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컬럼

제목 유쾌한 시끌벅적 2022년 02월 10일
작성자 김기석
유쾌한 시끌벅적
-전병식, <슬기로운 종교 생활>, 신앙과 지성사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지만, 그 때 이름은 텅 빈 기표일 때가 많다. 사람은 이름이 아니라 이야기를 남긴다. 이름은 개별적이지만 이야기는 보편적이다. 이야기는 공감을 낳기도 하고 분노를 낳기도 한다. 어느 경우이든 이야기는 사람들을 연결한다. 유장하고 장엄한 이야기를 남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잘하기 이를 데 없는 이야기를 남기는 사람도 있다. 어느 이야기이든 인간의 이야기이기에 다 소중하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기억의 저편으로 스러져간다. 야곱은 나이를 묻는 바로에게 떠돌이로 살아온 자기 인생을 ‘험악한 세월’이라는 말로 가름한다. ‘험악한’이라는 단어 속에 그가 시간 여행자로 감내해 온 세월의 무게가 실려 있다.

전병식의 <슬기로운 종교 생활>은 교양 있는 신앙인들에게 들려주는 학자의 고담준론이 아니다. 윗마을, 아랫마을, 가운데마을이 모여 한 동네를 이룬 가상의 공간을 배경으로 하여, 인간살이에서 빚어지는 다양한 삶의 풍경을 엮어낸 일종의 에피소드 소설이다. 성내면 전도사는 베틀의 북처럼 15가지 이야기를 하나로 짜는 중심인물이다. 신학교를 졸업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신출내기 전도사가 마을 주민들의 삶에 얽혀들면서 겪는 다양한 에피소드는 어찌 보면 사소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나 사소하다 하여 하찮은 것은 아니다. 누구의 삶이든 절실하기 때문이다.

시골 목회자에게는 다양한 역할이 요구된다. 구마의식도 거행해야 하고, 돼지 분만 기도도 해야 하고, 마을 대항 축구 시합에 선수로 출전하기도 해야 하고, 마을 사람들의 갈등을 풀기 위해 애를 태우기도 한다. 매뉴얼도 없고 정답도 없는 삶이기에 옳고 그름을 함부로 예단할 수도 없다. 성내면 전도사가 가끔 오토바이를 타고 양대천 하류까지 가서 눈물을 뿌리며 기도를 하거나 노래를 불러대는 것은 그 암담한 시간을 견대내기 위한 그 나름의 고육지책이다.

사람들이 모인 곳에 갈등이 없을 수 없다. 교회 역시 마찬가지이다. 아무 것도 아닌 일 때문에 의가 상하고, 쓸데없는 누군가의 고집 때문에 교회가 시끄러워지기도 한다. 교회 김장을 할 때 배추김치와 물김치를 함께 하자는 제안에 누군가 이의를 제기하며 배추김치만 하면 된다고 말하면 싸움이 된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의견에 대한 반대를 자기 존재에 대한 거부로 받아들이곤 하는 우리들의 못난 습성 때문이다. 논쟁에서 진리가 승리하는 법은 없다지 않던가.

창세기는 형제간의 갈등 이야기로 점철되어 있다. 가인과 아벨, 이삭과 이스마엘, 에서와 야곱, 요셉과 형제들은 서로 경쟁하는 주체였다. 경쟁은 일쑤 타자에 대한 부정으로 귀착되기 쉽다. 가인은 동생 아벨을 죽였고, 이스마엘은 집에서 쫓겨났고, 야곱은 에서를 피해 달아나야 했고, 요셉은 형제들에 의해 종으로 팔려갔다. 성경은 인간사에 내재한 폭력과 우울함을 그렇게 담아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다. 성경은 그들이 어떻게 상처의 기억을 안고 살아갔는지, 그리고 어떻게 화해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갈등이 아니라 화해가 이야기의 중심인 셈이다. <슬기로운 종교 생활>에 등장하는 인물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때로는 꽉 막혀 있는 듯하지만 그들은 갈등 이후에 화해를 모색하고 기어이 선한 결실을 이룬다.

이 책에 등장하는 승려와 신부와 전도사는 서로를 존중하며 평화로운 공존을 지향하는 슬기로운 이들이다. 그들은 마을의 어려움을 풀어내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함께 협력한다. 그들은 레싱의 <현자 나단>에 등장하는 종교인들을 연상시킨다. 종교 간의 갈등이 노골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그들 세 사람이 빚어내는 유쾌한 협력이 참 귀하게 여겨진다. 일상을 떠난 신학적 담론은 공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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