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컬럼

제목 심연을 마주보며 2022년 03월 12일
작성자 김기석
심연을 마주보며
  -콜린 윌슨, <아웃사이더>

꽃들이 왈클왈큰 피어나는 4월의 하늘 아래서 나는 외로웠습니다. 예수라는 분에게 인생을 걸어도 좋겠다는 생각에 신학교에 입학했지만, 선지 동산이라 일컬어지는 신학교는 내게 낯선 곳이었습니다. 모두가 당연하게 알고 있는 정답을 나 홀로 모르는 것 같은 어지러움이 심했습니다. 느낌표들이 모인 자리에 홀로 물음표로 선 것 같은 아뜩함에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좁기는 하지만 캠퍼스에 넘치는 짐벙진 기운이 나와는 무관한 것 같았습니다. 허릅숭이의 어투로 벗들의 마음에 상채기를 내기도 했습니다. 진리는 보일 듯 말 듯 희미하기만 했습니다.

어느 날 채플을 빼먹고 거리를 배회하다가 학교 앞 서점에 들렀습니다. 서가에 꽂힌 책을 일람하다가 마치 쇠붙이가 자석에 이끌리듯 책 한 권을 뽑아들었습니다. <아웃사이더>. 그 제목을 보는 순간 나를 사로잡고 있던 감정의 정체를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책날개를 펼쳐 저자에 대한 소개글을 읽었습니다. 콜린 윌슨, 그는 스물 네 살에 그 책을 써서 세계적인 비평가의 반열에 섰다는 말을 읽는 순간 번개를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나는 겨우 이제 광활한 사유의 세계에 입문하려고 서성이고 있는데, 나와 동년배와 다를 바 없는 그가 독학으로 그런 독창적인 사유의 지평을 펼쳤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 세상이 두 겹의 질서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확연히 깨달았습니다. 사람들이 만나 함께 일하고 사귀는 공적 영역에 잘 적응하며 사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주류 세계와 불화를 거듭하면서 생의 심연에 끌려 들어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김수영 시인은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며’라는 시에서 “아무래도 나는 비켜 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옆으로 비켜 서 있다”고 노래했습니다. 그 시를 읽으며 마치 내 속내를 들킨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조금 비켜 선 자리를 좋아하던 나는 스스로 ‘아웃사이더’를 자처하기 시작했습니다. 앙리 바르뷔스, 사르뜨르, 카뮈, 카프카, 도스토예프스키, 고흐, 엘리엇, 헤세, 니체의 세계를 서성이며 고통, 무의미, 공허의 인력에 끌려 들어가기도 하고 때로는 저항하기도 했습니다. 심연을 응시하면서도 심연에 속절없이 끌려 들어가지 않기 위해서는 가끔 고개를 들어야 했고, 고개를 든 자리에는 언제나 예수가 있었습니다.

<아웃사이더>를 다 읽고 한 가지 결심을 했습니다. 콜린 윌슨이 그 책에서 언급한 책은 구할 수 있는 한 다 구해 읽겠다는 결심이었습니다. 신학교 시절, 신학책보다 문학책을 붙들고 살았으니 성실한 신학생이라 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탈 덕분에 조금은 자유롭게 세상과 인간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삶은 복잡하고 모호하기 이를 데 없음을 알기에 어려움에 처한 이들에게 함부로 이게 정답이라고 말하지 못합니다. 다만 그의 회의와 방황이 무가치한 것이 아님을 일깨워주려고 할 뿐입니다.

(* 국민일보, 2022/3/4일, '내 인생의 책'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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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혜(22 07-08 09:07)
목사님이 쓰신 이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ㅡ글 내용처럼 ㅡ같은
아니 더 큰 영향을 줍니다ㅡ
드러난 모습은 많은 차이가 있지만요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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