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컬럼

제목 다리 놓는 사람 2016년 02월 26일
작성자 김기석

 다리 놓는 사람


아름다운 것 그리고 숭고한 것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한반도를 뒤덮고 있는 불길한 어둠을 차마 못 본 체 할 수 없다. 마치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처럼 위태로운 세월이다. 북한의 핵실험과 로켓 발사, 개성공단 폐쇄, 사드 배치를 둘러싼 중국과의 첨예한 갈등, 테러방지법을 둘러싼 여야의 극한 대립, 양보와 타협이 없는 정치 세력의 각축으로 인해 이 땅은 여러 갈래로 조각나 있다. 눈 밝은 이들은 지금 우리의 상황이 구한말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한다. 평화를 갈망하는 이들의 가녀린 꿈은 해토머리에 닥쳐온 차가운 겨울 바람으로 인해 무너지고 말았다.


사이비 언론인들은 사람들 속에 증오와 편견을 심어주기 위해 광분하고 있다. 자기들이 표적으로 삼은 정치인들의 신상을 털어가며 조롱하기에 분주하다. 정치인들은 자신과 다른 입장에 서 있는 이들에게 어떻게든 상처를 입히기 위해 언어의 칼날을 벼리고 있다. 물론 그것은 정의로운 세상,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들의 기득권을 공고히 하기 위한 것이다. 품격 없는 말, 누군가를 특정한 이미지 속에 가두기 위해 발설되는 말들로 인해 세상은 혼돈에 빠져들고 있다. 선과 악, 옳고 그름이 뒤섞여 구분이 되지 않는 상태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이득을 보는 것은 언제나 영악한 사람들이다. 


"세勢는 있는 대로 기대서는 안 되고, 말은 하고 싶은 대로 다 말해서는 안 되며, 복은 끝까지 다 누려서는 안 된다. 무릇 일이란 다하지 않고 남겨두는 곳에 그 맛이 문득 오래간다."(정민 번역) 명나라 사람 육소형이 <취고당검소>에서 한 말이다. 이런 여유 혹은 여백이 사라지고 있다. 사람들이 말이든 일이든 남겨두지 못하는 까닭은 자기 속이 허하기 때문이다. 속이 허한 이들이 만들어내는 세상은 살풍경할 수밖에 없다. 살풍경한 세상에 사는 이들의 영혼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인정의 황무지로 변하게 마련이다. 선하게 사는 것이 더 쉬운 세상을 꿈꾸었던 피터 모린의 꿈이 더욱 절실하게 와닿는 나날이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사람들 사이에 벽을 쌓는 사람은 기독교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투박하지만 강렬한 진실을 담고 있는 말이다. '벽'은 경계를 만들어 이편과 저편을 가르는 장치이다. 세상은 벽을 만드는 일에 익숙하다. '우리'와 '그들'을 가르고는 '그들'에게 경계 혹은 멸시의 시선을 보내곤 한다. 가르기 위해서는 배제의 대상을 악마화하거나 불결한 존재로 만들기도 한다. 가름이 일상이 된 세상에서 사람들은 자신도 배제의 대상이 될까 두려워한다. 그렇기에 주류 세계에 동화되는 길을 즐겨 택한다. 벽이 많은 세상에는 평화가 깃들 수 없다. 배제된 이들의 원망과, 배제하는 이들의 오만함이 늘 충돌하기 때문이다. 


폰티펙스 막시무스는 로마의 대제관을 이르는 말이다. 폰티펙스는 본래 '다리 놓는 사람'이라는 뜻이라 한다. 신과 관련된 일을 하는 이들의 소명은 명백하다. 갈라진 관계를 이어주는 다리가 되는 것이다. 벽을 쌓는 이들이 차별과 증오에 기대고 있는 이들이라면 다리를 놓는 이들은 타자에 대한 존중과 사랑에 기대고 사는 이들이다. 오늘의 종교인들은 어떠한가? 누군가를 배제하고 악마화 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지는 않은가? 


사위스런 바람이 징그러운 뱀의 혀처럼 우리를 휘감고 있다. 그 바람이 돌풍이 되어 우리 삶의 터전을 황폐하게 만들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우리는 과연 바람을 심어 광풍을 거두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지릅뜬 눈으로 상대를 위협하고, 호통을 쳐 주눅 들게 하는 이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언구럭을 부려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이들의 간계를 꿰뚫어보고 더 이상 속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담을 허물기 위해 진력하는 이들, 갈라진 이들을 이어주기 위해 애쓰는 이들에게 힘을 보태 주어야 한다. 지금 이 시대는 절망을 품어 희망을 낳는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목록편집삭제

박숙미(16 02-27 10:02)
늘 온화한 미소 지으시는 목사님 마음의 풍경인가요?ㅠ ㅠ.참담한 현실앞에 냉소적이 되어가려는 약한 마음에 하늘의 소리,그 승리의 북소리 계속 들려주십시오. 그들이 아닌 하나님께서 역사를 짓고 계심을 자꾸 자꾸 선포해주십시오.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