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꿈을 비는 마음(문익환) 2013년 04월 18일
작성자 나눔

꿈을 비는 마음 

문익환

개똥같은 내일이야
꿈 아닌들 안 오리오 마는
조개속 보드라운 살 바늘에 찔릴듯한
상처에서 저도 몰래 남도 몰래 자라는
진주같은 꿈으로 잉태된 내일이야
꿈 아니곤 오는 법이 없다네.

그러니 벗들이여,
보름달이 뜨거든 정화수 한 대접 떠 놓고
진주같은 꿈 한 자리 점지해줍시사고
천지신명께 빌지 않으려나.

벗들이여,
이런 꿈은 어떻겠오.
155마일 휴전선을
해뜨는 동해바다 쪽으로 거슬러 오르다가 오르다가
푸른 바다가 굽어보이는 산정에 다달아
국군의 피로 뒤범벅이 되었던 북녘 땅 한 삽
공산군의 살이 썩은 남녘 땅 한 삽씩 떠서
합장을 지내는 꿈.
그 무덤은 우리 오천만 겨레의 순례지가 되겠지.

그앞에서 눈물을 글썽이다보면
사팔뜨기가 된 우리의 눈물이 제대로 돌아
산이 산으로, 내가 내로, 하늘이 하늘로,
나무가 나무로, 새가 새로, 짐승이 짐승으로,
사람이 사람으로 제대로 보이는
어처구니 없는 꿈 말이외다.

그도 아니면
이런 꿈은 어떻겠오
철들고 셈들었다는 것들은 다 죽고
동남동녀들만 남았다가
쌍쌍이 그앞에 가서 화촉을 올리고
- 그렇지 거기는 박달나무가 서있어야죠-
그박달나무 아래서 뜨겁게들 사랑하는 꿈, 그리고는
동해바다에서 치솟는 용이 품에 와서 안기는 태몽을 얻어
딸을 낳고
아침 햇살을 타고 날아오는
황금빛 수리에 덮치는 꿈을 꾸고
아들을 낳는
어처구니 없는 꿈 말이외다.

그도 아니면
이런 꿈은 어떻겠오.
그무덤 앞에서 샘이 솟아
서해바다로 서해바다로 흐르면서
휴전선 원시림이
압록강 두만강을 넘어 만주로 펼쳐지고
한려수도를 건너뛰어 제주도까지 뻗는 꿈,
그리고 우리 모두
짐승이 되어 산과 들을 뛰노는 꿈,
새가되어 신나게 하늘을 나는 꿈,
물고기가 되어 펄떡펄떡 뛰며 강과 바다를 누비는
어처구니 없는 꿈 말이외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신명님 비나이다.
밝고 싱싱한 꿈 한 자리,
평화롭고 자유로운 꿈 한 자리,

부디 부디 점지해주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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