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컬럼

제목 눈먼 사람이 눈먼 사람을 인도하면 2019년 02월 18일
작성자 김기석
눈먼 사람이 눈먼 사람을 인도하면



16세기 유럽은 참 다이내믹했습니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의 여파로 세상이 크게 출렁이고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세상을 지배하던 하나의 권위가 무너지면서 세상은 혼돈 속으로 빠져드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가톨릭 신앙을 지키려는 영주들과 개신교를 받아들인 영주들 사이의 분쟁으로 유럽이 들끓었습니다. 개신교도 신학적 입장에 따라 크게 갈라졌고 세르베투스 처형 사건이나 재세례파 처형은 종교개혁자들이 극복하려 했던 대심문관의 부활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1572년에 벌어진 성 바돌로매 축일의 학살 사건은 신구교간의 전쟁의 서곡이었습니다. 각 종파들은 상대 진영을 악마화하기도 했습니다. 구원의 종교가 증오의 첨병이 된 셈입니다.

피테르 브뤼헬(Pieter Brugel the Elder, 1525~1569년)은 16세기의 플랑드르를 대표하는 화가입니다. 당시 네덜란드와 벨기에는 스페인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해상 무역을 통해 산업을 일으켰던 네덜란드는 자유와 관용이라는 가치를 지키려고 애썼습니다. 그래서 칼뱅주의자들을 맞아들였고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개신교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스페인의 펠리페2세는 네덜란드가 개신교 지역으로 바뀌는 것을 허용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대대적인 종교 박해가 일어났고, 많은 사람이 체포되어 처형되었습니다. 박해는 독립에 대한 꿈에 불을 질렀고, 80년에 걸친 독립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브뤼헬은 그런 격동의 시기를 살아가면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중세 화가들이 주로 다룬 소재는 성경과 신화의 인물이나 사건들입니다. 그러나 종교개혁은 화가들이 그런 주제에서 벗어나 인간의 현실을 담아낼 여백을 만들었습니다. 브뤼헬은 물론 종교화도 많이 그렸습니다. 그리고 일곱 가지 대죄를 알레고리 화풍으로 그리기도 했습니다. 해석의 여지가 참 많은 그림들입니다. 그러나 그를 대표하는 그림들은 풍속화들입니다. 농민 화가라는 칭호를 얻기도 했던 그는 플랑드르 지방의 농민들의 삶을 그림 속에 많이 담아냈습니다. 그의 그림은 일종의 풍속사라 할 수 있습니다. 그가 그려낸 ‘결혼 잔치‘, ‘아이들의 놀이‘, ‘사냥‘, ‘겨울 풍경‘ 등은 오늘의 우리에게 500년 전 사람들의 일상을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농촌의 삶에 대한 사실적이고 상세하고 따뜻한 관찰이 놀랍습니다. ‘결혼 잔치’에는 오랫동안 굶주렸는지 게걸스레 음식을 먹는 이들이 등장하고, 백 파이프를 들고 연주를 준비하는 악사의 모습도 보입니다. 그의 눈길은 음식을 나르는 사람들의 상을 훑고 있는데 그 빈약함을 보며 다소 놀라는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맥주를 부대로 옮겨 담고 있고, 바닥에 주저앉은 아이는 그릇을 손으로 훑고 있습니다. 테이블의 한 가운데 신부는 지친 표정으로 앉아 있습니다. ‘아이들의 놀이’를 보면 저절로 미소가 떠오릅니다. 마치 몇 십 년 전 우리나라의 풍경을 보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말타기 놀이, 기마전, 팽이치기, 굴렁쇠 굴리기, 담장 기어오르기 등 정말 다양한 놀이가 캔버스 위에 만화경처럼 펼쳐집니다. ‘겨울 풍경’이나 ‘사냥’을 소재로 한 그림들은 얼음을 지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가난하고 곤고하지만 그래도 놀이를 즐기는 농민들의 건강한 삶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그러나 브뤼헬은 자기 시대를 낙관적으로 본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가 그린 ‘바벨탑’은 무역항인 안트베르펜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원경으로 도시 풍경이 보이고 전면에는 거대하기 이를 데 없는 탑이 서 있습니다. 탑은 마치 콜로세움처럼 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탑을 건축하는 일에 동원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왠지 그 탑은 퇴락한 것처럼 보입니다. 탑 아래에는 노동에 동원된 이들이 돌을 다듬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그는 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하고 권력을 획득하려는 지도자들의 마음이 위태로워 보였던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보려는 그림 ‘눈먼 사람이 눈먼 사람을 인도하면’(86cm*154cm)은 브뤼헬이 세상을 떠나기 바로 전 해인 1568년에 완성한 작품입니다. 이 그림에는 눈먼 사람들 여섯 명이 등장합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눈먼 사람’은 신의 예지력을 가진 자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이나 ‘안티고네’에 등장하는 테이레시아스는 헤라 여신의 저주로 앞을 보지 못하게 되었는데, 제우스가 그를 불쌍히 여겨 역사를 통찰하는 눈을 주었다고 합니다. 서양 문학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호메로스도 앞을 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육신의 눈이 감길 때 지혜의 눈이 떠진다는 것이겠지요. 서양 회화사에서 눈먼 사람들은 대개 그리스도의 기적을 다루는 장면에서 등장합니다. 그들은 예지력을 지닌 존재라기보다는 은혜 앞에 선 사람일 뿐입니다. 

