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컬럼

제목 하늘땅사람이야기34-아름다운 영혼의 성좌 2015년 08월 17일
작성자 김기석

 아름다운 영혼의 성좌


주님 안에서 평안하시기를 빕니다.

황급히 올라오느라 인사조차 드리지 못하고 왔습니다. 결례를 한 것 같습니다. 결과적으로는 한 이틀 에어컨 바람에 시달린 탓인지 간헐적으로 기침이 터져 나와 밤잠을 이루지 못하게 하네요. 잠을 이루지 못하니 생각이 많아집니다. 비몽사몽간에 써야 할 글을 머리 속에서 몇 번씩 썼다가 지우곤 했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그 찬란했던 생각의 편린들이 빛을 잃고 만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 생각의 단초를 놓치고 싶지 않아 조바심합니다. 


인생을 꿈이라고 말한 이들이 있습니다. <삼국유사> '탑상편'에 나오는 '조신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세달사라는 절에 살던 그는 절에 속한 장원(莊園) 관리를 위탁받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태수 김흔공의 딸의 자태에 반해 전전긍긍하지요. 그는 낙산사의 관세음보살을 찾아가서 그 앞에 엎드려 요행 얻기를 빌었습니다. 하지만 여인은 아버지의 강권에 의해 다른 이에게 시집을 갔고, 조신은 다시 관세음보살 앞에 엎드려 슬피 울다가 잠에 빠집니다. 그는 꿈 속에서 그리던 여인과 만나 가정을 이루고 40여년 세월을 자식들을 낳아가며 근근이 살아갑니다. 궁핍했기에 초근목피로 연명해야 했고 때로는 구걸을 해야 하기도 했습니다. 자식들이 굶주려 죽자 아내는 서로 헤어지는 낫겠다며 이렇게 말합니다. 


"혈색 좋던 얼굴과 어여쁜 웃음도 풀 위의 이슬처럼 사라져버렸고 지란(芝蘭) 같은 백년가약도 버들개지가 바람에 날리듯 없어져버렸습니다. 당신은 나 때문에 괴로움을 받고, 나는 당신 때문에 근심이 되니 옛날의 기쁨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것이 바로 우환의 터전이었습니다."(일연, <삼국유사2>, 이재호 옮김, 솔, 2006년 3월 3일, p.123)


부부가 아쉬움 속에 막 헤어지려 하다가 조신은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아침이 되니 수염과 머리털이 다 희어졌고 정신이 망연(茫然)하여 세상에 뜻이 아주 없어져버렸고, 오욕에 찌든 마음도 얼음 녹듯 없어져 버렸다고 합니다. 이미 수염과 머리털이 희어진 처지이지만 아직은 세상에 대한 관심이 얼음 녹듯 사라져버리지 않아 이 오탁(汚濁)의 거리를 바장이고 있습니다. 장자는 나비가 되어 날아다니는 꿈을 꾸고 난 후에 "내가 나비의 꿈을 꾼 것인가, 아니면 나비가 장자라는 사람의 꿈을 꾼 것인가" 물었다지요? 이른바 호접몽(胡蝶夢)입니다. 나비와 장자가 구분이 되기는 하지만 그 차이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뜻일 겁니다.


백일몽은 허망하지만 이렇듯 깨달음에 이르는 꿈을 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꿈은 또한 꿈입니다. 사람들이 가끔 제게 '꿈이 뭐냐고 묻습니다'. 이 나이에 무슨 꿈이 있겠습니까만 꿈 없는 사람은 루저라고 세뇌를 받아서인지 그들의 질문은 집요합니다. 엊그제 모임에서 닉네임을 정하고 그렇게 정한 까닭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서 참 복잡한 심회가 되었습니다. 상당수의 참가자들이 자기가 온몸으로 지향하는 가치를 중심으로 닉네임을 구성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분들의 착하고 예쁜 꿈을 마음으로 응원하면서도 '아, 저 순박한 마음이 세상의 광풍 앞에서 흔들리지 않을까, 금이 가는 것은 아닐까' 불길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제 차례가 되어서 나의 닉네임을 '우두커니'로 정해보았다고 말했습니다만, 큰 의미는 없습니다. 뭐든지 하라고, 해야 한다고 떠미는 행동 과잉의 시대에 대한 소극적 저항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과거의 찬란했던 혹은 쓰라렸던 기억에 사로잡히지도 않고, 미래에 대한 기대 불안에 사로잡히지도 않고, 그저 지금 여기서의 삶에 충실하고픈 게 제 꿈이라면 꿈입니다. 이것은 폴 틸리히의 '영원한 지금'으로 설명해볼까 싶은 생각도 들지만 굳이 그럴 필요조차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은 제 이야기에 대한 응답으로 미래는 우리에게 속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런 계획도 세울 생각이 없다면서 철저한 수동성 속에서 살기를 바란다는 어느 목사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신앙은 사실 수동과 능동의 조화이지요. 이 두 가지는 상반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하나입니다. 


