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컬럼

제목 하늘땅사람이야기37-누구나 그 수심을 모른다 2015년 09월 07일
작성자 김기석

 누구나 그 水深을 모른다


잘 계신지요?

세상사에 누구보다도 예민하신 분이기에 잘 계실 수 없음을 잘 알면서도 이런 상투적인 인사를 드리는군요. 파란 가을 하늘이 서러운 날들입니다. 신문에서 한 장의 사진을 본 후 제 마음은 그 언저리를 맴돌뿐 다른 곳으로 이행할 줄을 모릅니다. 무지근한 아픔에서 헤어나올 길이 없습니다. 속을 모르는 분들은 내 얼굴이 거칫하다며 잘 먹고 잘 쉬라고 걱정해주십니다. 내 얼굴이 어때서 그러냐고 엉너리쳐 보지만 마음의 어둠만은 숨길 수가 없는 모양입니다. 아일란 쿠르디, 세살박이 시리아 난민, 캐나다로 망명하고 싶었지만 결국 장벽처럼 버티고 선 푸른 바다에서 다섯살박이 형 굴립과 엄마 레함과 더불어 생을 마감함. 감청색 짧은 바지에 붉은 색 티셔츠를 입고 앙증맞은 운동화를 신고 아릴란은 침대에 엎드려 잠이 든 듯한 포즈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 또래의 손자 손녀를 두었기 때문일까요? 차마 그 사진을 똑바로 들여다 볼 수 없었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해를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사람에게나 불의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주신다지요? 그 무심한 공평함이 고마울 때도 있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아버지께서 조금 차별을 해주셨더라면 어땠을까 싶은 거지요? 


먹먹한 마음에 책이 손에 잡히지 않아 괜히 서가만 살피고 있다가 엘리 비젤의 책 <흑야>에 눈이 갔습니다. 나치의 절멸 수용소 경험을 담은 책입니다. 아마도 그 책에 담긴 절절한 아픔이 아니고는 내 마음의 아픔을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서였을 겁니다. 책을 뒤적이다가 로쉬 하샤나 저녁 기도를 드리기 위해 재소자들이 모여드는 장면에 이르렀습니다. 화자인 '나'는 대뜸 하나님께 대들듯 말합니다. "나의 하느님, 당신은 뭡니까?" "당신에게 신앙과 분노와 반항심을 고백하는 이 시달림을 받는 무리에 대해 당신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이 모든 허약과 이 와해와 이 부패 앞에서 우주만물의 주이신 당신의 전능 전지하심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저들의 마음과 저들의 불구된 육신에 왜 아직도 고통을 주십니까?"(엘리 위젤, <黑夜>, 허종열 역, 가톨릭출판사, 1979년 2월 15일, p.82) 회중들의 기도가 계속되는 동안 집전자는 간헐적으로 말합니다. "하느님을 찬미할지어다", "모든 땅과 우주 만물은 하느님의 것!". '나'에게 그 말은 공허하게 들립니다. 그날 '나'는 신에게 간청하지 않기로 작정합니다. 자기가 원고이고 신이 피고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아주 오래 오래 머물렀습니다. 지금도 신을 피고석에 세우고 싶은 이들이 많을 겁니다. 평생 하나님 이야기를 하고 살아왔지만 나는 하나님을 변호할 능력이 없습니다.


오래 전 문화혁명의 와중에 군중들로부터 받은 모멸감에 스스로 목숨을 거둔 중국 작가 라오서의 <루어투어 씨앙쓰>를 읽다가 "비는 공평하지 않다. 공평함이 없는 세상에 내리기 때문이다"라는 구절과 만나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비가 내린 후 시인은 연잎 위의 구슬과 쌍무지개를 읊조리지만 가난뱅이들은 어른이 병 나면 온 식구가 굶주리는 게 현실입니다. 아이들은 배가 고파 좀도둑질을 하거나, 자기 몸을 팔 수도 있습니다. 살아야 하니까요. 천지불인天地不仁을 가르친 노자에게 하늘이 좀 편파적이면 안 되냐고 부르대고 싶습니다. 물론 어리석은 짓이지요. 


작년 로마에서 난민들을 위한 기도회 이야기를 들은 후 난민선에 몸을 싣고 저 망망한 지중해 푸른 물에 몸을 맡긴 이들을 떠올리며 가슴 아파하곤 했습니다. 검은 물에 삼켜진 이들의 애절한 눈빛을 보며 가슴 먹먹해졌던 순간이 떠오릅니다. 기근과 배고픔 때문에 고향을 등지는 사람들, 가물거리는 희망의 불빛을 향해 필사적으로 몸을 내던지는 사람들의 아픔을 어찌 제가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많은 이들이 그 희망의 땅에 당도하지 못한 채 바다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낭만적으로 호명되곤 하던 지중해는 이제는 아픔의 바다가 되었습니다. 기적적으로 구출된 이들의 삶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싸구려 선글래스나 조잡한 기념품을 내보이며 관광객들에게 다가서곤 하던 사람들, 햇볕을 피해 그늘진 곳에 앉아 겁먹은 눈길로 지나가던 사람들을 바라보던 이들이 떠오릅니다.


