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님 컬럼

제목 선물 경제로의 전환은 가능한가? 2025년 12월 13일
작성자 김기석

선물 경제로의 전환은 가능한가?

   -로빈 월 키머러의 <자연은 계산하지 않는다>에 기대어
 

<이끼와 함께>, <향모를 땋으며>를 통해 우리를 깊은 생태적 영감의 세계로 이끈 미국의 생태학자 로빈 월 키머러가 <자연은 계산하지 않는다>는 책으로 다시금 다가온다. 이 책의 원제는 ‘The Serviceberry’인데 번역자는 한국의 독자들을 위해 이 책의 핵심 메시지를 제목으로 삼았다. 책 표지에는 ‘식물학자가 자연에서 찾은 풍요로운 삶의 비밀’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책 페이지를 여는 순간 독자들은 마치 선물처럼 양손에 가득 베리를 받쳐들고 있는 세밀화와 만나게 된다. 그 손 옆에는 나비 한 마리가 나풀거리고 있다. 평화롭고 풍요로운 광경이다. 책장을 넘기면 베리가 잔뜩 열린 나뭇가지에 앉아 부리에 베리를 물고 있는 예쁜 새 한 마리가 우리를 바라본다. ‘이 풍요로운 세계에 와서 함께 기뻐하지 않을래요?’ 묻고 있는 것 같다.

“저녁의 서늘한 숨결이 언덕 숲에서 흘러나와 낮의 열기를 흩뜨리고 새들이 모여든다. 새들도 서늘함을 나만큼 간절히 바란다. 왁자지껄한 부름 소리가 웃음소리처럼 들린다. 나도 똑같이 기뻐하며 웃음으로 화답한다. 다들 내 주위에 있다.”(11) 책을 여는 첫 문장이다. 늘 주변에 대해 경계심을 품고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이 문장은 ‘다른 세계’가 있음을 상기시킨다. 그 세계의 핵심어는 함께함의 기쁨이다. 낯설지만 우리 마음속에 그리움의 형태로 깃들어 있는 세계이다.

하이데거는 기술문명을 돌아보며 “오늘날 자연은 더 이상 피어나는 것이 아니라, 명령을 수행해야 하는 ‘재고품’이 되었다”고 말했다. 인간은 자연을 스스로 드러나게 하지 않고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내놓으라고 닦달할 뿐이다. 그 결과 인간은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그 대가는 엄청나다. 기후는 붕괴 위험에 처했고, 욕망의 터 위에 세워진 문명은 뿌리로부터 흔들리고 있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긴장이 높아가고, 적대감이 심화되고 있다. 인공지능의 시대가 열렸지만 사람들은 쉽게 희망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어려울 때 우리 삶을 지탱해주던 공동체가 허물어지면서 삶은 한결 위태로워졌다. 불확실성이 점차 심화되면서 불안감이 스멀스멀 사람들 사이를 누비고 있다. 탐·진·치 삼독을 제도화한 자본주의 체제는 인간을 욕망으로 작동되는 기계 속으로 밀어넣었다. 어느 누구도 쉽게 대안을 말할 수 없는 시대이다. 시간이 촉박하다. 그렇다고 하여 허둥대고만 있을 수는 없다. 결과를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새로운 삶의 질서를 만드는 이들이 필요한 때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국론>에서 “시작이 있기 위해 인간이 창조되었다”고 말했다. 자유로운 주체로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이 인간의 인간다움이자 인간의 조건이다.

키머러는 이미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그는 인간이 자연 속에 속한 존재임을 잊지 않는다. 인간은 자연이 주는 선물을 누리며 산다.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다. 자연은 해와 공기와 새와 비와 함께 선물로 다가온다. 자연을 상품이 아닌 선물로 여기는 순간 우리와 자연의 관계는 변화하게 마련이다. “세상에 선물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자신이 호혜성의 그물망 안에 속해 있음을 느끼게 된다.”(38) 보상에 대한 기대 없이 주어지는 선물은 주는 이와 받는 이 사이에 연결의 끈을 형성한다. 자연이 선물임을 자각하는 이들은 나의 존재가 다른 존재들에 기대어 있음을 자각한다. ‘너 없이는 나도 없다’는 말은 종교적인 언술 같지만 생태학적 진실을 보여주는 말이다.

자연을 선물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보이는 첫 번째 반응은 감사이다. 감사는 우리가 누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마음이다. 키머러가 속한 아메리카 선주민 오논다가 네이션 사람들에게 감사는 ‘만물보다 앞서는 말’이라는 뜻이라 한다. 감사는 단순히 자신에게 주어진 것에 대한 예의바른 응답이 아니라 삶의 태도이다. 그래서 키머러는 말한다. “감사를 표현하는 것은 순진무구해 보이지만, 혁명적 개념이기도 하다. 소비 사회에서 만족은 급진적 태도다. 희소성이 아니라 풍요를 인정하는 것은 충족되지 않은 욕망을 창조함으로써 번성하는 경제에 타격을 가한다. 감사는 충만의 윤리를 계발하지만, 경제는 공허를 필요로 한다.”(로빈 월 키머러, <향모를 땋으며>, 노승영 옮김, 에이도스, p.169) 감사와 자족하는 마음은 소비 사회에서 급진적 태도인 동시에 불안에 대한 해독제이다.

