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컬럼

제목 어둠 속에서 솟아오르는 빛 2016년 01월 01일
작성자 김기석

 어둠 속에서 솟아오르는 빛


'가슴 벅찬 새해가 밝아왔다'고 쓰고 싶었다. "황새는 날아서/말은 뛰어서/거북이는 걸어서/달팽이는 기어서/굼벵이는 굴렀는데/한날 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고 노래했던 반칠환 시인의 <새해 첫 기적>에 대한 감상을 적고 싶었다. 기적처럼 주어진 시간의 신비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싶었다. 아무도 밟지 않은 설원처럼 깨끗한 새해를 기대했지만 과욕이었던 모양이다. 어제의 세상이 오늘도 지속되고 있다. 얼굴빛 어두운 사람의 낯빛은 여전히 어둡고, 화난 표정으로 사람들을 응시하는 이들의 표독스런 눈길도 그대로이다. 안하무인의 태도로 다른 이들을 투명인간 취급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세상을 활보한다.


지난 해 말 한일 양국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최종적인 합의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한일관계 개선과 대승적 견지에서 이해해달라고 당부했다. 일본의 아베 총리는 위안부 문제는 28일로 최종적으로, 불가역적으로 종결되었다고 선언했다. 이제 다시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죄를 표명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도 말했다. 게다가 "여기까지 한 상황에서 약속을 깬다면 한국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끝난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이게 과연 사과하는 사람의 자세인가? 엎드려 사죄해도 부족한 판에 그는 오연한 목소리로 한국인들의 감정을 능욕했다. 어르고 등골 빼는 격이다. 화가 나기는 하지만 남의 나라 정치인에 대해서까지 화를 터뜨릴만큼 마음이 한가롭지 않다. 우리 나라 정치인들은 왜 인간 존엄에 관련된 문제를 시급히 처리해야 할 문제꺼리로만 인식하는가? 역사의 수레바퀴에 치여 평생 굴욕의 기억을 안고 살아온 할머니들에게 왜 이런 수모를 안겨주나. 그분들의 요구가 돈 몇푼 손에 쥐게 해달라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역사는 예속에서 벗어나 자유를 향하는 긴 여정이다. 자유의 새 세상은 어느 누구도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다른 이의 수단으로 전락하지 않는 세상이다. 바꿔 말하면 '대의를 위하여'라고 말하며 특정인을 벼랑 끝으로 내몰지 않는 세상이라는 말이다. 가해자들은 일쑤 자기들의 파렴치한 행위를 숨기기 위해 피해자들에 대한 인격말살 작업에 나서기도 한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돈벌이를 위해 군대를 따라다녔다고 말하는 식이다. 폴란드 출신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유대인 대학살을 다룬 소설을 소개하면서 "텅 빈 양심, 망각, 잊으려는 의지는 자신들에게 자행된 범죄에 대한 책임을 뒤집어쓴 피해자들에게 가해지는 결정타이며 인간의 기억과 감수성을 박탈하는 악마 같은 행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왜곡되지 않은 역사의 기억은 '홀로코스트' 이후 유럽 유대인이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고, 그들에게 유일하게 약속된 조국"이라고 말했다. 기억을 왜곡시키려는 시도는 피해자들에게서 조국을 빼앗는 행위인 것이다.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조국을 돌려주어야 한다.


히브리의 지혜자는 해 아래 새 것이라 할 것이 없다고 탄식했다. 부정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신산스런 삶에 지친 사람일수록 새로운 시간을 갈망한다. 그러나 '새로움'은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 새롭다는 뜻의 한자어 신(新)은 서 있는(立) 나무(木)에 도끼(斤)가 놓인 형상을 하고 있다. 어쩌면 새로움이란 도낏날에 찍히는 나무의 생생한 아픔 속에서 빚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새로움은 낡은 것이 무너질 때, 굳어 있던 것이 돌파될 때 경험되는 현실이다. 아픔 혹은 어둠을 정면으로 응시할 때 역사의 새벽은 밝아온다. 하나님은 '빛이 있으라' 말씀하심으로 창조를 시작하셨다. 빛은 혼돈과 흑암과 공허가 가득한 세상으로부터 움터나온다. 이제 심호흡을 하고 도래하는 영원의 빛을 맞아들일 일이다. 복된 새해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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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혜(16 01-03 03:01)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말씀으로 많이 이끌어 주심을 받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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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데(16 01-05 10:01)
그저 멀리에 계시기만 하여도 힘 되시는 분들, 부디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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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e Y. Kum(16 01-09 04:01)
지난 한 해도 귀한 말씀과 글 감사드립니다.새해에도 더욱 건강하시고 좋은 글로 많은 깨달음 받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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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민(16 01-09 09:01)
목사님, 매번 매해 통찰을 건네주시니 감사합니다. 올한해도 건강유의하시고 힘을내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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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철(16 10-07 07:10)
목사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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