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천상병시인의 명시들. 2014년 04월 22일
작성자 나눔

강물

천상병

 

강물이 모두 바다로 흐르는 까닭은

언덕에 서서

내가

온종일 울었다는 그 까닭만은 아니다

 

밤새

언덕에 서서

해바라기처럼 그리움에 피던

그 까닭만은 아니다

 

언덕에 서서

내가

짐승처럼 서러움에 울고 있는 그 까닭은

강물이 모두 바다로만 흐르는 그 까닭만은 아니다.

 

 

귀천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새소리

천상병

 

새는 언제나 명랑하고 즐겁다

하늘밑이 새의 나라고

어디서나 거리낌 없다

자유롭고 기쁜 것이다

 

즐거워서 내는 소리가 새소리다

그런데 그 소리를

울음소리일지 모른다고

어떤 시인이 했는데 얼빠진 말이다

 

새의 지저귐은

삶의 환희요 기쁨이다

우리도 아무쪼록 새처럼

명랑하고 즐거워하자!

 

즐거워서 내는 소리가

새소리이다

그 소리를 괴로움으로 듣다니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놈이냐

 

하늘 아래가 자유롭고

마음껏 날아다닐 수 있는 새는

아랫도리 인간을 불쌍히 보고

아리랑 아리랑 하고 부를지 모른다.

 

 

미소

-새

천상병

 

입가에 흐뭇스레 진 엷은 웃음은

삶과 죽음 가에 살짝 걸린

실오라기 외나무다리

 

새는 그 다리 위를 날아가다

우정과 결심 그리고 용기

그런 양 나래 저으며

 

풀잎 슬몃 건드리는 바람이기보다

그 뿌리에 와 닿아주는 바람

이 가슴팍에서 빛나는 햇발

 

오늘도 가고 내일도 갈

풀밭 길에서

입가 언덕에 맑은 웃음 몇번인가는

 

햇빛 반짝이는 언덕으로 오라

나의 친구여

언덕에서 언덕으로 가기에는

수많은 바다를 건너야 한다지만

 

햇빛 반짝이는 언덕으로 오라

나의 친구여.

 

 

한 가지 소원

천상병

 

나의 다소 명석한 지성과 깨끗한 영혼이

흙 속에 묻혀 살과 같이

문들어지고 진물이 나 삭여진다고?

 

야스퍼스는

과학에게 그 자체의 의미를 물어도

절대로 대답하지 못한다고 했는데

 

억지 밖에 없는 엽전 세상에서

용케도 이때컷 살았나 싶다

별다른 불만은 없지만

 

똥걸레 같은 지성은 썩어 버려도

이런 시를 쓰게 하는 내 영혼은

어떻게 좀 안될지 모르겠다

 

내가 죽은 여러 해 뒤에는

꾹 쥔 십원을 슬쩍 주고는

서울길 밤버스를 내 영혼은 타고 있지 않을까?

 

 

우리집 뜰의 봄

천상병

 

오늘은 91년 4월 25일

뜰에 매화가 한창이다

라일락도 피고

홍매화도 피었다

 

봄 향기가 가득하다

꽃송이들은

자랑스러운듯

힘차게 피고 있다

 

봄기풍이 난만하고

천하를 이룬 것 같다.

 

 

봄빛

천상병

 

오늘은 91년 4월 14일이니

봄빛이 한창이다

 

뜰의 나무들도

초록색으로 물들었으니

눈에 참 좋다

 

어떻게 봄이 오는가?

그건 하느님의 섭리이다

 

인생을 즐겁게 할려고

봄이 오고 꽃이 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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