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컬럼

제목 마음이 회복되는 공간 2019년 01월 24일
작성자 김기석
마음이 회복되는 공간

문명 비평가인 리 호이나키는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에서 오늘날 권력과 부를 독점하려는 이들은 세 종류의 분리 혹은 고립을 만들어낸다고 지적한다. 그 사람들 혹은 기관들은 “사람을 그 육체와 장소와 시(詩)로부터 떼어놓고자” 노력한다는 것이다. 그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과학 기술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일상생활의 모든 부분에서 과학의 도움을 받아 살지만 정작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자본주의의 첨단에서 살아가는 이들일수록 직접적 감각체험으로부터 멀어진 채 살아간다. 현대인은 또한 어떤 장소와 유기적 관계를 맺지 못한 채 부평초처럼 떠돈다. 마을이 해체되면서 공동체적 삶 또한 무너졌다. 마을은 더 이상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가 고이는 장소가 아니다. 심지어는 집조차 가족들의 기억의 뿌리가 아니라 재산가치로서 기능할 뿐이다. 또한 풍요의 환상을 따르는 이들은 산문적인 현실에 충실할 뿐 시적 세계에서 노닐지 못한다. 일상은 성공이라는 목표 달성을 위한 기회일 뿐이다. 사람들은 일상 속에 깃든 신적 광휘를 보지 못한다. 시적 사고는 현실 부적응자들의 낭만적 퇴행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이런 소외의 결과 삶은 납작해졌고, 다른 삶에 대한 상상력은 고갈되었다. 오로지 주류 세계가 제시하는 길을 묵묵히 따라 달릴 뿐이다. 피로와 권태 그리고 무의미가 사람들을 확고히 사로잡고 있다. 자기 속의 여백이 사라지면서 타자를 환대할 수 있는 능력 또한 위축되었다. 타인들은 우리 삶의 토대를 흔들 수도 있는 존재로 인식된다. 그런 눈으로 바라보면 세상은 온통 기괴하고 낯선 이들이 우글거리는 장소이다. 그렇기에 유형적 무형적 담을 높이 쌓는다. 담은 타자 혹은 타자의 시선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지만, 동시에 우리 또한 담 너머의 사람들을 볼 수 없기에 의구심은 더 커진다. 그 때문에 낯선 이들에게 수치심을 안겨주거나 혐오를 드러내기도 한다. 위험사회는 이렇게 도래한다.

하지만 마음은 지속적인 긴장을 견딜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 마음은 기댈 언덕을 찾는다. 깃들 곳이라 해도 좋겠다. 그 곳에 가면 능력자가 아니어도 괜찮고, 은밀한 상처를 드러내도 괜찮고, 억누르고 있던 고함을 질러도 괜찮은 곳 말이다. 그런 곳을 고향이라 해도 좋겠다. 여기서 고향은 특정한 장소가 아니라 우리 마음이 쉴 수 있는 곳의 은유이다. 미쉘 푸코는 유토피아가 불가능한 세상에서 우리가 실질적으로 향유할 수 있는 현실적 공간을 헤테로토피아라 했다. 헤테로토피아는 ‘다른 공간’이다. 일상 속에 있으나 일상을 벗어난 공간 말이다. 헤테로토피아는 여행지일 수도 있고, 자기만의 은밀한 방일 수도 있으며, 마음이 지치면 찾아가는 특정한 장소일 수도 있다. 혹은 우리 마음의 기댈 언덕이 되어주는 어떤 존재일 수도 있다. 헤테로토피아는 우리 일상을 낯설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해준다.

6세기에 활동했던 성 베네딕도는 서양의 수도원 운동을 정초했다고 알려진 분이다. 그레고리오 대종은 <베네딕도 전기>를 통해 베네딕도의 가르침과 일화들을 후세에 전해주고 있다. 거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이야기는 오늘의 교회가 어떠한 곳이어야 하는지를 암시하고 있다. 로마의 귀족이었던 베데딕도는 환락에 빠진 로마 문명에 염증을 느끼고 수비아코라는 곳에 있는 동굴에 들어가서 수년 동안 기도에 전념했다. 그가 다른 수도사들을 지도하기 위해 몬테 카지노로 옮겨간 후에 벌어진 일이다. 정신이 온전치 않은 여인이 있었다. 바람이 불면 사방으로 돌아다니며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했다. 어느 날 그 여인은 우연히 베네딕도가 머물던 동굴에 들어와 하루를 머물렀다. 그 날 이후 여인의 정신은 온전해졌다. 이 신비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서술적 언어로 설명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이야기는 이야기 그 자체로 수용해야 한다. 

교회가 이런 공간이 될 수 있을까? 사람들의 영혼을 납작하게 하는 현실, 사람들로 하여금 영혼의 통전성을 잃게 만드는 현실에 지친 이들이 들어와 이런 회복의 기적을 경험하는 공간 말이다. 어떤 프로그램을 해서가 아니라 있음 그 자체로 사람들을 온전케 하는 교회,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하는 교회가 절실히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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