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시인 예수 2014년 01월 11일
작성자 나눔과 섬김

시인 예수

정호승

 

그는 모든 사람을

시인이게 하는 시인

사랑하는 자의 노래를 부르는

새벽의 사람

해 뜨는 곳에서 가장 어두운

고요한 기다림의 아들

 

절벽 위에 길을 내어

길을 걸으면

그는 언제나 길 위의 길

절벽의 길 끝까지 불어오는

사람의 바람

 

들풀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용서하는 들녘의 노을 끝

사람의 아름다움을 아름다워하는

아름다움의 깊이

 

날마다 사랑의 바닷가를 거닐며

절망의 물고기를 잡아먹는 그는

이 세상 햇빛이 굳어지기 전에

홀로 켠 인간의 등불.

 

 

슬픔이 기쁨에게

정호승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 번도 평등하게 웃어주지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죽을 때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워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길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정호승

 

이 세상 사람들 모두 잠들고

어둠 속에 갇혀서 꿈조차 잠이 들 때

홀로 일어난 새벽을 두려워 말고

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라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겨울밤은 깊어서 눈만 내리어

돌아갈 길 없는 오늘 눈 오는 밤도

하루의 일을 끝낸 작업장 부근

촛불도 꺼져가는 어둔 방에서

슬픔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라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절망도 없는 이 절망의 세상

슬픔도 없는 이 슬픔의 세상

사랑하며 살아가면 봄눈이 온다

눈 맞으며 기다리던 기다림 만나

눈 맞으며 그리웁던 그리움 만다

얼씨구나 부둥켜 안고 웃어보아라

절씨구나 뺨 부비며 울어보아라

 

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어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

봄눈 내리는 보리밭길 걷는 자들은

누구든지 달려와서 가슴 가득히

꿈을 받아라

꿈을 받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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