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은혜의 우산 속에서 걷는 삶 | 2024년 12월 29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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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김기석 | |||||
은혜의 우산 속에서 걷는 삶 --이종용 목사님의 '신나는 삶이라니' 추천사 “전역이 얼마 남지 않았지요?” “네.” “일할 데를 정했어요?” “아니오.” “이화에 오실래요?” “네.” 잠시 동안이었지만 나와 이화여고와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아주 오래 전 연회 참석 차 서울에 올라왔다가 붙들린 셈입니다. 이종용 목사님과 함께 한 시간은 유쾌했습니다. 목사님이 머무시던 교목실은 사색과 연구와 대화를 위한 정갈하고 차분한 공간이 아니라 책과 온갖 잡동사니들이 어지럽게 쌓여 있는 작업 공간이었습니다. 화가들의 작업실을 방불케 하는 그곳에서 온갖 창조적인 작업들이 일어나곤 했습니다. 채플이나 강의 시간을 제외하고는 늘 작업복 차림이었던 것은 그 때문입니다. 성극반을 지도하던 목사님은 홀로 밤을 새워가며 무대를 만들었습니다. 무거운 나무상자를 등에 져 나르고 높은 구조물을 만드는 것도 늘 그 혼자만의 몫이었습니다. 시시포스가 산정으로 돌을 굴려 올리는 것 같은 과정의 반복이었지만 그 고독한 노동 행위 속에는 감히 다른 이들이 알기 어려운 희열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목사님을 통해 교회력과 예전의 중요함을 배웠습니다. 대림절기로부터 시작되어 성령강림절기의 마지막 주일인 왕이신 그리스도 주일까지 이어지는 교회력의 사이클은 일종의 시간의 매듭입니다. 반복되는 그 시간의 리듬 속에 머물 때 삶은 든든해집니다. 우리 삶이 하나님의 구원 이야기의 일부임을 자각할 때 삶의 무상성이나 무의미성에 사로잡히지 않게 됩니다. 수없이 많은 정보들이 명멸하는 시대에 사람들이 오히려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삶의 서사를 구성할 능력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이종용 목사님의 배너 만들기는 시간의 폭력에 대한 저항이라고 생각합니다. 간편하고 말끔한 것을 선호하는 시대에 목사님의 배너는 다소 투박해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단순한 선 몇 개로 인체의 움직임을 표현해내는 능력은 매우 탁월합니다. 스스로 미술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하지만 구체적 사물을 추상화하고 단순화할 수 있는 능력은 타고 난 것이라 하겠습니다. 컴퓨터로 도안하고 기계로 찍어낸 것들은 작품이라기보다는 제품입니다. 제품에는 아우라가 없습니다. 시간과 땀이 스며들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합판, 은박 매트, 헝겊, 부직포, 스티로폼, 종이, 수성 페인트를 사용하여 제작된 목사님의 배너에는 지속되는 시간이 담겨 있기에 아우라가 느껴집니다. 아름다움은 그 지속되는 시간 속에서 발현되게 마련입니다. 이 책에 담긴 배너들 속에는 우리 시대에 대한 성찰과 개인적 기억이 씨줄과 날줄이 되어 교직하고 있습니다. 배너에 담긴 이미지들은 바라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그렇기에 이 배너들은 기도와 성찰의 요구입니다. 목사님이 배너를 제작하는 모습을 상상하다가 문득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수도자 생활의 서’의 첫대목이 떠올랐습니다. “지금 시간이 기울어가며 나를/맑은 금속성 울림으로 가볍게 톡 칩니다./나의 감각이 바르르 떱니다./나는 느낍니다, 할 수 있음을./그리하여 나는 조형(造形)의 날을 손에 쥡니다.” 창작은 언제나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신앙인에게 기다림은 하나님의 마음에 조응하기 위한 기도입니다. 기울어가는 시간의 모습을 한 하나님의 영이 톡 칠 때 비로소 창작자의 작업이 시작됩니다. 그 작업은 고독하지만 행복한 시간입니다. 사서 고생을 하면서도 그것을 ‘신나는 삶이라니’라고 말하는 것은 그 때문일 것입니다. 한국 개신교회가 소홀히 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이미지의 활용입니다. 중세에 제작되었던 성화나 이콘은 단순히 글을 모르는 이들에게 성서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그 이미지들은 우리 일상 속에 영원의 빛을 끌어들입니다. 일상에 매몰되어 살아가는 동안 잊기 쉬운 ‘다른 세계’를 상기시켜 줍니다. 세상의 성사(Sacramentum Mundi), 일상적인 것들 속에서 영원을 보는 눈을 가진 사람은 행복합니다. 이 책이 한국교회에 작은 선물이 되면 좋겠습니다. 이종용 목사님의 배너 제작이 지속될지는 알 수 없지만 ‘신나는 삶’은 지속될 수 있기를 빕니다. 산수(傘壽)에 이르기까지 은혜의 우산을 씌어주신 분과 동행하는 삶의 이야기가 더욱 풍성해지기를 기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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