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컬럼

제목 그대가 있어 내가 있습니다 2022년 03월 10일
작성자 김기석
그대가 있어 내가 있습니다

교우님들께, 
주님의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이렇게 뉴스 래터를 통해 소식을 나눌 수 있게 되어 참 기쁩니다. 부분적이나마 대면 예배로 전환했지만 여전히 현장 예배에 참여하지 못하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2년 동안 지속된 감염병이 맹위를 떨치고 있기는 하지만 이제 서서히 엔데믹으로 전환되는 길목에 접어든 것 같습니다. 일상의 온전한 회복까지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지만 그래도 조금은 용기를 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3월 2일은 금년도 사순절이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입니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전년도 종려주일에 사용한 종려나무 가지를 잘 말려두었다가 그것을 태워 재로 만듭니다. 집례자는 그 재에 올리브기름을 섞어 신자들의 이마나 손등에 십자가 모양을 그리며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창 3:19)라고 선언합니다. 회중들은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응답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고 욕망의 벌판을 헤매며 사는 삶을 돌아보고 참회하는 의식인 셈입니다. 몇 해 전 미국에 갔을 때 마침 재의 수요일을 맞이한 적이 있습니다. 거리에서 스쳐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의 이마에 십자가가 그려진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 의례에 익숙하지 않은 문화권에서 온 이들에게는 약간 면구(面灸)스러울 수도 있는 풍경이었지만 그분들은 사뭇 진지했습니다.

올해 사순절은 4월 16일까지 이어집니다. 애초에 사순절은 세례 받을 이들을 준비시키는 기간이었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모든 교인들이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깊이 묵상하면서 자기 삶을 돌아보는 절기로 바뀌었습니다. 사순절에는 통상 세 가지 신앙적 실천을 훈련합니다. 자선, 금식, 기도가 그것입니다. 

자선은 우리 주변에 있는 고통 받는 이웃들의 아픔에 동참하는 행위입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 쌓아두는 것은 물질이지만, 그것을 필요로 하는 다른 이들을 위해 증여할 때 정신으로 변합니다. 그것은 물질이 아니라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을 경험할 때 사람은 영적으로 성장합니다. 이전에 우리 선배들이 밥을 지을 때 성미 한 움큼씩을 떼어놓았던 것처럼 우리도 소비생활의 일부를 떼어내 여퉈두었다가 필요한 이들에게 전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금식은 절제를 배우기 위한 것입니다. 교회 전통은 탐식도 죄의 뿌리 가운데 하나라고 말합니다. 이 시대의 금식 훈련은 문화적으로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일체의 것들과 거리 두기를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애집하고 있는 것, 내가 붙들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나를 붙들고 있는 것들로부터 벗어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탄소 금식, 미디어 금식, 게임 금식, 텔레비전 금식이 그 예라 할 수 있겠습니다.

기도는 세상을 떠돌던 우리 마음을 본래의 자리에 가져다 놓는 행위입니다. 우리 마음이 있어야 할 본래의 자리는 하나님 앞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기준음 삼아 우리 마음을 조율하는 과정입니다. 잘 조율된 악기가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것처럼 우리 마음이 하늘의 선율을 노래하기 위해서는 시시때때로 조율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곤경에 처했을 때 기도에 집중합니다. 하나님께 그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청합니다. 그러나 문제가 사라지고 나면 기도의 열정 또한 소멸하고 맙니다. 우리가 깊은 믿음의 자리에 가지 못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삼시 세끼 밥을 먹는 것처럼 기도도 일정한 시간을 정해놓고 하는 게 좋습니다. 일상의 흐름을 끊고 하나님께 마음을 들어 올릴 때 하늘의 빛이 우리 속에 유입될 것입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첨단 무기에 대응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의 민간인들이 화염병을 만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사랑하는 가족들이 생이별하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어떤 이들은 전쟁을 필요악이라고도 말하지만 전쟁은 불의합니다. 천하보다도 더 귀한 생명을 해치기 때문입니다. 전쟁 개념 가운데 ‘부수적 손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부득이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는 민간인 희생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생명을 손실로 처리한다는 발상 자체가 반생명적입니다. 지금 우리는 이 전쟁의 조속한 종식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각자에게 품부된 삶의 가능성을 마음껏 펼치며 살 수 있는 세상이 도래할 때까지 기도의 손을 풀지 말아야 합니다. 전 세계인들이 마음을 모아 기도하고, 희생을 강요당하는 이들과 연대할 때 하나님의 강한 역사가 나타나리라 믿습니다.

사순절의 시작과 함께 봄기운이 조금씩 밀려옵니다. 제가 늘 걷는 길목에는 봄까치꽃 몇 송이가 수줍게 모습을 드러냈고, 공원의 산수유나무에도 노란 꽃망울이 막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어느 분은 신앙을 가리켜 ‘안에 핀 꽃’이라 했습니다. 그 꽃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 속에 핀 그 꽃을 누군가가 볼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하루하루 즐겁고 명랑하게 그러면서도 진중하게 순례의 길 잘 걸으시기를 빕니다. 평안을 빕니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 배운 인사말을 전합니다. ‘그대가 있어 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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