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순례의 길 위에서 | 2024년 11월 03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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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김기석 | |||
순례의 길 위에서 우연히 들려온 교회 종소리가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내 앞에서 모든 문이 닫힌 것처럼 여겨져 참담하던 시간, 자괴감의 늪 속으로 깊이 빨려 들어가던 그 때 나는 죽음을 생각했다. 존재를 지우는 것이야말로 이 곤고한 현실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는 길이라 여겨졌다. 뉘엿뉘엿 해가 질 무렵, 한강물 위에서 빛나던 윤슬은 오히려 내 쓸쓸함을 강화했다. 그때 멀리서 종소리가 들려왔고, 물 속 세계를 상상하고 있던 내 앞에 거짓말처럼 어머니가 지나가고 계셨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말이 불쑥 입에서 튀어나왔다. “어머니, 나도 교회 가도 돼요?” 어머니는 별로 반기는 기색도 없이 “그래”라고 대답하셨다. 어머니 뒤를 졸래졸래 따라가면서도 스스로 기가 막혔다. 나의 나약함을 들킨 것 같은 부끄러움이 스멀스멀 등줄기를 타고 오르내렸다. 청년 시절 교회와의 첫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교회는 내게는 철저히 낯선 공간이었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나 표정이 일상적이지 않았다. 처음 만난 이를 향해 서슴없이 형제니 자매니 하고 부르는 가족 호칭이 낯설었고, 인간의 죄인 됨을 강조하는 기도의 언어 또한 낯설었다. 낯설었다기보다는 차라리 저항감이 느껴졌다고 말하는 게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그 끝 모를 자기 비하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러나 그곳은 동시에 따뜻한 곳이었다. 세상을 적대감이 가득 찬 공간으로 인식했던 내게 사람들이 보여주는 환대의 몸짓은 어색하면서도 거부하기 어려운 매력으로 다가왔다. 또 다른 층위의 낯섦이 나를 사로잡았다. 세상을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인식했던 내게 몇몇 사람들이 보여준 삶의 모습은 전혀 다른 세계로의 초대였다. 넉넉한 살림이 아닌 줄 뻔히 아는 데도 어려운 이들을 보면 어떻게든 자기 것을 내어주는 사람들, 사회적 존경을 누릴만한 직위에 있으면서도 천진하기 이를 데 없는 표정과 태도로 사람을 대하는 이들, 열악하기 이를 데 없는 삶의 조건 속에서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탓하지 않고 자기 삶을 개척해가는 사람들. 그 낯선 이들을 보며 ‘도대체 이분들의 삶의 비밀은 무엇일까?’라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묻고 또 물은 끝에 도달한 답은 예수였다. 예수라는 존재에 사로잡힌 사람들, 그들은 매력적이었다. 마치 토끼굴을 통해 이상한 나라에 당도한 엘리스의 마음이 그러했을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는 순간 또 다른 세계가 눈에 들어왔다. 경건하다고 자부하는 이들이 보이는 이중적 행태 말이다. 울먹이는 음성으로 죄인임을 자복하는 사람이 교회 안에 있는 약자들을 무시하거나 군림하려는 태도를 보일 때가 많았다. 그 부조화가 당혹스러웠고, 그들이 보이는 허위의식에 분노가 치솟기도 했다. 예수는 그들로 인해 추문거리로 변하고 있었다. 아이러니하지만 매혹과 분노의 이중 감정이 나를 신학의 길로 이끌었다. 예수의 길에서 벗어난 교회의 현실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무모한 열정이 나를 몰아갔다. 스스로 선택한 길이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것은 그분의 뜻 안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겨우 신앙생활에 입문한 내게 신학교는 버거운 장소였다. 동기들에게 당연한 세계가 내게는 결코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시인 김승희의 고백이 참 적실하게 다가온다. “당연한 세계에서 나만 당연하지 못하여/당연의 세계가 항상 낯선 나”. 신학교 생활에 깊이 스며들지 못한 채 이리저리 떠돌았다. 신학책보다 문학책에 더 몰두했다. 문학은 적어도 삶을 향한 정직한 질문에 열려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철저하게 바닥까지 파고드는 문장들에 사로잡혔다.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만난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게 마련’이라는 문장을 금과옥조로 여겼다. 오규원 선생의 시 ‘만물은 흔들리면서’의 한 구절을 주절거리며 사상의 바다를 헤엄쳤다. “만물은 흔들리면서 흔들리는 만큼/튼튼한 줄기를 얻고/잎은 흔들려서 스스로/살아 있는 몸인 것을 증명한다.” 