장 아메리는 고향이란 유년의 나라, 어린 시절의 나라라면서 "그것을 잃어버린 사람은 패배자로 남게 되는데, 타향에서는 더 이상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돌아다닐 수도 없고, 발을 내딛는 것 또한 얼마간의 두려움과 함께 새로 배워야 한다"(장 아메리, <죄와 속죄의 저편>, 안미현 옮김, 도서출판 길, 2012년 11월 20일, p.108)고 말했습니다. 어려운 상황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타향에 이른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갈 것입니다. 문제는 타향에조차 이르지 못한 채 세상과 서둘러 작별하는, 아니 작별을 강요당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을 기억하며 기도하고, 국제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촉구하기는 했지만 직접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은 좀 다릅니다. 분노라기보다는 견디기 어려운 슬픔이 순간순간 나를 엄습하고 있습니다.  


가인은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는 하나님의 물음에“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하고 대꾸했지요. 이것은 죄에 삼켜진 인간의 말입니다. 형제자매를 사랑으로 돌보는 것은 인간됨의 기본입니다. 그런 책임을 방기하는 것은 스스로를 비인간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한다”고, 그리고 억울한 피가 흐른 그 땅은 황폐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땅을 일구며 살았던 가인에게 그보다 더 큰 형벌은 없을 것입니다. 그는 이제 도망자 신세가 되어 생명력이 없는 땅을 경작해야 합니다. 무고하게 죽어간 자의 억울함이 신원되지 않은 땅은 황폐한 땅입니다. 엉뚱하게도 김종삼의 시 <民間人>이 떠오릅니다.


"1947년 봄

深夜

黃海道 海州의 바다

以南과 以北의 境界線 용당浦


사공은 조심 조심 노를 저어가고 있었다.

울음을 터뜨린 한 嬰兒를 삼킨 곳.

스무 몇 해나 지나서도 누구나 그 水深을 모른다."


배에 탄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아기를 바다에 던져야 했던 어머니의 그 비통한 마음을 시인은 이렇게도 건조한 문체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일체의 감상이 배제되어 있기에 더욱 우리 가슴에 큰 울림이 되어 다가옵니다. “스무 몇 해나 지나서도 누구나 그 水深을 모른다”는 시구에서 독자들은 시인이 느끼는 아픔의 깊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아마도 '水深'이라는 기표에는 '愁心'이라는 뜻도 담겨있을 것입니다. 


김기림은 <바다와 나비>에서 "아무도 그에게 수심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나비는 도모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고 노래했습니다. 그를 사로잡았던 '바다'가 무엇인지 분석할 마음은 없지만 '무섭지 않다'는 시구가 오히려 제 몸을 오스스 하게 만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파도를 청무우밭으로 착각하고 내려앉으려다가 어린 날개를 적시고 다시 날아오르는 나비의 외로움도 조금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바다가 짠 것은 세상 사람들이 흘린 시름의 눈물이 흘러들었기 때문이라지요? 


세월호 참사가 난 후 나는 아직 바다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작년에 괌에 초대를 받아갔을 때저를 초대한 이들이 스쿠버 다이빙을 제안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습니다. 물에서 죽어간 이들의 시린 마음이 신원되지 않았는데 물 속에 들어가서 즐기는 것을 스스로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일정이 없는 시간에는 숙소에 틀어박혀 우두커니 창 밖을 내다보거나 가지고 간 책만 읽었습니다. 그게 작년 9월 초였으니 벌써 일년의 세월이 흘렀네요. 세월호 가족들의 눈물은 여전히 마르지 않았는데, 세상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무심히 흘러갑니다. 사람들의 서러운 외침은 일상의 소음 속에 섞여 잦아들고, 잊지 않겠다던 굳은 다짐은 어느 결에 망각의 강으로 흘러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아일란과 305인의 세월호 희생자들은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우리의 죽음 이후 세상이 달라졌냐고? 그리고 우리에게 부탁하고 있습니다. 제발 우리의 죽음을 허비하지 말아달라고. 과연 이 사건들은 의미의 저장소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만드는 것이 살아있는 자들의 책무일 것입니다.


제 글이 가리산지리산 제멋대로 흘러 여기까지 왔습니다. 머리에 파편처럼 떠오르는 이미지들만 마구 나열하고 말았습니다. 그것을 긴 호흡 속에서 통합하고 적절한 언어에 담아낼 내적 여백이 아직은 허락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현실에 거리를 두고 베돌며 살아오기는 했지만 요즘은 유난히 사회적 아픔이 크게 다가옵니다. 헬레네에게 '네펜테'라도 청하여 깊고 행복한 잠에 빠지고 싶은 나날입니다. 괜한 넋두리로 마음을 어지럽게 해드린 것이 아닌지 우려됩니다. 너그러이 용납하여 주시면 좋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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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자정(15 09-07 10:09)
구명조끼를 입고 눈물을 흘리면서 아일란을 쓰다듬고 있는 여학생을 그린 한겨레만화를 보니 더욱더 가슴이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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