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컬럼

제목 [목회서신] 무지개 다리 2021년 07월 22일
작성자 김기석
무지개 다리

“삼라만상은 모두 상이하고 독특하고 희귀하고 낯설구나./무엇이나 변덕스럽고 점철되어 있나니(누가 그 이치를 알까?)/빠르거나 느리고, 달거나 시고, 밝거나 어둡구나./이는 변치 않는 아름다움을 지닌 그분이 낳으시는 것이니, 그분을 찬미할지어다.”(제라드 홉킨스, <홉킨스 시선>, 김영남 옮김, 지식을 만드는 지식, p.88, ‘알록달록한 아름다움’ 중에서)

주님의 은총과 평강이 우리 가운데 임하시기를 빕니다.
삼복더위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습니다. 초 ·중복이 지났고 이제 대서 절기에 접어들었습니다. 마른 장마도 끝이 났다지요? 요즘 하늘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새털구름이 드리운 하늘은 뭔가 목가적 세계의 문처럼 보입니다. 저녁 노을 또한 장관입니다. 지난 월요일 늦은 오후에 공원 근처를 걷고 있는데, 여성 몇 분이 휴대전화 카메라로 연신 하늘을 찍고 있었습니다. 제 시선도 저절로 위를 향했습니다. 하늘 저편에 선명한 쌍무지개가 걸려 있었습니다. 코로나 재확산으로 위축된 마음을 위로하듯 무지개는 그곳에서 땅을 가만히 감싸고 있었습니다.

무지개 하면 떠오르는 것이 노아 시대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속속들이 썩고 무법천지로 변한 세상을 보며 땅 위에 사람 지으신 것을 후회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과 땅을 멸하겠다고 다짐하십니다. 노아가 육백 살 되는 해의 둘째 달, 열이렛날, 땅 속 깊은 곳에서 큰 샘들이 모두 터지고, 하늘에서는 홍수 문들이 열려서 밤낮 비가 쏟아졌습니다. 사십 일 밤낮 내린 비로 코로 숨을 쉬며 사는 것들이 다 죽었습니다. 노아와 더불어 방주에 들어간 사람들과 짐승들만 살아남았습니다.

홍수가 끝나자 하나님은 노아와 함께 한 사람들, 그리고 숨쉬는 모든 생물 사이에 새로운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시는 홍수를 일으켜 살과 피가 있는 모든 것들을 없애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언약의 표로 구름 속에 무지개를 두셨습니다. 무지개야말로 살아있는 모든 것과 맺은 언약을 상기시키는 기표인 셈입니다. 제게도 예기치 않은 시간에 만났던 무지개의 기억이 있습니다.

군목으로 최전방에 근무할 때의 일입니다. 저는 모터사이클을 타고 GOP(general outpost, 일반 전초) 부대를 방문하여 예배를 인도하곤 했습니다. 철책선을 담당하는 작은 단위 부대였기에 예배당은 꿈도 꿀 수 없었습니다. 식당의 한 켠에 모여 앉아 함께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올리는 시간이 참 복되게 느껴졌습니다. 그날도 저를 돕는 군종병은 기타를 치며 그의 주특기 복음송을 불렀습니다. “당신이 지쳐서 기도할 수 없고/눈물이 빗물처럼 흘러 내릴 때/주님은 아시네 당신의 약함을 사랑으로 돌봐주시네/누군가 널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네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고적감이 느껴지는 그 시간과 장소에서 이 노래와 만난 병사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물을 훔치기 시작했습니다. 제 마음도 뜨거워졌습니다. 분단의 아픔이 크게 느껴졌고, 한반도에 평화의 꽃이 피어나기를 간절히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배를 시작하기 전에는 검은 구름이 하늘을 가리고 있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나오니 구름이 걷혀 있었고, 하늘 저편에 커다란 무지개가 걸려 있었습니다. 무지개는 한반도를 동서로 갈라놓고 있는 철책선을 가로지르고 있었습니다. 제 눈에는 무지개 다리처럼 보였습니다. 병사들은 ‘오오!’ 감탄사를 내뱉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말을 하지 않아도 모두의 마음은 이미 하나였습니다. 근 40년 가까운 세월 저편의 일이지만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은 그 날의 감동이 컸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기억이 있습니다. 2004년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방 교역자들과 이스라엘을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이집트 여정을 마치고 이스라엘의 타바 국경 검문소에 당도한 순간부터 우리 일행은 몹시 긴장된 시간을 보냈습니다. 국경에서 폭발물로 의심되는 가방이 발견되어 국경이 폐쇄되었고, 우리는 뙤약볕 밑에서 몇 시간을 대기해야 했던 것입니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아일라트를 지나 숙소에 도착한 시간이 저녁 11시가 넘었습니다. 이른 아침, 잠에서 깨어나 CNN 뉴스를 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가 간밤에 지나온 해변 마을에서 폭탄 테러가 일어나 많은 사상자가 났다는 보도였습니다. 그 땅이 분쟁의 땅이라는 사실이 현실감 있게 다가왔습니다. 

