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컬럼

제목 새로운 세상을 시작하자 2015년 12월 04일
작성자 김기석

새로운 세상을 시작하자


바야흐로 기다림의 절기이다. 학생들은 방학을 기다리고, 산모는 태중의 아이와 만날 날을 기다리고, 수험생들은 합격 소식을 기다린다. 거리에서 찬 바람과 맞서야 하는 이들은 아침 해가 밝아오기를 학수고대한다. 세상이 왜 이 모양이냐며 탄식하고 있는 이들은 새로운 세상이 도래하기를 기다린다. 하지만 그런 세상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척박한 대지에 희망의 씨를 뿌리는 이들과 강고한 벽에 작은 틈이라도 만들기 위해 온 몸으로 ·부딪쳐나가는 이들을 통해 온다. 애굽의 전제정치 아래 신음하던 히브리인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대한 소망을 품고 광야로 들어갔다. 먹을거리도 마실 물도 구하기 어려운 그곳에서 그들은 자유인으로 살기 위해서는 대가를 치러야 함을 배웠다.


오늘 우리가 고대하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테러와 전쟁이 사라지고, 빈곤과 질병으로 인해 고귀한 생명이 쓰레기처럼 버려지지 않는 세상, 사회적·인종적·종교적 차별이 사라지고 모든 사람이 각자에게 품부된 생명의 몫을 온전히 살아낼 수 있는 세상이 아닐까. 그런 세상을 바라고 기다리는 이들은 그런 세상을 지금 여기서 시작해야 한다. 자기 속에 있는 미움과 차별과 탐욕을 지우고, 다른 이들을 존엄한 존재로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어둡다. 부유함에 대한 관심이 인간에 대한 관심을 압도하고 있는 세상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장례식장에서 추모곡을 부르기 위해 얇은 단복을 입은 채 추위를 견뎌야 했던 소년소녀 합창단의 모습을 보면서 암담한 생각이 들었다. 두툼한 외투와 목도리를 두른 어른들 틈에서 아이들은 이를 부딪치며 떨고 있었다. 담요와 점퍼를 제공해달라는 요청은 가볍게 묵살되었다. 그 일을 기획했던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한치의 착오도 없는 의전이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자기들의 인사권을 쥐고 있는 윗분의 시선일 뿐이었다. 관료주의의 폐해이다. 얼마 전에는 노인 요양시설에 찾아간 국무총리의 편리를 위해 노인들이 엘리베이터를 두고도 힘겹게 계단을 오르내리도록 한 일이 회자되기도 했다. 윗분을 잘 모시려는 충정이라고는 해도 그들은 선과 후, 본과 말을 뒤집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관료주의가 인간에 대한 따뜻한 관심을 압도할 때 세상은 디스토피아로 빠르게 진입하게 마련이다. 


동국대학교 부총학생회장인 김건중 씨가 논문 표절 시비와 다른 구설에 휘말린 총장과 이사장의 동반퇴진을 요구하며 거의 50일째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그는 지금 생과 사의 경계선에 서 있다. 그의 요구가 합당한 것인지를 평가할 능력은 내게 없다. 다만 당사자들이 수행자일진대 목숨을 건 그에게 다가가 손을 잡아주는 게 마땅하지 않은가 싶은 것이다.


물대포에 맞은 60대 후반의 노인이 생사의 기로에 놓여있는데도 책임있는 당국자 누구도 그를 찾아가지 않았다고 한다. 정부는 오직 정부 시책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폭력성을 무각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정치인들 가운데 자기 안에 갇힌 이들이 너무 많다. 그들은 타자와의 만남이 빚어낼지도 모르는 변화에의 요구를 두려워한다. 당길심이 큰 사람일수록 자폐적인 담을 쌓은 후 바깥 세상을 적대적인 공간으로 규정한다. 내적 빈곤이 빚어낸 참상이다. 지금 기독교인들은 세상을 갈라놓는 다양한 차별의 장벽을 철폐하신 분을 기다린다. 그분은 지금 장벽을 철폐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을 통해 이 땅에 도래한다.


1968년 프라하의 봄 당시 체코 사람들은 소련군에게 어떠한 물리적인 저항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시내에 있는 도로 표지판의 화살표를 모조리 모스크바 쪽으로 돌려놓았다고 한다. 지금 우리 사회의 화살표가 가리켜야 하는 지점은 모든 국민이 존중받는 세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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