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구월의 첫날에(펌) 2014년 09월 01일
작성자 들꽃

늦가을에서 초겨울로 접어드는 요즘! 짬을 내서 시집들을 읽기 시작했다.. "이용도목사 글모음 是無言", "정호승시집", "천상병시집  요놈,요놈,요이쁜놈“  등등....

"이용도목사 글모음 시무언"은 아주 오래전부터 구할려고 노력했는데 이미 절판됐기 때문에 구하지 못했었는데 얼마 전 헌 책방을에서 우연히 발견했다. 마치 보물을 발견한 것처럼 기뻤다.

이 책에는 이용도목사의 시뿐만 아니라 일기, 편지, 번역문 등 주옥같은 글들이 실려있다. 일제시대 부흥운동의 큰 축을 담당했던 예수님과 같은 나이에 돌아가신 이용도 목사님의 글들에는 영감이 담겨있었고 읽는 내게 큰 감동을 주고 있다.


"정호승시집"은 감수성 예민하던 20대 초반의 내게 진실한 사랑,신앙,역사에 대해서 느끼고 생각하게 해 줬던 시집이었다.

군 복무 시절 23살 였나.... 그 추운 강원도 산골에서 정호승시인의 시들을  적어 놓은 수첩이 아직도 있다. 지금은 가물가물 하지만 아마도 그 당시 내게 큰 영향을 끼쳤던 시집이라는 증거이다.

그 후 10년이 지나는 동안 책장에 꽂혀있었는데 이렇게 다시 이 가을에 정호승시집의 시들을 읽고 있다. 생각보다 시들이 추상적이고 좀 어렵게 느껴지지만 나름대로 통찰과 깊이가 있어서 좋다. 20대초반의 싱그런 감수성을 회복하는데 도움을 주리라 믿는다.

"천상병시집 요놈,요놈,요이쁜놈"도 역시 나의 민감한 감수성이 시대의 고민과 만나던 20대 중반의 내게 순수한 영혼 ,진실한 사랑,역사의식에 대해서 통찰을 주었던 참 재밌고 쉬운 시어가 인상적이었던 시집이었다. 그 당시 내가 읽고 너무 좋아서 군대가는 후배에게 내가 읽은 시집을 선물했었던 기억이 난다.


정호승시인의 시들과 달리 천상병시인의 시들은 구체적이고 참 쉽다. 그래서 술술 잘 읽힌다. 지난 겨울에 천상병시인의 산문집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정말 책 제목 잘 붙힌다^^)를 읽어서 시인의 문학에 대한 소견을 잘 이해하고 있어서 그런지 정말 시 한 편 한 편이 가슴에 들어와 박힌다. 천상병시인의 시들을 읽으면 시인의 순수한 영혼이 내 안에 들어와서 내 영혼을 맑게 해 주는 것 같다. 잔잔한 기쁨이 샘솟는다.

가을이 깊어간다.  누구나 젊은 시절 마음에 깊은 감동을 준 시집이 한 권쯤을 있을 것이다. 세파로 인하여 우리의 감수성이 무뎌지고 때 묻기도 하는데 머리보다 가슴으로 느끼고 싶은 이 가을에, 얼마 남지 않은 이 가을에 젊은 날의 순수가 담겨있는 추억의 시집 한 권 꺼내서 읽어 보면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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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   -정호승-

이제는 홀로 밥을 먹지 않게 하소서
이제는 홀로 울지 않게 하소서
길이 끝나는 곳에 다시 길을 열어주시고
때로는 조그만 술집 희미한 등불 곁에서
추위에 떨게 하소서
밝음의 어둠과 깨끗함의 더러움과
배부름의 배고픔을 알게 하시고
아름다움의 추함과 희망의 절망과
기쁨의 슬픔을 알게 하시고
이제는 사랑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소서
리어카를 끌고 스스로 밥이 되어
길을 기다리는 자의 새벽이 되게 하소서




정호승의 소설 <연인>중에서


무심한 게 아니라 그냥 일상을 유지한 거야

사랑이란 오래 갈수록 처음처럼 그렇게

짜릿짜릿한 게 아니야. 그냥 무덤덤해지면서

그윽해지는 거야. 아무리 좋은 향기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나면 그건 지독한 냄새야

살짝 사라져야만 진정한 향기야

사랑도 그와 같은 거야

사랑도 오래되면 평생을 같이하는 친구처럼

어떤 우정 같은 게 생기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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