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컬럼

제목 뭉크의 ‘병든 아이’ 2020년 02월 03일
작성자 김기석
에드바르 뭉크의 ‘병든 아이’

편지를 받았습니다. 병에서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딸 때문에 마음이 다 졸아붙은 한 엄마의 편지였습니다. 믿음으로 기도하면 낫게 해주시리라 믿고 간절히 기도했지만 아이의 병세는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딸의 고통이 마치 자신의 믿음 없음 때문인 것 같아 깊은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생명이 주인이시고, 우리를 사랑하신다면 왜 내 아이는 낫지 않느냐?’는 질문 앞에서 대답할 말이 없었습니다.

생명이란 ‘살라는 명령’이고 ‘명을 살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생의 무게에 짓눌려 미처 삶의 의미를 구성할 여유조차 없이 그저 삶을 견디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다 하나님의 뜻이 있겠지요’라고 말하는 것은 폭력입니다. 세상에는 정말 알 수 없는 일이 많습니다. 알 수 없는 것은 알 수 없음으로 남겨두어야 합니다. 그런 후에 그런 고통스런 현실을 감내하고 있는 이들의 곁에 다가서서 그들의 비빌 언덕이라도 되어야 합니다. 눈물을 쏟든, 고함을 내지르든 상관하지 않고 그저 곁을 지켜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노르웨이 출신의 화가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 1863-1944) 하면 사람들은 거의 본능적으로 ‘절규’라는 그림을 떠올립니다. 세기말적 공포를 담아낸 그 그림은 한 번 본 사람들은 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작품이 뭉크의 대표작인 것은 사실이지만 뭉크가 왜 삶을 그렇게 공포스럽게 바라보았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뭉크의 집안은 노르웨이의 명문가였습니다. 그 집안에는 예술가, 작가, 주교, 빼어난 역사가들이 많았습니다. 아버지는 의사였지만 의술이 그렇게 뛰어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좋은 가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뭉크는 일찍부터 삶이 비극일 수 있다는 사실을 체감했습니다. 어머니는 그가 다섯 살 때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고, 누나인 소피는 그로부터 9년 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다른 형제도 서른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고, 또 다른 누이는 정신 질환을 앓았습니다. 뭉크는 늘 자기도 결국 병에 걸려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를 안고 살았습니다. 그는 “질병, 정신이상, 죽음 이라는 검은 천사들은 나의 요람을 넘겨다보았을 뿐만 아니라 일평생 나를 따라다녔다”고 고백한 바 있습니다. 엄마가 세상을 떠난 후 미혼이었던 이모 카렌이 집안의 중심 역할을 했습니다. 카렌은 뭉크의 예술가적 재능을 알아보고 격려해준 고마운 분이었습니다.

오슬로에서 미술 수업을 시작했지만 그에게 깊은 영향을 준 사람들은 외국에서 미술 수업을 마치고 돌아온 화가들이었습니다. 그들을 통해 뭉크는 마네, 코로 등의 화풍을 익힐 수 있었고 플로베르나 에밀 졸라와 같은 작가들의 작품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청교도적인 태도를 보이면서도 아내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 더욱 과묵해진 아버지와 버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그는 노르웨이에 유입된 프랑스의 카페 문화에서 정신적 출구를 찾았습니다.

뭉크가 스물 세 살 되던 해인 1886년에 완성한 ‘병든 아이’(the Sick Child, 119.5 × 118.5 cm, Nasjonalgalleriet, Oslo)는 일찍이 세상을 떠난 그의 누나 소피를 떠올리며 그린 그림입니다. 그림은 아주 좁은 방을 보여줍니다. 사람이 움직일 틈조차 없어 보입니다. 마치 소피가 직면하고 있는 삶의 곤경을 나타내는 것 같습니다. 폐결핵에 걸린 오랫동안 고통을 겪어왔습니다. 그러나 살고자 하는 의지에도 불구하고 그는 생명보다는 죽음 쪽에 가까이 다가선 것처럼 보입니다.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기에 그는 커다란 베개를 침대 머리에 세워놓고 비스듬히 기댄 채 앉아 있는 모습입니다. 베개 위로 보이는 검은 색 프레임은 거울일 겁니다. 거울은 사춘기 소년소녀들의 필수품입니다. 그맘때면 누구나 나르시스가 되는 법입니다. 거울을 보고 또 보며 자기에 도취할 때입니다. 하지만 소피에게 그런 열정은 이미 사그라든지 오래입니다. 거울이 가려진 것은 그런 정황을 나타내는 것 같습니다. 

