

요즘은 여러 문화센터에서 캘리그라피 강좌를 개설하고 새롭고 멋진 글자체를 가르치고,  배우고 있다. 현재의 개성 강한 이 글자체들이 이러저러하게 변하며 흘러가다가 어느 시점에서 한글의 정형화된 모습은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교보문고 광화문 글판에 나붙은 아름다운 문장을 바라보는 세종대왕이 '저건 무슨 글자인고?'하는 질문을 던질지도...

이것도 순전히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우리 글자에 서양의 디자인 감각을 가미하여 만들어진 퓨전한글(?)이 눈에 거스를 때가 많다. 캘리그라피라는 예술의 한 장르로 대접받는 당당한 글자가 왜그렇게 낯설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내가 적응할 수 있는 적정 기준은 도대체 어느 정도일까. 내가 흔하디 흔한 욕설도, 새로운 글자체도 편안하게 수용할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

어쨋든 흘러가는 것들, 말과 글, 글자의 모습, 모두는 흐르고 흘러 변화된 모습으로 바뀔 것이다. 바뀐 것에 전혀 거부감도 없을테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나는 그 흐름을 발 빠르게 쫓지 못하는 촌스러운 구식 할머니이다. 글자가 어찌 변하든, 아이들이 욕지거리에 익숙해지든, 어쨋든 아주 오랜만에 나의 데스크 탑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이 짧은 시간이 마냥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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