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기도 등(김수영시인) 2014년 05월 01일
작성자 나눔

기도

- 4.19 순국학도 위령제에 부치는 노래

김수영

 

시를 쓰는 마음으로

꽃을 꺾는 마음으로

자는 아이의 고운 숨소리를 듣는 마음으로

죽은 옛 연인을 찾는 마음으로

잃어버린 길을 다시 찾은 반가운 마음으로

우리가 찾은 혁명을 마지막까지 이룩하자

 

물이 흘러가는 달이 솟아나는

평범한 대자연의 법칙을 본받아

어리석을 만치 소박하게 성취한

우리들의 혁명을

배암에게 쐐기에게 쥐에게 살쾡이에게

진드기에게 악어에게 표범에게 승냥이에게

늑대에게 고슴도치에게 여우에게 수리에게 빈대에게

다치지 않고 깍이지 않고 물리지 않고 더럽히지 않게

 

그러나 정글보다도 더 험하고

소용돌이보다도 어 어지럽고 해저보다도 더 깊게

아직까지도 부패와 부정과 살인자와 강도가 남아 있는 사회

이 심연이나 사막이나 산악보다도

더 어려운 사회를 넘어서

 

이번에는 우리가 배암이 되고 쐐기가 되더라도

이번에는 우리가 쥐가 되고 살쾡이가 되고 진드기가 되더라도

이번에는 우리가 악어가 되고 표범이 되고 승냥이가 되고 늑대가 되더라도

이번에는 우리가 고슴도치가 되고 여우가 되고 수리가 되고 빈대가 되더라도

아아 슬프게도 슬프게도 이번에는

우리가 혁명이 성취되는 마지막날에는

그런 사나운 추잡한 놈이 되고 말더라도

 

나의 죄 있는 몸의 억천만 개의 털구멍에

죄라는 죄가 가시같이 박히어도

그야 솜털만치도 아프지는 않으리니

 

시를 쓰는 마음으로

꽃을 꺾는 마음으로

자는 아이의 고운 숨소리를 듣는 마음으로

죽은 옛 연인을 찾는 마음으로

잃어버린 길을 다시 찾는 반가운 마음으로

우리는 우리가 찾은 혁명을 마지막까지 이룩하자.

 

 

김수영

 

나에게 30원이 여유가 생겼다는 것이 대견하다

나도 돈을 만질 수 있다는 것이 대견하다

무수한 돈을 만졌지만 결국은 헛 만진 것

쓸 필요도 없이 한 3,4일을 나하고 침식을 같이한 돈

- 어린 놈을 아귀라고 하지

그 아귀란 놈이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집어갈 돈

풀방구리를 드나드는 쥐의 돈

그러나 내 돈이 아닌 돈

하여간 바쁨과 한가와 실의와 초조를 나하고 같이한 돈

바쁜 돈 -

아무도 정시하지 못한 돈 - 돈의 비밀이 여기 있다.

 

 

나의 가난은

천상병

 

오늘 아침을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는 것은

한 잔의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값이 남았다는 것

 

오늘 아침을 다소 서럽다고 생각는 것은

잔돈 몇 푼에 조금도 부족이 없어도

내일 아침 일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난은 내 직업이지만

비쳐오는 이 햇빛에 떳떳할 수가 있는 것은

이 햇빛에서도 예금통장은 없을 테니까...

 

나의 과거와 미래

사랑하는 내 아들딸들아

내 무덤가 무성한 풀섶으로 때론 와서

괴로았을 그런대로 산 인생 여기 잠들다 라고

씽씽 바람 불어라.

 

 

아기비

천상병

 

부실부실 아기비 나리다

술 한 잔 마시는데 우산 들고 가니

아기비라서 날이 좀 밝다

 

비는 부처님이나 예수님도 맞았겠지

공도 없고 사도 없는 비라서

자연의 섭리의 이 고마움이여!

 

하늘의 천도따라 오시는 비를

기쁨으로 모셔야 되리라

지상에 물없이는 하루도 못사는 것을.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리고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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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연정(14 05-02 09:05)
좋은 시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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