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컬럼

제목 CBS 기도문 2015년 09월 10일
작성자 김기석

 하나님, 일년의 절반이 지내고 감사함으로 새로운 시간을 맞이합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하루하루 힘에 겨운 나날이었습니다. 별 일이 없다 해도 마음의 평안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욕망과 현실 사이의 거리를 좀처럼 좁힐 수가 없었습니다. 시대가 주는 아픔의 무게 또한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은 거칠어졌고, 이웃을 위한 여백은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그리스도의 편지답게 살지 못했고, 생명의 향기를 퍼뜨리지도 못했습니다. 이제는 정말 새롭게 살고 싶습니다. 주님, 날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 깃든 하늘을 볼 수 있는 눈을 열어주십시오. 이웃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 단 한 번 주어진 우리 생을 덧없는 일로 채우지 말게 해주시고, 이 땅에 평화의 씨앗을 심고 또 생명을 풍성하게 하는 일에 헌신하며 살게 해주십시오. 아멘. (7/1) 


하나님,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낯을 피해 나무 뒤에 몸을 숨겼습니다. 우리들도 어딘가로 자꾸만 숨고 싶어집니다. 주님은 서로의 차이를 넘어 일치를 경축하며 살라 이르셨지만, 세상은 혼돈와 증오 그리고 서로에 대한 의구심으로 찢겨 있습니다. 서민들은 살기 어려워 발을 동동 구르는데, 정치인들은 정쟁에만 몰두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전쟁과 배고픔을 피해 정든 땅을 떠난 난민들은 여전히 사막과 바다 위를 떠돌고 있지만 그들을 맞아줄 품이 없습니다. 유럽은 폭염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은 이렇게 아픔의 땅이 되고 말았습니다. 주님, 고통과 절망이 강요되는 이런 상황 가운데서 어떻게 희망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지 가르쳐주십시오. 주님의 생기를 우리 속에 불어넣으시어 하늘 군대로 일어서게 해주십시오. 한걸음 한걸음 푯대이신 주님만 바라보며 나아가게 해주십시오. 아멘. (7/8)


하나님, 여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무더위 속에서 허덕이지만 정작 우리 영혼은 스산한 추위 속에 방치되어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마땅히 있어야 할 신뢰가 무너진 세상에 사느라 우리는 지쳤습니다. 깊고 따스한 접촉을 그리워하면서도 이웃들에게 다가서기 위해 선뜻 자기 밖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내적인 어둠과 공허, 그리고 무감각이 우리를 확고히 사로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십시오. 무뎌진 우리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고, 가물거리는 사랑의 심지에 불을 붙여주십시오. 일상의 삶 가운데서 주님의 현존을 경험하게 하시고, 이웃의 눈에서 티끌을 보기 전에 그가 남몰래 흘리는 눈물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들이 되게 해주십시오. 오늘도 세상에서 갈 바를 알지 못한 채 방황하는 모든 이들의 길이 되어주십시오. 주님이 앞서 걸어가신 그 길을 저희도 걷게 하여 주십시오. 아멘. (7/15) 


하나님, 느티나무 그늘 아래서 쉬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평화로워 보입니다. 해질녘 애완견과 함께 천천히 공원을 산책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한가롭습니다. 마가목 노란꽃을 스쳐온 바람이 향기롭습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모든 사람은 평화를 갈망한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확인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어느 곳에서는 폭력에 신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존엄을 인정받지 못한 채 비인간이 되기를 강요당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내면에 깃든 상처의 기억은 또 다른 칼날이 되어 누군가를 찌르고 있습니다. 주님, 거칠어진 우리 마음을 주님 앞에 내놓습니다. 조각난 마음을 주님께 바칩니다. 조각난 유리로 만들어진 스테인드글라스에 저녁 햇살이 비치면 영롱한 빛이 실내를 가득 채우듯, 우리 마음을 그러한 빛으로 채워주십시오. 주님, 무더위 속에 내리는 소낙비처럼 우리 마음에 기쁨으로 내리소서. 아멘. (7/22)


하나님, 매미 소리가 처연한 8월의 아침입니다. 남은 세월이 많지 않음을 알기에 매미는 혼신의 힘으로 노래를 부릅니다. 그 처절한 몰두가 우리의 게으른 삶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킵니다. 

생명은 그리도 소중한 것임을 깨닫습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허망한 일에 탕진하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주십시오. 우리 인생의 때에 맞는 은총을 내려주시고, 우리는 그 은총 속에서 한껏 기뻐하며 살게 해주십시오. 주님, 휴가철이 되어 많은 이들이 반복되는 일상과 삶의 굴레에서 잠시 벗어나 낯선 곳을 찾아갑니다. 그들이 어디에 있든지 주님의 가멸찬 은혜 속에 머물게 해주시고, 창조의 리듬에 따라 몸과 마음을 조율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또한 거리에서 숨막히는 더위와 맞서는 사람들, 쪽방에서 잠을 청하는 이들, 부득이한 사정으로 갇혀 지내는 사람들에게도 주님의 한량없는 은총을 내려주십시오. 아멘. (7/29)


하나님, 아름답고 조화로운 세상을 지어주시고는 서로 귀히 여기며 살라 이르셨건만 우리는 여전히 갈등과 분열 속에서 살아갑니다. 너와 나를 가르는 장벽은 나날이 높아가고, 사람들은 성공의 사다리를 오르느라 분주합니다. 경쟁이 내면화 되었고, 우리는 어디에서도 평안을 누리지 못합니다. 아벨의 피는 여전히 땅에서 하늘을 향해 부르짖고, 가인은 '내가 동생을 지키는 자입니까?' 하고 부르댑니다.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십시오. 주님, 70년 전 이 나라를 일제의 억압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셨지만, 우리는 남과 북으로 갈린 채 오늘까지 살아왔습니다. 동포의 가슴에 총을 겨누고, 날이 선 말로 서로의 가슴에 생채기를 내며 지나온 세월입니다. 브니엘에서 야곱과 에서가 목을 부둥켜 안고 울며 서로를 받아들였던 것처럼, 남과 북이 평화롭게 하나되는 그 날을 속히 앞당겨주십시오. 아멘. (8/5)


