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컬럼

제목 떠도는 말들 2015년 10월 12일
작성자 김기석

 떠도는 말들


방송문화진흥회 고영주 이사장의 말로 인해 정치권이 시끄럽다. 그는 방송통신위원회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노 전 대통령은 변형된 공산주의자, 저는 그렇게 봤다"고 말했고,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공산주의자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한다. 그는 '그렇게 봤다', '확신한다'라는 표현으로 예기되는 야권의 공세를 차단할 방어벽을 만들었다. 자기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니 딱히 뭐라 할 말은 없다. 문제는 그렇게 편향된 사고를 가진 이가 공직에 임명된다는 사실이다. 그런 사고를 가질 수는 있다 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적인 자리에서 당당하게 그것도 미소띤 얼굴로 자기 신념을 말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말은 발설되는 순간 자율성을 갖게 되고, 사실 관계를 떠나 누군가의 의식 속에 그늘을 만들어내게 마련이니 말이다.


답답한 마음에 서가에서 이청준 선생의 <잃어버린 말을 찾아서>를 꺼내 들고 선 채로 드문드문 밑줄친 부분만 찾아 읽었다. 엄혹했던 시기인 1981년에 출간된 이 책의 부제목은 '언어사회학서설'이다. 작가는 언어가 현실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소설적 허구를 통해 천착하고 있다. 작가는 언어에 예민한 존재이다. 그런데 그 언어가 본래의 의미를 담아내지 못한채 세상을 떠돌거나 엉뚱한 뜻으로 왜곡될 때 작가는 진실을 표현할 길이 없어진다. 


"모든 말들이 길을 헤매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제 말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너무나 많은 말을 하여 말들의 주소를 바꿔 놓음으로써 말들을 혹사했고 말들을 배반했고 결국에는 그 말들이 기진맥진 지쳐나게 했다. 말들은 그들의 고향을 잃어버렸고 그들의 고향에 대한 감사와 의리를 잃어버렸다. 그래서 배반당한 말들은 자유였다."(「떠도는 말들」)


배반당한 말들이 세상을 떠돌고 있다. 정처도 없고 주인도 없는 말들은 소통의 통로가 아니라 불통의 담벼락이 되고 말았다.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사람들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 자기편이라 상정한 이들의 말에만 귀를 기울일 뿐, 다른 이들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편가르기에 바탕을 둔 여백없는 말 속에 적대감과 살의가 깃들기도 한다. 파괴하고 모욕하고 부정하기 위해 발화되는 말로 인해 세상이 소란스럽다.


이청준 선생은 한때 그 말의 제집찾기 즉 기표와 기의가 분리되지 않는 말을 찾는 데 자신의 소설적 역량을 집중했다. '서편제', '선학동 나그네', '해변 아리랑' 등의 작품을 통해 깊은 한 속에서 터져나오는 소리의 세계를 천착하다가 나중에는 언어로 분절되지 않는 구음의 세계에까지 이르렀다. 구음의 세계 다음은 물론 침묵이다. 오늘 우리가 사용하는 말을 침묵의 강 속에 깊이 담가둘 필요가 있다.


"나랏말씀이 중국과 달라 문자와 더불어 서로 통하지 않을쌔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끝내, 그 뜻을 펼칠 수 없는 자가 많았다. 내가 이것을 불쌍히 여겨 새롭게 28자를 만들었으니 사람마다 쉽게 익히고 날마다 쓰게 할 따름이니라". 세종대왕이 한글을 반포하면서 하신 말씀이다. 세종대왕의 바람은 성취되었는가? 그 한글로 사고하고 말하고 글을 쓰는 이들이 서로 통하지 않는 기막힌 세태이다. 그것은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문제이다. 통할 생각이 없기에 통하지 않는다. 권력으로 변해버린 말, 지배 욕구에서 발화된 말들은 질서가 아니라 혼돈을 만들어낸다. 그 혼돈을 통해 이득을 보는 사람들은 세상이야 망가지든 말든 지치지 않고 그런 말들을 쏟아낼 것이다. 진실한 말, 정직한 말, 상처를 치유하는 말, 사람들을 이어주는 말, 여백이 있는 말이 회복되지 않는 한 평화로운 세상의 꿈은 결코 이뤄질 수 없다.


목록편집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