흔들림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흑과 백, 정의와 부정의로 나누던 살풍경한 시대를 견디기 어려웠다. 다름을 용납하지 않는 강고한 확신이 일쑤 폭력으로 치달리는 것을 지켜보며 아파했다. 그러나 삶은 모호함 속에 머무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선택의 기로를 만날 때마다 망설이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이지만, 모호하다 하여 아무 길도 택하지 않는다면 그는 살아 있다 말할 수 없다. 80년대 초반의 엄혹했던 시기를 맞으며 폭압에 맞서는 이들 편에 서지 않을 수 없었다. 앞장서서 싸우지는 못해도 어깨를 겯고 함께 걸을 수는 있었다. 다소 거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안일한 행복을 추구하는 이들에게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열정과 순수함을 보았기 때문이다. 미구에즈 보니노라는 신학자의 글을 읽다가 ‘편드시는 하나님’이라는 표현과 만났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도 차별하지 않으시는 분, 곧 불편부당하신 분이라는 가르침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왔던 이들에게는 충격적인 선언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은 중립적인 위치에서 사람들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판관이 아니었다. 땅에서 들려오는 신음 소리를 ‘당신의 나라가 임하소서’라는 기도로 들으시고, 역사의 현장에 뛰어들어 불의를 시정하시는 분이었다. 신학은 더 이상 탁상공론이 아니라 실천적 삶의 지침이었다. 일종의 개안체험이었다. 분명한 관점이 생기자 성경이 돌연 역동적인 텍스트로 보이기 시작했다. 주름 잡힌 텍스트인 성경의 갈피마다 깃들어 있는 인간의 애환과 그 아픔을 감싸 안으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이 가슴에 사무쳐왔다. 그 사랑에 응답하는 것이 인간의 소명이다. 유대교 랍비인 헤셸도 같은 말을 한다. “우리의 사명은 그분의 관심사를 함께 관심하는 것이요, 우리의 사명에 대한 그분의 비전을 실천해 나가는 것이다. 하느님은 당신의 목적들을 이루기 위해 인간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종교란, 성경적 전통이 이해하는 바에 따르면, 이 목적들을 위해 살아가는 길이다. 우리는, 그분의 목적들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지는 못한다 해도, 그것들이 우리를 필요로 하고 있음을 아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아브라함 요수아 헤셸 선집 3, <누가 사람이냐>, 이현주 옮김, 종로서적, p.71) 1990년 2월은 또 다른 인생의 변곡점이 되었다. 서울에서 열린 제1회 ‘정의 평화 창조 질서 보전 대회’(JPIC)에 참가하면서 지구촌이 직면한 위기의 실체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다. 양극화의 문제, 국제적 분쟁과 전쟁의 위험, 그리고 급전직하하고 있는 창조 질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그 대회는 마치 문명의 조종처럼 들렸다. 무엇보다도 생태학적 개종이 절실히 필요한 시대임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라.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려라”(창 1:28) 하신 말씀을 재해석해야 했다. 인간 중심주의가 만들어놓은 디스토피아에서 모든 피조물이 신음하고 있다. 하나님을 창조주로 믿는다는 것은 세상의 모든 것 속에 신의 숨결이 깃들어 있음을 자각하는 것인 동시에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것도 함부로 대하지 않겠다는 숭고한 다짐이다. 춘추전국 시대의 노자는 사람을 다스리고 하늘을 섬기는 데 아낌보다 나은 것이 없다(治人事天莫若嗇)고 말했다. 아낌과 존중의 마음이 스러진 세상에서 피조물들은 신음하고 인간성은 황폐해지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교회 성장주의의 덫에 걸려든 한국교회는 JPIC에서 논의한 내용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창조 세계에 대한 책임을 말하는 이들에게 복음으로부터 이탈했다는 혐의를 씌우는 이들도 있었다. ‘예루살렘과 아테네가 무슨 상관인가?’라고 말했던 교부의 말처럼 자칭 복음주의자들은 ‘환경 문제와 신앙이 무슨 상관인가?’ 퉁명스럽게 되묻기도 했다. 교회는 세계사적 문제를 외면했고 공공의 영역에서 스스로 퇴거하여 고립되기에 이르렀다. 세상과 능동적으로 소통할 의사와 능력을 잃어버린 교회는 나아감과 물러감의 리듬 속에서 발현되는 창조적 동력을 상실했다. 세계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소홀히 함으로 책임의 윤리를 방기했고, 더 나아가 내적 세계에 대한 깊은 탐색을 그침으로 표층 종교로 전락했다. 목회 현장에서도 안타까운 상황은 지속되었다. ‘예수를 믿어 구원 받았다’는 고백은 있었지만 그 고백에 상응하는 삶의 열매는 부실하기 이를 데 없었다. 