하나님, 애통하고 절통합니다. 비무장지대 철책 안에서 생때같은 젊은이들이 큰 부상을 입었습니다. 분단의 상흔이 새겨진 그들의 몸을 생각하니 견딜 길 없는 슬픔이 밀려옵니다. 긍휼히 여기소서. 저들을 붙잡아 주소서. 동족들이 서로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는 이 세월이 언제나 그치려는지요? 나라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고, 다시는 군사 훈련도 하지 않는 그런 시간은 정녕 불가능한 것입니까? 주님, 이 민족을 긍휼히 여겨주십시오. 남북의 모든 당국자들에게 평화를 선택할 수 있는 용기를 허락하여 주십시오. 이제는 여름이 물러갈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황홀하게 아름답던 해바라기가 시들며 영근 씨앗을 남기듯, 우리의 시간도 그렇게 영글어가게 해주십시오. 이제는 고요히 자리에 앉아 우리 속에 심어주신 하나님의 형상을 가다듬고 또 가다듬게 해주십시오. 아멘. (8/12)


하나님, 계절은 이미 처서에 이르렀습니다. 낮은 여전히 무덥지만 아침 저녁 바람은 제법 시원합니다. 여름내 흐트러졌던 몸과 마음을 추슬러야 할 때입니다. 그리움도 설렘도 없이 눅진눅진한 욕망 속을 바장이는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십시오. 삶은 모호하고, 역사에 대한 전망 또한 불분명하지만 오늘을 선물로 받은 이의 감격으로 우리의 시간을 채워가게 해주십시오. 일상 속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을 하나님이 보내주신 소중한 존재로 여기셨던 예수님의 그 마음을 닮게 해주십시오. 하나님, 희망을 찾아 떠돌던 아프리카의 난민들이 지중해 푸른 물에 수장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며 견딜 수 없는 슬픔을 느꼈습니다. 콩나물시루같은 배 밑바닥에 앉아 실낱같은 희망에 기대어 있다가 속절없이 죽어간 이들을 긍휼히 여겨주십시오. 지금도 절망의 강에서 자맥질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 용기를 허락해주십시오. 아멘. (8/19)


하나님, 한반도에 드리워졌던 분쟁과 갈등의 어두운 그림자를 걷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분단국가에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새삼스럽게 경험한 나날이었습니다. 당국자들에게 평화를 선택할 수 있는 용기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장 나쁜 평화가 가장 좋은 전쟁보다 낫다는 사실을 늘 잊지 않게 해주십시오. 공포와 갈등을 조성해서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이들이 있다면 엄히 꾸짖어 주십시오. 전쟁으로 얼룩진 조국을 떠나 세상을 떠돌던 시리아 난민들을 독일이 아무런 조건도 없이 모두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요. 주님,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자민족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슬픔과 절망의 늪에 빠진 이들을 품어 안을 수 있도록 지혜와 용기를 허락하여 주십시오. 주님, 오늘 우리의 삶이 누군가에게는 귀한 선물이 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아멘. (8/26)


하나님, 날마다 살아가는 일이 아득하기만 합니다. 아름답고 멋지게 살고 싶은 우리의 꿈은 현실의 장벽에 부딪혀 자꾸만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주님은 만나는 모든 사람을 아버지께서 당신께로 인도해주신 이로 여기며 사셨습니다. 향을 싼 종이에서 향 냄새가 나듯, 마음을 열고 주님과 만난 이들은 모두 참 사람으로 회복되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일상 속에서 만나는 이들에게 선물이 되지 못했습니다. 상처를 주고 받으며 의구심만 키우고 사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주님,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십시오. 비틀거리면서도 기어이 중심을 잡아가는 팽이처럼, '생명과 평화'라는 영원한 중심에 잇댄 채 살게 해주십시오. "얕은 물은 잔돌만 만나도 소란스러운데/큰 물은 깊어서 소리가 없다"는 어느 시인의 노래처럼 소리 없이 흘러 바다에 이르는 강물처럼 살게 해주십시오. 9월 한 달도 우리와 동행해주십시오. 아멘. (9/2)


하나님, 무심하게 푸른 가을 하늘이 서럽게 느껴지는 나날입니다. 유쾌하고 기쁜 행복의 노래를 부르고 싶지만 지금은 차마 그럴 수 없습니다. 세상 도처를 떠돌고 있는 난민들의 모습이 자꾸만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을 나는 새도 깃들 곳이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셨던 주님, 지금도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주님의 벗들을 긍휼히 여겨주십시오. 터키의 한 해변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3살배기 아일린 쿠르디는 인간의 인간됨을 묻는 기호로 우리 앞에 서 있습니다. 지금 고통 속에 있는 이들을 외면한 채 홀로 자족할 수는 없습니다. 잠들어 있는 세계의 양심이 깨어나게 해주십시오. 주님의 몸으로 부름받은 이 땅의 교회가 세상의 난민들을 품어 안을 수 있도록 힘과 능력을 더하여 주십시오. 주님을 믿는 모든 이들이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등불 하나를 밝히는 마음으로 살게 해주십시오. 아멘.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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