침대의 좌측에 있는 문갑 위에는 약병이 놓여 있습니다. 희미하게 보입니다. 약조차 이젠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암시하기 위한 것일까요? 오른쪽 발치께엔 유리컵이 보입니다. 그게 어쩌면 소피에게 남은 생명의 불씨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약병과 물 컵은 소피의 다리를 덮고 있는 초록빛 담요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소피 곁에 있는 사람은 아마도 카렌일 겁니다. 죽어가는 조카를 보며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음을 알기에 그는 소피의 손을 가만히 쥔 채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과 무력감이 느껴지는 장면입니다. 그가 입고 있는 색은 검은색입니다. 장례식을 연상시키는 색입니다. 단정하게 묶은 그의 머리카락은 아무렇게나 맥없이 흐트러진 소피의 머리카락과 대조적으로 보입니다.

소피의 얼굴은 창백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러나 그 얼굴이 비극적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이미 체념한 것일까요? 죽음이라는 운명을 받아들인 것일까요? 소피의 얼굴은 평안해 보입니다. 그런데 소피의 시선이 머물고 있는 곳은 자기 손을 잡고 있는 여인이 아닙니다. 창가에 드리워진 검은 커튼입니다. 오른쪽 구석에 희미하게 보이는 흰색이 그곳이 창문임을 암시합니다. 뭉크는 커튼을 검게 칠한 후 그 색을 조금씩 벗겨낸 것으로 보입니다. 가혹한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을까요? 그러고 보니 그림 전체에 색을 벗겨낸 흔적이 드러납니다. 마치 푸른 색 녹이 낀 것처럼 보입니다. 인상주의 화풍과 연결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것은 뭉크가 자기 삶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를 얼마나 깊이 인식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징표이기도 합니다.

빛과 어둠, 생명과 죽음은 서로 얼굴을 맞대고 있습니다. 빛이 들어오는 곳이 보이지 않는데도 소피의 얼굴은 빛으로 충만합니다. 슬픔과 절망이 그를 완전히 삼킨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보아서일까요? 소피가 기대고 있는 흰색 베개는 마치 후광처럼 보이지 않나요? 자기에게 품부된 삶의 시간을 온전히 살아내는 이들은 그들의 사회적 성취와 관계없이 아름답습니다. 

이 그림에서 내 눈을 사로잡고 있는 인물은 아픈 소녀의 손을 잡고 있는 여인입니다. 얼굴조차 드러나지 않는 그의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문득 엔도 슈사쿠의 소설 <사해의 호반>이 떠오릅니다. 동양인의 정서에 부합하는 예수상을 천착하던 그는 이 작품에서 예수를 전능자가 아닌 평범한 사람으로 그립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기적을 구하지만 그는 기적을 행할 능력이 없습니다. 기도를 통해 병자를 낫게 하지도 못하고, 일거에 로마를 물리칠 영웅적 행동을 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그는 버림받은 병자들 곁에 머물면서 안타까워하며 그들과 밤을 지샐 뿐입니다. 엔도는 진정한 기적은 병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 받는 이의 곁에 머물며 그들의 아픔을 나누는 영혼의 온기임을 드러내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여인의 모습에서 세상의 가장 작은 자의 모습으로 오시는 주님의 옷자락을 보는 것은 좀 과한 상상인가요? 이 그림은 오늘 우리가 향하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묻고 있습니다. 화려하고 쾌적한 곳이 아니라 어둡고 답답한 곳을 찾아가 머물 때, 하늘의 빛과 만나게 될 지도 모릅니다. 아픔을 외면하면서 거룩을 지향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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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pks(20 02-05 01:02)
'자기에게 품부된 삶의 시간을 온전히 살아내는 이들은 그들의 사회적 성취와 관계없이 아름답습니다' - 공감됩니다. 감사히 읽고 힘얻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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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ce Rhee(20 02-15 05:02)
안녕하세요?
오늘 처음으로 목사님 글 대해 봅니다.
갑작스레 ‘curator’ 영어 단어가...

여고시절 보고 배워왔던 뭉크의 ‘절규’,
그저 공포스러운 그림으로 아물아물 기억되는데 그의 작품들 받쳐주는 삶의 이야기 또 다른 그림 ‘병든 아이’
목사님의 섬세한 해설임에도 궁금증에못이겨 사진이라도 찾아 감상케 하여주심에 감사해 봅니다.
카렌의 손, 예수님의 손, 문득 연상되는 렘브란트의 ‘ 돌아온 탕자’ 속의 아버지의 손과 어머니의 손(?).

그리고 제 자신의 두 손을 물끄러미 한참을 지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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