이스라엘에서 며칠 머무는 동안 우리 일행은 팔레스타인에 속한 유적들을 보기 위해 베들레헴에 다녀왔습니다. 말로만 듣던 6미터 높이의 분리의 장벽을 보았습니다. 체크 포인트에서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시달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가슴이 아팠습니다. 성경의 세계로 시간 여행을 떠난 셈이었지만 제 마음은 온통 그 땅이 겪고 있는 시련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유대 광야를 지날 때 몸과 마음이 몹시 고단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저 멀리 무지개가 보였습니다. 흐릿하긴 했지만 분리 장벽 위로 높이 솟아있는 것은 무지개가 분명했습니다. 모두가 그 광경을 보며 놀랐습니다. 마치 어떤 하늘의 메시지를 듣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면 무지개는 음악용어 ‘슬러slur’ 곧 이음줄을 닮았습니다. 슬러는 악보에서 음높이가 다른 둘 또는 그 이상의 음표의 위나 아래에 긋는 호선을 이르는 말입니다. 음과 음 사이를 끊어지지 않도록 매끄럽게 연주하여 선율감을 주라는 표시입니다. 사람들이 무지개 앞에 멈춰서는 것은 어쩌면 분열된 세상에서 지쳤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이것은 제멋대로의 상상입니다. 무지개는 꿈을 꾸도록 만듭니다. 워즈워스의 ‘무지개’는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시입니다.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
내 가슴 설레느니,
나 어린 시절에 그러했고
다 자란 오늘에도 매한가지,
쉰 예순에도 그렇지 못하다면
차라리 죽음이 나으리라.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바라노니 나의 하루하루가
자연의 믿음에 매어지고자.”
(워즈워스, <무지개>, 유종호 옮김, 민음사, p.18)

무지개를 보고도 가슴이 설레지 않는다면 그의 영혼은 죽은 거나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어린이가 어른의 아버지인 까닭은 ‘경탄’할 줄 아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깃든 신비에 눈을 뜰 때 사람은 아름다워집니다. 경탄의 순간은 우주의 맥박 소리를 듣는 시간이고, 표현 불가능한 세계로 진입하는 시간입니다. 경탄을 잃어버릴 때 세상은 처리해야 할 일이 되고, 우리를 위협하는 적대적인 공간으로 변합니다. 최근 며칠 동안 많은 이들이 SNS에 무지개, 구름, 노을 사진을 올렸습니다. 그 놀라운 광경과 만났던 순간의 행복을 다른 이들과 나누고 싶기 때문일 겁니다.

다시 노아 시대 이야기로 잠시 돌아가야 하겠습니다. 무지개는 홍수 이후에 나타났습니다. 모든 생명이 멸절 당한 이후에 말입니다. 기후 위기에 대한 경고의 나팔소리가 울린 지 이미 오래건만 우리는 벌써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말았습니다. 다들 큰일났다고 말하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는 짐짓 눈을 감고 있는 형편입니다. 위기의 시간은 삶의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겨울이 되기 전에 나뭇잎을 떨구는 나무의 지혜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풍요의 환상 속에 오래 머물수록 지구는 더욱 망가질 것입니다.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지역을 휩쓴 대홍수로 많은 인명피해가 났습니다. 재산 피해의 규모도 천문학적입니다. 사회적 안전망이 잘 갖춰졌다고 평가받는 유럽 국가들도 대규모 자연재해 앞에서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미국의 서부 지역은 매해 산불과 가뭄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알라스카와 캐나다는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뜨거운 여름을 맞이했다고 합니다. 기후 변화로 인해 제트 기류가 약화되어 열돔 현상이 발생했기 때문이라지요? 우리 눈앞에 잠시 모습을 드러냈던 무지개는 모든 살아 숨쉬는 것들이 죽임을 당했던 그 쓰라린 기억을 되살리라는 하늘의 메시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제는 정말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는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비상 나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응답해야 합니다. 풍요로움에 길들여진 이들은 감사를 모릅니다. 아낌과 돌봄을 의도적으로 선택하는 이들이라야 삶의 비의에 눈을 뜨게 됩니다. 우리의 믿음은 일상적 삶의 자리에서 드러나야 합니다.

당분간 비대면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불편하고 속상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성도들의 코이노니아가 약화되어서는 안 됩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접속을 유지하고, 기도 중에 서로를 기억해야 합니다. 어려운 시간을 지나고 있는 교우들은 언제라도 제게 메시지를 보내주십시오. 함께 고난의 시간을 견딜 수 있는 방도를 찾아보겠습니다. 어린이들과 청소년, 젊은이들의 신앙 교육이 원활하지 못한 것이 무엇보다 안타깝습니다. 부모님들께서 적극적 관심을 가지고 교회학교에서 제공하는 영상자료를 활용하여 자녀들과 복된 시간을 마련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휴가철이 되었습니다. 안전하고 유익하고 즐거운 휴가를 즐기실 수 있기를 빕니다. 주님의 사랑이 교우 여러분의 가정마다 넘치시기를 빕니다. 그리스도의 평화.

2021년 7월 22일
담임목사 김기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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