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실

제목 상한 영혼을 위하여(고정희시인) 2014년 06월 09일
작성자 나눔

상한 영혼을 위하여

고정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 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라 상한 영혼이여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일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리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며 어딘들 못가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같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시집 <이 시대의 아벨>(1983)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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