선생님은 젊은 벗들과 어울려 생활공동체를 일구고 계십니다. 그 아름다운 꿈의 현장을 볼 수 있었던 것이 제게는 큰 기쁨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정신을 공동체적 삶을 통해 번역해내지 않으면 허망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고 하셨지요? 제게도 생활 공동체를 만들어 볼 생각이 없냐고 묻는 이들이 있습니다만, 천성적으로 낯가림이 심한 저는 선뜻 그런 생활로 뛰어들 엄두를 못내고 있습니다. 스스로도 낯설기 이를 데 없는데, 가족이 아닌 이들과 더불어 같은 공간을 분유하며 평화롭게 지낼 용기가 제게는 없습니다. 성격이 그리 모난 편은 아니니 적응할 수는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역시 제게는 '고독의 자리'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수도 공동체에 머물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베네딕도 성인이 기도에 정진하던 곳에 세워진 수도원 입구에는 'ora et labora'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기도와 노동'이야말로 수도생활의 핵심이라는 뜻일 겁니다. 기도와 노동 그리고 침묵에 대한 목마름은 평생 저를 괴롭히는 강박관념이기도 합니다. 성무일도에 따라 기도하고, 적당한 몸 노동을 통해 몸으로부터의 소외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바라면서도 실현하지 못하는 것이 정착생활에 익숙해진 사람의 비애입니다. 작년에 이탈리아의 아씨시에 있는 프란체스코 수도원 구석구석으로 저를 안내해 준 한 수사는 "낯선 이들과 어울려 사는 게 힘들지는 않냐?"는 저의 물음에 씁쓰레한 미소를 짓더니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부모와 친척까지 다 버리고 이곳에 들어온 독한 사람들의 모임이니 오죽하겠어요." 그의 말은 수도생활에 대한 나의 막연한 동경이 얼마나 관념적인가를 다시 한번 자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공동체생활은 끝없는 모험일 겁니다. 삶의 방식과 습관이 다른 타자를 마음으로 용납하고, 존중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쉽지 않은 일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을 진심으로 환대해주시고, 어떤 이야기든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이야기를 접했다는 듯 경청해주시는 선생님의 모습에서 그 공동체가 소박하지만 아름답게 유지되는 까닭을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공동체 거실에 걸려 있었던 그 많은 영적 인물들의 사진과 초상화는 선생님과 그 공동체가 지향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넌지시 일러주고 있었습니다. 그 벽면 위에서 위대한 혼들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기존체제를 타격하여 조그만 틈을 만들고 그 틈을 통해 하늘빛이 비쳐들게 했던 사람들, 어두운 세상과 온몸으로 부딪치면서 한 줄기 섬광으로 타오르던 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니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아름다운 영혼의 성좌가 거기에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이용도, 루쉰, 토리, 김약연, 강순명, 마더 테레사, 톨스토이, 토마스 아퀴나스, 최홍종, 이세종,  토머스 머튼, 함석헌, 디트리히 본회퍼, 마하트마 간디, 원경선, 가가와 도요히코, 우찌무라 간조, 김교신, 김구, 전우익, 로제 수사, 이승훈, 앨버트 슈바이처, 이현필, 프란체스코, 이찬갑, 권정생, 윤동주, 유누스, 문익환, 안창호…. 제 기억에 남아 있는 이들만 꼽아보는 데도 숨이 가쁠 지경입니다. 그분들의 면면을 살피는데 왜 김종삼의 시 '墨畵(묵화)'가 떠올랐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눈물겨운 광경입니다. 삶이란 이런 거겠거니 싶기도 합니다. 비록 하루 일 힘에 겨워 발잔등이 부어도 그 고단한 하루를 함께 겪어낼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게 복이라면 복이지요. 소 목덜미에 얹히는 할머니의 손은 '말 없는 말'입니다. 아무리 적막강산이라 해도 삶은 계속되어야 하기에 시인은 차마 마침표를 찍지 못하고 쉼표를 찍었습니다. 내일도 역시 삶은 고단할 겁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조금은 골막한 삶이라 해도 함께 걸어갈 길벗이 있으니 다행입니다. 노량으로 걷다 보면 마침내 마침표에 이르게 될까요? 선생님의 그 벽면에 초대되어 실존의 인사를 나누고 있는 그분들의 견결(堅決)한 품성을 생각하니 세상이 어지럽다고 탄식만 하고 있는 삶이 부끄러워졌습니다. 그분들은 제게 이르십니다. "덧거친 세상을 온몸으로 기지 않으면 하늘에 이를 수 없다. 하늘은 저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저 아래에 있다".


잠깐 동안의 만남이었지만 선생님은 저의 후텁지근한 일상 속에 불어온 시원한 바람과 같았습니다.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선드러진 태도로 맞아주신 사모님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 공동체의 꿈을 마음으로 응원하겠습니다. 제 마음의 성좌에 또 하나의 별이 떠오른 듯하여 기쁜 오늘입니다. 평안을 빕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목록편집삭제

안상남(15 08-17 09:08)
안녕하세요~옥천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어 서서히 적응해 가고 있는 옥천댁입니다.시골의 풍성한 인심에 정신을 못차리고 있습니다.거의 매일 날라다 주시는 채소는 몰론 갓 낳은 달걀,묵은 김치등 일일이 나열하기도 어렵습니다.
목사님의 글을 읽다 인용하신 시를 보고 전율을 느낄만큼 놀랐습니다.얼마 전에 지인이 이 시를 알려주면서 서로의 생각을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제가 시골에 있다 보니 소를 보는 기회가 가끔 있습니다.그래서 더욱 이 시가 애잔했는데 또 이렇게 대하니 어찌나 놀랍던지요.하나의 수묵화를 보듯한 시--넓은 화선지에 단 둘이 하나가 되어 오히려 여백이 넉넉한 흑과 백의 묵화를 상상하며 필요없는 것 버리며 간결하게 살자고 했습니다. 시골의 이 시간은 사위가 너무 조용합니다. 굳이 귀 기울여 듣지 않아도 온갖 풀벌레들이 온 몸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어 하나의 음악처럼 들린답니다 .목사님의 글 되새김질 하듯 읽고 저를 돌아보는 시간 가져보겠습니다.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