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삶에 관한 시들 2014년 11월 10일
작성자 들꽃

우리는 호수랍니다

문익환

 

하늘에선 찬란하기만 하던 별들도

우리의 가슴 속에 내려와선

서로 쳐다보며 서러워지는

우리는 호수랍니다

 

배고픈 설움으로

남의 배고픈 설움에 서로 눈물짓는

가녀린 마음들

방울방울로 솟아나고 흐르고 모여

하늘이 땅이 되고 땅이 하늘이 되는

우리는 호수랍니다

 

그뭄밤 풀벌레 소리 들으며

서러워지던 별들

풀이파리에 이슬로 맺혔다가

아침 햇살을 받아

뚝뚝 떨어져 땅속으로 스며

실날 같은 사랑으로 어울려

하늘처럼 맑은 우리는

호수랍니다.

 

 

하느님의 바보들이여

문익환

 

어떤 일이 있어도 늙어서는 안 됩니다

언제까지라도 젊어야 합니다

싱싱하게 젊으면서도 깊어야 합니다

바다만큼 되기야 어찌 바라겠습니까마는

두세 키 정도 우물은 되어야 합니다

어찌 사람뿐이겠습니까

마소의 타는 목까지 축여주는 시원한 물이

흥건히 솟아나는 우물은 되어야 합니다

높은 하늘이야 쳐다보면서

마음은 넓은 벌판이어야 합니다

탁 트인 지평선으로 가슴 열리는

벌판은 못돼도 널찍한 뜨락쯤은 되어야 합니다

오가는 길손들 지친 몸 쉬어갈

나무 그늘이라도 있어야 합니다

덮썩 잡아주는 손과 손의 따뜻한

온기야 하느님의 뛰는 가슴이지요

물을 떠다 발을 씻어주는

마음이야 하느님의 눈물이지요

냉수 한 그릇에 오가는 인정이야

살맛 없는 세상 맛내는 양념이지요

이러나 저러나 좀 바보스러워야 합니다

받는 것보다야 주는 일이 즐거우려면

좀 바보스러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바보스런 하느님의 바보들이여.

 

 

하나님은 울고 계시네

김소엽

 

이 시대에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자 있는가

이 시대에

바알 우상과 싸우는 엘리야는

어디 있는가

이 시대에

사회 정의를 위해 싸운

아모스는 어디 있는가

 

밖에는 붉은 십자가

땅 위에 떨어진 별처럼 많지만

사자굴에 들어갈

다니엘은 어디에 있는가

 

예레미야의 통곡 소리

사막의 고벨화를 적시고

삼천리 강산

진달래 꽃송이

빨갛게 울음으로 물들인다 해도

누가 이 시대를 진정 아파하랴

 

깨어 일어나라

하나님의 자녀들아

하나님이 울고 계시는데

아버지가 울고 계시는데

 

닭이 울기도 전에

수없이 변절하는 아들아

깨어 일어나라

곧 새벽이 밝으리니.

 

 

내 혼에 불을 놓아

이해인

 

언제쯤 당신 앞에 꽃으로 피겠습니까

불고 싶은 대로 부시는 노을빛 바람이여

봉오리로 맺혀 있던 갑갑한 이 아픔이 소리 없이

터지도록

그 타는 눈길과 숨결을 주십시오

기다림에 초조한

내 비밀스런 가슴을 열어놓고 싶습니다

나의 가느다란 꽃술의

가느다란 슬픔을 이해하는

은총의 바람이여

당신 앞에 "네"라고 대답하는 나의 목소리는

언제나 떨리는 11월입니다

고요히 내 혼에 불을 놓아

꽃으로 피워내는 뜨거운 바람이여.

 

 

마른 뼈의 기도

이현주

 

참으로 마른 해골입니다

바람 한 점 없는 골짜기에

쌓여 있는 먼지처럼 누워 있는 마른 해골입니다

일어날 수 없어 일어나겠다는 생각조차 없어

호올로 세월처럼 먼지처럼 쌓여만 있는

음침한 골짜기의 마른 해골입니다

 

당신의 신선한 바람을 보내주십시오

생명의 물기 머금은 신선한 당신의 바람은

지금 어느 강가의 버드나무 숲에서

비둘기 깃털 나부끼며 한가로이 노닐고 계시옵니까?

 

어서 오십시오, 당신은 어서 오십시오

후미진 이 골짜기 너무 오랫동안

바람 한 점 불지 않아 마른 뼈는

제 무게에 눌려 자꾸만 자꾸만 가라앉습니다

 

아아, 당신의 바람이여

서쪽 하늘 가로질러 급히 오십시오

당신의 생명, 바람으로 불어

버려진 해골의 콧구멍에 화살처럼 박히면

뼈는 뼈와 더불어 춤추며 비린내나는 살을 찾아

손을 잡고 춤을 추며 푸른 갈대 꺽어 당신을 노래하리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직 마른 해골

잊혀진 세월처럼 누워 있는 뼈입니다

어서 오십시오, 생명의 물기 머금은

신선한 바람으로 불어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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