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컬럼

제목 [목회서신] 보고픈 이들에게 2020년 03월 20일
작성자 김기석


 

보고픈 이들에게


“나는 평화를 너희에게 남겨 준다. 나는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아라.”(요14:27)

주님 안에서 순례자로 살아가는 교우 여러분, 주님의 평안을 빕니다. 사순절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코로나19가 우리 삶에 폭풍처럼 닥쳐올 때만 해도, 한 두어 주만 지나면 우리가 다시 만나 주님께 예배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이 상황은 극복되지 않고 있습니다. 날마다 교회 마당가에 심어진 매화나무를 살피며 무심한 시간의 흔적을 더듬고 있습니다. 꽃망울이 벙글어질 무렵부터 꽃잎이 속절없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지금까지 꽤 긴 시간을 우리 헤어져서 지내야 했습니다. 유정한 인간은 속이 타는데 자연은 무심하게 제 본연의 시간을 살고 있습니다.

가끔 예배당은 물론 교회 곳곳에 무심히 눈길을 줄 때가 있습니다. 그곳에 앉아 예배를 드리고 담소하던 교우들의 모습을 그리움으로 떠올립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과의 언약을 저버린 백성들이 감내해야 할 고통과 파괴의 시간을 예고한 후에, 그 시련의 시간이 지나면 아름다운 일상이 회복될 것이라며 그 비전을 이렇게 담아냈습니다. “나 주가 말한다. 너희들은 ‘이 곳이 황폐하여 사람도 없고 짐승도 없다’고 말하지만, 지금 황무지로 변하여, 사람도 없고 주민도 없고 짐승도 없는 유다의 성읍들과 예루살렘의 거리에 또다시, 환호하며 기뻐하는 소리와 신랑 신부가 즐거워하는 소리와 감사의 찬양 소리가 들릴 것이다. 주의 성전에서 감사의 제물을 바치는 사람들이 이렇게 찬양할 것이다. ‘너희는 만군의 주님께 감사하여라! 진실로 주님은 선하시며, 진실로 그의 인자하심 영원히 변함이 없다.’”(렘33:10-11) 지금 제 귀에는 환청처럼 교우들이 음성이 들려옵니다. 함께 기뻐하는 소리, 찬양의 소리가 이 공간을 가득 채울 날을 저는 그리움으로 기다립니다.

가장 미세한 바이러스가 인간이 구축해온 문명의 토대를 뒤흔드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얼마나 오만하게 살아왔는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많은 학자가 이런 사태는 인간이 자행한 환경파괴와 그로 인해 나타난 기후변화와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합니다. 동물들의 서식지가 파괴되고 동물 세계와 인간 세계의 경계선이 무너지면서 동물의 몸에 깃들어 살던 바이러스가 인간에게로 옮겨온 것이라는 것입니다. 생물학적 의학적 지식은 전문가들의 몫이지만, 이런 모든 일의 뿌리에 인간의 과도한 탐욕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코로나19는 풍요로움과 편리함을 절대적 가치인 양 추구하는 삶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표징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표징도 있습니다. 많은 이가 질병을 물리치기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다. 위험을 피해 달아나기는커녕 위험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간 의료진들, 방역 업무에 만전을 기하는 이들, 자원봉사자들, 십시일반으로 마음을 모아 가며 곤경에 처한 이웃들을 돕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인간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사실을 가리키는 분들입니다. 거룩함이 그렇게 발현되고 있습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 혹은 ‘잠시 떨어져 지내기’는 우리를 쓸쓸하고 불편하게 만들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이들이 있어 세상은 든든히 유지됩니다.

많은 교우가 이 아름다운 일에 동참해주셨습니다. 재해 헌금을 보내주신 분들도 있고, 마스크를 비롯한 방역에 필요한 물품을 보내주신 분들도 계십니다. 영상을 통해 외친 소리에 메아리처럼 응답해주신 분들 모두에게 감사합니다. 보내주신 것은 이미 그것을 가장 절실히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전해졌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나눔의 실천은 지속할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우들이 보여주는 이웃 사랑의 실천에 깊은 감명을 받고 있습니다. ‘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는 시가 있습니다만, 이렇게 어렵고 우울한 시대에 별처럼 빛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맙고 자랑스러운지 알 수 없습니다.

앞으로도 몇 주 동안은 각자 집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불가피한 상황입니다. 연세 드신 어르신 교우들에게는 매우 낯선 상황이지만 잠시만 더 인내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리교인들은 세 가지 행동 지침을 품고 삽니다. 단순하지만 강력한 실천 방향입니다. ‘해를 끼치지 말라’, ‘선을 행하라’, ‘주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 사랑 안에 머물라’. 다중이 모이는 곳이기에 교회는 감염의 우려가 큰 것이 사실입니다. 실제로 교회에서 발생한 감염으로 인해 교회가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음이 안타깝습니다. 우리 신앙은 모든 경계선을 뛰어넘는 것이지만, 실체로서의 교회는 시민사회의 상식과 동떨어져서는 안 됩니다.

사순절 순례의 여행은 잘 하고 계신지요? 사순절 달력에 있는 성경 본문으로 묵상을 하고, 또 제시된 실천 사항을 잘 지켜 가면 우리 영성은 맑아지고 깊어질 것입니다. 목회실 식구들은 기도 중에 교우들을 기억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어떤 형태든 도움이 필요한 분은 언제라도 연락을 주십시오. 수난의 골짜기 깊은 곳으로 들어가고 있는 주님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한순간도 혼자가 아니셨습니다. 그를 보내신 분이 동행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도 외로운 이들의 동행이 되라 말씀하십니다. 오늘 아침 홍매화도 붉은 꽃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신광학교 정문 옆에 있는 목련도 흰 꽃을 터뜨리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가슴에도 이런 신앙의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나기를 빕니다. 내내 주님 안에서 평안하시기를 빕니다.

2020년 3월 20일
담임목사 김기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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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팀목 에스더(20 03-20 09:03)
순명과 거룩을 좇아 걸어가시는 청파공동체,
따뜻한 그리움을 담아 깊은 사랑으로 목회서신을 보내시는 목사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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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종(20 03-27 07:03)
멀리 문경에서 목사님의 설교본문과 칼럼을 좋아합니다. 가능하면 말씀에 대한 순명과 거룩을 이루는 사람되고자 노력하며,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고자 합니다.
목사님의 따뜻한 그 마음이 꽃 보다 아름답고 사회를 밝게 하십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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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20 04-03 10:04)
대구에 사는 주부입니다. 마음이 공허할 때마다 목사님의 칼럼과 설교말씀을 찾아보고 있습니다. 이 어수선한 시국에 영혼이 자양분이 되고 큰 위로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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