그러나 브뤼헬의 그림에 등장하는 눈먼 이들은 조금 다릅니다. 브뤼헬은 눈먼 사람이 눈먼 사람을 인도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나타내기 위해서 그들을 대각선으로 배치했습니다. 그들의 발걸음은 아래를 향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더러는 지팡이를 통해 연결되어 있고 또 더러는 앞 사람의 어깨에 손을 얹음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눈이 멀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이들은 각기 다른 질병을 앓고 있습니다. 이미 나동그라진 첫번째 사람의 눈은 잘 보이지 않지만, 둘째 사람은 눈꺼풀이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세번째 사람은 흰자위만 보이고 넷번째 사람은 안구가 위축되어 있습니다. 다섯번째 사람은 빛에 대한 공포가 있는지 모자로 눈을 가리고 있고, 마지막 사람도 다른 증상을 보입니다. 그들은 시지각이 없는 대신 외부 세계와 소통하기 위해 소리와 냄새에 의존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쳐들린 그들의 고개가 그것을 말해줍니다.

저 멀리 화면의 상단에 교회가 보입니다. 십자가도 종탑도 보이지 않는 교회는 왠지 을씨년스러워보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브뤼헬은 눈먼 사람들을 2명과 4명으로 분할해놓고 있습니다. 바로 그 빈 자리 상단에 교회가 배치되어 있습니다. 교회가 이미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그런 짐작이 근거 없는 억측만은 아닙니다. 자세히 보면 화면의 좌측 하단 물가에 작은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습니다. 물가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뭇잎 하나 없이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습니다. 사실 이 나무는 기독교의 도상에서 플루토의 나무 곧 사망의 나무라 불립니다. 플루토는 명부의 왕입니다. 다시 말해 죽음의 왕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교회 앞에도 나뭇잎이 하나도 없는 나무가 보입니다. 브뤼헬은 교회가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지 못하는 현실을 그렇게 표현했던 것이 아닐까요? 

희망은 아예 없는 것일까요? 브뤼헬은 작은 희망을 감춰두었습니다. 맨 앞에서 다른 이들을 인도하다가 나동그라진 사람의 손 위로 풀꽃 한 송이가 보입니다. 붓꽃입니다. 그 붓꽃은 구원의 희망을 상징합니다. 이 그림은 절망 속에서 희망을 보게 합니다만, 오늘 종교인들의 모습을 반성하도록 촉구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은 사람들을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할 사람들이 스스로 길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영의 눈이 닫힌 것은 아닌지 묻고 있습니다. 특권을 강화하기 위해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혐오하고 배척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본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죄를 지적한 바 있습니다.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우리 눈을 멀게 만드는 탐욕과 결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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