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늘에 길을 묻다 | 2018년 12월 31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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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김기석 | |||||||
하늘에 길을 묻다 요즘 오래 전에 보았던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이 자꾸 그려진다. 카메라는 북극 탐험에 나선 탐험대의 일상을 비교적 상세하고 기록하고 있었다. 극지 탐험은 엄청난 체력과 인내력을 필요로 한다. 자칫 잘못하면 불귀의 객이 될 수도 있다. 어떤 이들은 왜 사람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극지에 가려 하는지 모르겠다고 불퉁거리기도 한다. 하지만 극지를 향하는 이들이야말로 인간 정신을 예리하게 벼리는 숫돌들인지도 모르겠다. 더께처럼 내려앉은 일상의 권태가 사람들의 영혼을 좀 먹을 때, 자기를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이들을 보면 큰 자극이 된다. 탐험대원들은 설맹에 걸리지 않기 위해 늘 고글을 착용해야 했고, 어떤 때는 100kg에 육박하는 썰매를 언덕 위로 끌어올려야 할 때도 있었다. 크레바스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했고, 극한의 추위에 백야까지 견뎌야 했다. 북극곰의 공격에도 늘 대비해야 했고. 그러나 탐험대는 시종 유쾌했다. 별 것 아닌 일에도 함께 웃었다. 상대방의 사소한 실수쯤은 웃음으로 덮어주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거기서는 상대를 피해 갈 곳이 전혀 없었고 죽으나 사나 함께 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카메라는 뜻밖의 장면을 담아내고 있었다. 탐험대 대장이 한 대원을 몹시 꾸짖고 있었다. 무슨 일일까? 꾸지람을 듣던 대원은 팀에서 GPS를 책임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좌표를 잘못 보는 바람에 대원들은 하룻길을 엉뚱한 곳으로 행군했던 것이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아차린 대장이 그 대원에게 “도시에서의 하루라면 별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하루는 우리 모두를 죽음으로 내몰 수도 있는 시간이다.“ 한 사람의 잘못으로 모든 사람의 생명이 위태로울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다큐멘터리는 그 탐험대가 그런 치명적 실수에도 불구하고 결국 목표지점에 도달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런데 그 다큐가 늘 내 마음을 떠나지 않는 것은 어쩌면 우리 시대의 종교인들이 맡고 있는 역할이 GPS 대원의 역할과 같은 게 아닐까 싶어서이다. 생각할수록 모골이 송연해진다. 우리는 하늘의 징조에 예민해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사람들을 죽음의 자리로 인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잠들어 있는 시간에도 깨어 있어야 하는 게 교회이다. 밤하늘을 밝히는 붉은 네온 십자가에게 모든 것을 맡기면 안 된다. 안타깝게도 한국교회는 GPS를 잃어버린 탐험대와 같다. 인간이 추구해야 할 마땅한 삶도 일깨우지 못하고,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목표조차 가늠하지 못한 채 욕망의 방향으로 맴돌이를 하도록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욕망은 맹목이어서 바른 방향을 찾지 못한다. 성경도 기도도 설교도 헌신도 과도한 욕망의 그릇에 담기면 변질되게 마련이다. 그릇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속을 깨끗이 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탐욕과 결별하는 일이다. 깨끗하게 결별할수록 자유의 공간은 넓어진다. 그때 새로운 시간이 우리 앞에 선물처럼 당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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