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컬럼

제목 하늘 군대로 일어서다 2019년 06월 12일
작성자 김기석
하늘 군대로 일어서다

하나님,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영혼의 몸살을 앓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제는 전쟁과 폭력의 기억에서 벗어나 
평화의 세상을 꿈꿀 수 있게 해주십시오.
“진실이 땅에서 돋아나고, 정의는 하늘에서 굽어보는”(시85:11) 
세상을 이루기 위해 땀 흘리는 모든 이들을 지켜주십시오. 아멘.

앞서 간 사랑하는 사람의 비석을 쓰다듬으며 울음을 삼키는 이들을 볼 때마다 그들이 견뎌야 했던 아픔의 시간이 떠올라 가슴이 미어진다. 국립 현충원에 줄지어 선 비석들은 비바람 속에서도 무심코 세월을 벗 삼고 있지만, 남은 자들의 가슴에 남은 회한은 좀처럼 가실 줄 모른다. 영문도 모른 채 역사의 흐름 속에 소환되어 짧은 세월을 살다 간 사람들, 그들도 평범한 행복을 구하던 사람들이었다. 전쟁과 역사적 갈등은 그런 꿈을 무참히 짓밟았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들은 누군가가 흘린 땀과 피와 눈물 덕분이다.

세상 도처에서 분쟁 소식이 들려온다. 증오와 폭력이 넘친다. 많은 이들이 자기들의 고향을 떠나 세상을 떠돈다. 난민의 지위를 인정받지 못한 이들은 이등 시민 혹은 역사의 잉여로 취급받고 있다. 극심한 빈곤과 차별은 그들의 가슴에 세상에 대한 원망 혹은 기득권을 누리는 이들에 대한 원한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불화의 싹은 그렇게 움튼다. 제국주의의 틈바구니에서 가녀린 생존을 이어가던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은 세상에 아름답고 놀라운 비전을 제시했다. 

“주님께서 민족들 사이의 분쟁을 판결하시고, 원근 각처에 있는 열강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실 것이니, 나라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나라와 나라가 칼을 들고 서로를 치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군사 훈련도 하지 않을 것이다”(미4:3). 

어처구니없는 꿈이다. 현실적이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런 꿈조차 빼앗긴다면 세상은 빈곤해질 것이다. 평화는 우리 속에 비관주의를 심어주려는 이들에 맞서 끝끝내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는 이들을 통해 온다. 꿈만 꿀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시작할 용기를 내야 한다. 믿음의 사람들은 ‘다른 세상’을 상상하고, 상상을 실현하기 위해 투신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미국의 평화 운동 단체인 '화해연대(Fellowship of Reconciliation)'의 총무인 존 디어(John Dear) 신부는 전쟁이나 폭력이 없는 새로운 세계를 원한다면 "바로 지금 여기에서 우리 안에 있는 폭력을 뿌리 뽑고 우리에게 상처를 준 이들을 용서하고, 쓰라림과 앙심을 놓아 버리고 서로 화해하며, 하나님의 영이 자유롭게 우리 사이를 운행하시도록 자신을 열어야 한다"고 말한다.

지배와 독점의 욕망이 불화와 전쟁의 씨앗이라면 섬김과 나눔은 평화의 씨앗이다. 개인이나 사회나 국가나 다 마찬가지이다. 히브리의 한 시인은 하나님의 영에 이끌리는 이들을 통해 개시되는 세상을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 “사랑과 진실이 만나고, 정의는 평화와 서로 입을 맞춘다 진실이 땅에서 돋아나고, 정의는 하늘에서 굽어본다”(시85:10-11). '사랑'(헤세드)과 '진실'(에메트), '정의'(쩨데크)와 '평화'(샬롬)는 구원자이신 하나님의 성품이다. 언약에 충실하신 하나님의 사랑, 상황이 어떻게 변해도 한결같으신 하나님의 성실하심, 공평함이 없는 세상에서 주변화된 사람들을 회복시키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심, 그 결과로서 주어지는 평화. 우리는 이 네 기둥 위에 세워진 세상을 꿈꾼다. 

이런 세상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선물이지만, 우리가 삶으로 구현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선물은 늘 작은 씨앗의 형태로 주어진다. 물을 주고 가꾸는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법이다. 사랑하기에 하나님은 우리를 성숙하고 책임적인 존재로 인정하신다. 

경쟁이 일상이 된 세상에서 우리 마음에서 사랑이 식어갈 때도 애써 사랑을 선택해야 한다. 신의 없는 이들과의 잦은 만남으로 우리 속에 타자에 대한 불신이 깊어갈 때도 성실함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무정한 세상이 이웃을 욕망 충족의 수단으로 물화시키려 할 때 감연히 일어나 그들의 편이 되어주어야 한다. 그런 삶을 소홀히 하면서 평화를 꿈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금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돈이 아니라 도덕적 자산이고, 고통 받는 이들에 대한 연민이고, 원칙에 대한 충성이다. 

비폭력운동을 전개했던 마하트마 간디는 평화를 꿈꾸는 이들이 무력하면 안 된다며 ‘샨티 세나’를 제안했다. 인도 말로 샨티는 평화이고 세나는 군대이다. 그가 이런 조어를 만든 것은 베다 경전에 나오는 한 대목 때문이었다. “오 불행한 자들이여, 당신들의 말은 군대의 뒷받침이 없구나.” 이 구절은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힘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뜻일 것이다. 평화가 정말 우리에게 소중한 것이라면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비상한 노력이 필요하고, 또 그 일에 헌신하는 이들이 필요하다. 에스겔은 해골의 골짜기에 하나님의 바람이 불어오자 해골들이 하늘 군대로 일어서는 모습을 보았다. 전쟁과 폭력이 없는 세상의 꿈을 이루기 위해 일어서는 사람들, 그들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닐까?
목록편집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