자연을 선물로 받아들이는 이들의 두 번째 반응은 보답이다(23). 식물이 준 선물에 대한 보답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물을 주거나, 잡초를 뽑아주거나, 감사의 노래를 부르는 방식으로 보답할 수 있다. 꽃들을 수정시키는 곤충들의 서식처를 만들거나 지켜낼 수도 있다. 예술 작품을 제작하여 사람들을 호혜성의 그물로 초대할 수도 있다. 키머러는 “감사와 호혜성은 선물 경제의 화폐”(24)라고 말한다. 상품 경제는 상호 책임에서 벗어나게 하는 동시에 호혜성의 흐름을 단절시킨다. 선물 경제의 요체는 소유가 아니다. 주어진 것을 선물로 여길 때 자연은 소유물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 된다. “무언가를 소유하면서 사랑하는 건 불가능하다. 소유는 소유 대상의 내재된 자유를 억압하므로 소유자는 힘을 얻지만 소유 대상은 쇠약해진다”(로빈 월 키머러, <이끼와 함께>, 이인해 옮김, 눌와, p.231) 소유 대상을 쇠약하게 만드는 일이 반복되고 심화될 때 우리 삶의 자리는 황무지로 변한다.

 시장 경제는 결핍을 자극함으로 작동된다. 만족은 시장 경제의 적이다. 신학자 안병무는 공적인 것을 사적인 이익으로 전유하려는 태도, 곧 공(公)의 사유화가 죄라고 말한다. 신적인 생명 질서를 인간의 소유, 생산, 지배 체제로 바꾸는 행위를 통해 생명이 일렁이는 세상은 살벌한 경쟁이 지배하는 전장이 된다. 전장으로 변한 세상에서 연민과 이해와 존중과 사랑이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든다. 각자도생의 살벌한 세상에서 모두가 발톱 가진 짐승처럼 변할 수밖에 없다. 인간 소외는 그렇게 일어난다. 시장 경제 질서가 제시하는 서사를 믿을 때 사람들은 서로를 적대하는 이야기 속에 끌려 들어간다. ‘다른 삶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망각된다. 모든 것이 상품이 된 세상은 우리에게 결핍을 자극하고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을 앗아간다. “소속감, 관계, 목적, 아름다움처럼 결코 상품화할 수 없는 것들 말이다.”(111) 키머러는 “선물 경제의 화폐는 관계”(50)라고 말한다. 관계는 감사와 상호의존 그리고 계속되는 호혜성의 순환으로 표현된다. 이 관계의 흐름을 단절시키지 않을 때 공동체는 번성한다. 선물 경제는 축적을 지향하지 않는다. 축적에 대한 욕망은 사랑의 흐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애굽 땅을 벗어나 약속의 땅을 향해 가던 고대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먹을 것이 떨어졌을 때 신을 원망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당장의 결핍으로 인해 그들은 과거를 미화하여 기억한다. 신산스러운 애굽에서의 종살이를 그들은 “고기 가마 곁에 앉아 배불리 음식을 먹던 그때”(출애굽기 16:3)로 추억한다. 야훼는 그들에게 메추라기와 만나를 내려준다. 사람들은 제각기 만나를 거둬 일용할 양식을 삼았다. 야훼는 그날그날 먹을 만큼만 거두라고 명했다. 거둬들인 것이 많기도 하고 적기도 했지만 오멜로 되어 보면 많이 거둔 사람도 남지 않았고 적게 거둔 사람도 모자라지 않았다. 만나의 경제학이 가리키는 것은 나눔의 경제학이 아닐까? 미래를 위해 여퉈두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것은 곧 상하거나 벌레가 먹어버렸다. 경험은 만나를 축적하는 일의 무용함을 가리켰고, 많이 거둔 이들은 적게 거둔 이들에게 나누어 주었을 것이다. 이런 나눔을 통해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키머러는 북미 선주민들의 신화와 전설 속에 등장하는 괴물 ‘윈디고’ 이야기를 들려준다. 혹독한 환경 속에서 살던 한 사람이 굶주림을 견디지 못하고 동족의 살을 먹는 죄를 범한다. 그 이후 그의 영혼은 얼음처럼 굳어지고, 마음이 짐승처럼 변했고, 모습도 인간의 형체를 버려 괴물이 되고 말았다. 그가 바로 ‘윈디고’이다. 윈디고는 눈보라 속을 떠돌며 사람들의 마음에 탐욕과 식욕을 심어주려 한다. 자기와 같은 괴물로 만들려는 것이다. “윈디고는 너무 많이 취하고 너무 적게 나누는 질병을 앓”(100)는 존재이다. 그런데 윈디고는 우리와 동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우리의 두려움과 실패로부터 탄생한 존재이다. “윈디고는 자신의 생존을 무엇보다 우선시하는 우리 내면의 심리를 일컫는 이름”(<향모를 땋으며>, p.446)인 것이다. 경쟁을 내면화하고 사는 동안 우리는 영혼을 돌보는 일에 소홀해진다. 경외심과 경탄의 능력을 잃을 때, 고통받는 타자들의 요구에 응답하지 못할 때 우리 영혼은 납작해진다. 부피를 잃은 영혼이 곧 윈디고이다.

