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이육사시인 70주기를 기념하여(1944.1.16) 2014년 06월 30일
작성자 나눔

청포도

이육사

 

내 고장 7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절이주절이 열리고

먼데 하늘이 꿈 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 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두렴.

 

 

절정

이육사

 

매운 계절의 채쭉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리빨 칼날진 그 우에서다

 

어데다 무릅을 끓어야 하나

한발 재겨 디딜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광야

이육사

 

하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때도

참아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 없는 광음을

부즈런한 계절이 피여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나리고

매화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리리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꽃(유작시)

이육사

 

동방은 하늘도 다 끝나고

비 한방울 나리잖는 그때에도

오히려 꽃은 빨갛게 피지 않는가

내 목숨을 꾸며 쉬임 없는 날이여

북쪽 쓴드라에도 찬 새벽은

눈속 깊이 꽃 맹아리가 옴지거려

제비떼 까맣게 날라오길 기다리나니

마침내 저바리지 못할 약속이여

 

한 바다복판 용솟음 치는 곳

바람결 따라 타오르는 꽃성에는

나비처럼 취하는 회상의 무리들아

오늘 내 여기서 너를 불러 보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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