목회적 고민이 시작되었다. 일상의 삶으로 번역되지 않는 신앙 고백은 공허할 뿐이다.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묵상을 하고, 예배에 참석하는 일은 물론 소중하다. 하지만 외적 종교 행위가 ‘거룩함’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성경을 많이 알면서도 외식에 빠진 이도 있고, 기도를 많이 하면서도 교만에 빠진 이들도 있다. 거룩함의 외양 뒤에 감춰진 자기 강화의 욕망은 추하기 이를 데 없다. 나무를 보아 열매를 안다 했다. 거룩함은 자기 진술을 통해 확보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삶 속에서 저절로 발현된다. 성결법전은 밭에서 난 곡식을 거두어들일 때에는 구석구석까지 다 거두어들여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가난한 사람들과 나그네 신세인 외국 사람들이 줍게 남겨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웃의 것을 빼앗아도 안 되고, 품꾼의 삯을 다음날 아침까지 미뤄서는 안 된다. 헐뜯는 말을 해서도 안 되고, 생명을 위태롭게 하면서까지 이익을 보려 해서는 안 된다. 이 모든 가르침은 ‘너는 너의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여라’라는 계명으로 수렴된다. 이웃을 아끼고 사랑하지 않으면서 거룩할 수는 없다. 이 마음을 품을 때 일상의 모든 순간이 성화된다. 일상의 성화야말로 진정한 예배이다. 예수님이 들려주신 하나님 나라 비유에는 종교적인 개념어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일상의 삶의 자리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제시하실 뿐이다. 밭을 가는 농부, 씨를 뿌리는 사람, 빵을 만들기 위해 밀가루 반죽에 누룩을 넣는 여인, 진주를 사러 다니는 상인, 그물에 걸린 물고기를 끌어올리는 어부, 일꾼을 고용하러 나온 포도원 주인 이야기가 그러하다. 종교성에 매몰되어 일상성 속에 깃든 하늘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또 있을까? 구상 시인은 ‘말씀의 실상’이라는 시에서 “영혼의 눈에 끼었던/무명의 백태가 벗겨지며/나를 에워싼 만유일체가/말씀임을 깨닫습니다”라고 고백했다. ‘무명의 백태’는 우리 시선을 가로막아 마땅히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게 한다. 과도하게 부푼 욕망, ‘나’를 세상의 중심에 두려는 욕망은 일상 속에 깃든 신적 광휘를 보지 못하게 하는 가림막이다. 칼 폴라니는 자본주의 시장 질서를 가리켜 ‘악마의 맷돌’(satanic mill)이라 했다. 이익이라는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 인류가 고통스러운 경험을 통해 거둔 가장 소중한 가치들, 예컨대 생명·평화·정의·자유·사랑·돌봄·종교 등을 맷돌에 넣어 무차별하게 갈아버리는 상황을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삶의 입각점을 잃어버린 이들이 속절없이 세속의 흐름에 휩쓸릴 때, 모름지기 믿음의 사람이라면 이런 세상의 비참한 실상을 폭로하는 동시에 새로운 세상을 시작하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삶은 순례이다. 우리 삶의 영원한 중심이신 분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는 과정이다. 삶을 순례로 이해하는 이들은 길 위에 집을 짓지 않는다. 순례를 그치는 순간 죄의 중력이 압도적으로 우리를 잡아당긴다. 순례자는 욕망으로 덧칠된, 그래서 하늘을 반영하지 못하는 불투명한 자아를 벗어버리기 위해 분투한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불가능함을 알기에 주님의 자비하심을 구할 뿐이다. 자기 앞에 현전한 모든 사람을 하나님이 보내신 존재로 여겼던 그리스도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면 우리는 목표도 없이 달리기를 하는 사람 혹은 허공을 치는 권투 선수와 다를 바 없다. 예수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예수의 마음으로 이웃을 대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은가. 아직 그 마음을 얻지 못해 삶이 무겁다. 한 교회의 목회자라는 공적인 책임은 내려놓았지만 순례의 길은 끝나지 않았다. 그 길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고 있는 또 다른 순례자들과의 만남을 기대한다. 인간이 만들어낸 어둠과 혼돈이 제아무리 깊어도, 그 속에서 새로운 빛을 창조하시는 분을 신뢰하기에 낙심하지 않는다. 함석헌 선생의 시 ‘참’을 읊조리며 또 다른 행장을 꾸린다. “참 찾아 예는 길에 한 참 두 참 쉬지 마라/참참이 참아가서 영원한 참 갈 것이니/참든 맘 참참을 보면 가득참을 얻으리.” (가톨릭 잡지 <영성생활>, 제68호 원고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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