악마의 맷돌이 돌아가는 세상은 자연을 선물로 보지 않는다.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경제체제는 멸종의 엔진이다. 우리는 이미 가공할만한 지불 청구서를 받았다. 기후 재앙이 그것이다. 인류세 혹은 자본세라는 말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지 이미 오래되었다. 인간의 활동이 지구의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음을 상기시키기 위한 용어이다. 이런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풍요를 지향하는 인간의 마음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욕망 중심의 서사에 사로잡힌 이들은 세이렌의 아름다운 노랫소리에 이끌려 파멸의 길에 들어서는 뱃사공들과 다를 바 없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가 울려 퍼지는 세이렌의 섬이 모든 생명의 무덤이라는 사실은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키머러가 제시하는 선물의 경제학이 소비사회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선물의 경제학이 소비사회의 거대한 흐름을 되돌릴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할 수 없다고 하여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은 직무 유기이다. 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해야 하기에 해야 하는 일이 있다. 인간의 인간다움은 불가능의 가능성을 붙드는 데 있다. 욕망의 물결이 일렁이는 바다 한복판에서 맑은 물을 솟쳐내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비록 미약하지만 세상사에 지친 이들에게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열어 보이는 희망의 징표이다. 새로운 삶은 중심이 아니라 변방에서 시작된다. 리베카 솔닛은 “주변부가 오히려 가장 풍요로운 장소”라고 말한다. 다른 영역을 넘나들기에 유리한 위치이기 때문이다. 한사코 중심에 속하려 하는 이들은 변화와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기에 새로운 삶을 빚어내지 못한다.

키머러는 “시장경제 바깥에서 상호의존의 그물망을 만들 수 있다.”(111)고 말한다. 자연계가 경쟁과 희소성 대신 호혜성과 나눔을 통해 건강을 유지하는 것처럼, 재화나 서비스를 즉각적인 보상을 기대하지 않고 제공하는 이들이 있다. 돈으로 구매할 수 없는 가치들 즉 우정·관계·돌봄·나눔·보호·공동체가 굳건할 때 우리를 욕망의 벌판으로 내모는 내적 공허함은 크게 줄어든다. 개인주의가 심화된 세상ㅜ에서 사람은 누구나 외롭다. 뿌리 뽑힘, 안식 없음, 고향 상실 등이 현대인들의 내면 풍경을 이룬다. 선물 경제학은 관계라는 화폐를 통해 사람들 사이에 생명의 흐름을 만든다. 선물의 경제학이 자본주의에 대한 전면적 대안은 될 수 없을지 몰라도 작은 숨구멍은 될 수 있다.

선물의 경제학은 사회 제도 속에서도 이미 일부 적용되고 있다. 지역 화폐, 타임뱅크, 사회적 협동조합, 품앗이, 생태마을, 크리에이티브커먼스, 위키백과,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등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이러한 풀뿌리 혁신을 통해 인간적 가치를 파괴하는 경제체제에 저항하는 동시에,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들을 소중하게 지켜나갈 때 세상은 새로워질 것이다. 성경은 땅의 주인은 하나님이라고 고백한다. 인간은 잠시 그곳에 머물다 떠나는 나그네일 뿐이다. 땅은 모든 생명이 깃들어 살아가는 공동의 집(오이코스)이다. “땅과 그 안에 가득 찬 것이 모두 다 주님의 것, 온 누리와 그 안에서 살고 있는 모든 것도 주님의 것이다”(시편 24:1) 이 놀라운 고백은 인간 중심주의의 오만을 허무는 망치이다. 키머러는 땅에 기대어 살아가는 뭇 생명들을 사용가치에 따라 분류하기보다는 소중한 이웃으로 대한다. 그가 새나 짐승들에게 ‘님’ 자를 붙이는 것은 더 이상 그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우리가 누리는 것들을 선물로 여기는 마음이 물결처럼 번져갈 때 세상은 돌연 축제의 공간으로 변할 것이다. ‘자연은 계산하지 않는다’. “희소성이 아니라 호혜성”(94)이 우리 삶을 아름답게 만든다. 이제 키머러가 열어 보이는 풍요로운 세상으로 우리가 들어갈 차례이다.

(* <녹색평론> 192호, 2025년 겨울호에 실린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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