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컬럼

제목 예수를 되찾아야 할 때 2018년 12월 05일
작성자 김기석
예수를 되찾아야 할 때

로빈 마이어스의 책 <Saving Jesus from the Church>를 들고 다니며 읽을 때 나는 많은 오해를 받았다. 사람들은 흘끔흘끔 책과 나를 번갈아 보곤 했다. ‘교회로부터 예수를 구하라’는 제목도 제목이려니와 표지가 자극적이었기 때문이다. 머리에 가시 면류관이 씌워진 예수는 극심한 고통과 피로 때문인지 반쯤 눈을 감고 있다. 그런데 그의 입에는 은색 공업용 테이프가 붙어있다. 사람들은 아마도 그 테이프를 내가 붙인 것으로 오해했던 모양이다. 교회에서 침묵을 강요당하는 예수라니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1970년대 초에 김지하가 ‘금관의 예수’라는 희곡을 통해 제기했던 문제도 바로 이것이었다. 예수의 이름으로 모이는 교회에서 정작 예수는 발언권을 얻지 못한다. 이런 상황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에 나오는 대심문관장에도 등장한다. 재림한 예수는 교회 당국에 의해 지하 감옥에 갇히고, 대심문관으로부터 ‘당신은 오지 말았어야 했다’는 항변을 듣는다. 사람들을 자유의 길이 아니라 예속의 길로 인도함으로써 많은 것을 누리는 교권주의자들에게 예수는 불편한 존재가 맞다. 오늘 우리는 어떤 예수를 따르는가?

예수는 갈릴리의 어부들에게 ‘나를 따르라‘고 했지 ‘나를 믿으라’고 하지 않았다. 예수를 따를 생각도 능력도 없는 이들일수록 예수를 경배의 대상으로 객체화하고, 그를 높이는 자기 행위를 기꺼워한다. 갈릴리 민중들의 삶 속에 녹아들어 그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생명을 온전케 한 예수,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설 땅이 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낮추었던 예수,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 들과 산을 헤매는 목자이신 예수,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놓은 온갖 장벽들을 철폐하기 위해 온 몸으로 부딪쳐 나갔던 예수는 지금 어디 있는가?

미국의 기독교 평화잡지인 ‘소저너스Sojourners’의 발행인인 짐 월리스Jim Wallis는 지난 3월 29일 “트럼프 복음주의자들로부터 예수를 되찾자”(Reclaiming Jesus from the Trump Evangelicals)는 글을 썼다. 트럼프 복음주의자들은 보수적인 백인 복음주의자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들은 인종주의에 기대 세상을 바라본다. 그리고 ‘미국 우선‘ 정책의 절대적 지지자들이다. 월리스는 예수가 지금 그들에게 볼모로 잡혀 있다면서, 예수를 되찾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그 글을 다 요약할 수는 없지만 몇 가지 내용은 우리도 참고할 만하다. 

우리가 되찾아야 할 예수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지음 받았기 때문에 누구도 차별 받아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시는 분이다. 인종주의적 편견은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에 대한 모욕인 동시에,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잔혹한 부정이다. 인종, 피부색, 종교, 문화의 차이가 누군가에 대한 차별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는 말이다. 교회는 세상에 만연한 그러한 차별을 철폐할 때 비로소 그리스도의 몸 구실을 제대로 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되찾아야 할 예수는 여성들에 대한 성적 학대와 폭력은 하나님에 대한 도전이라고 가르치는 분이다. 그릇된 종교적 권위를 앞세워 여성들을 성적으로 유린하는 사이비 종교 지도자들의 행태가 연일 폭로되고 있다. 자기의 비루한 욕망충족을 위해 누군가를 도구화하거나 물화하는 이들은 하나님의 엄한 심판을 면할 수 없다. 

우리가 되찾아야 할 예수는 가난한 자의 모습으로, 그리고 연약한 자의 모습으로 오고 계시는 분이다. 부유함에 익숙해질 때 사람은 누구나 진리로부터 조금씩 멀어진다. 그 과정은 소리 없이 쌓이는 먼지와 같아서, 여간해서는 알아차리기 어렵다. 어느 신학자는 사람이 자기 삶을 위한 도구를 바꾸는 순간 신까지도 바꾼다고 말했다. 개인도 그렇거니와 교회는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동원할 수 있는 돈의 액수가 커질 때, 어떤 일을 위해 동원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과신에 사로잡힌다. 그때 가난한 이들은 시혜의 대상일 뿐,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주님이 아니다. 영혼의 전락은 이렇게 진행된다. 한국교회가 위기라는 소리가 높아간다. 지금이야말로 예수를 교권주의자들로부터 되찾아와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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