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컬럼

제목 크리소스토모스를 그리워하며 2018년 12월 05일
작성자 김기석
크리소스토모스를 그리워하며

차이코프스키의 ‘요한 크리소스토모스의 전례’를 듣습니다. 다양한 목소리가 어울려 빚어내는 화음이 아름답습니다. 사실 아름답다는 표현은 부족합니다. 하던 일을 멈추고 오직 소리에만 집중할 때 그 소리는 긴장된 몸과 마음을 어루만지다가, 이런저런 염려로 인해 납작해진 가슴에 어떤 울림을 만들어냅니다. 여러 해 전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에치미아진(Echmiadzin) 대성당에 갔을 때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정교회의 예배 전례에 익숙하지 않아, 온전히 하나님께 마음을 집중하기는 어려웠지만 그곳에서 들었던 찬양대의 노랫소리는 앞으로도 잊을 수 없을 겁니다. 그게 ‘크리소스토모스의 전례’라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연주되는 곡 하나하나가 심금을 울렸습니다. 초기 교회는 예배를 가리켜 ‘미스테리온‘(mysterion), 곧 신비라 했습니다. 예배가 신비라는 의미가 머리가 아니라 온 몸으로 깨달아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정교회의 전례신학을 완성한 사람이 바로 요한 크리소스토모스입니다. 크리소스토모스는 ‘황금의 입‘이란 뜻인데, 대설교가였던 그에게 후세 사람들이 붙인 별칭이었습니다.

그의 이름을 딴 전례 음악을 들으며 저는 고독했던 사나이 요한 크리소스토모스를 추모합니다. 그는 성서에서 안디옥으로 알려진 도시 안티오키아(오늘의 터키 동남부인 안타키아) 출신입니다. 349년에 태어나 368년 부활절에 세례를 받았고, 386년에 사제로 서품되는 동시에 설교자 직분을 받았습니다. 397년에는 콘스탄티노플의 주교가 되었고, 그의 개혁 정책을 저지하려는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 테오필루스의 계략에 휘말려 두 차례에 걸쳐 유배를 당합니다. 그를 존경하는 이들이 유배지까지 찾아가는 것을 본 황제는 그의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해 그를 좀 더 오지로 보냅니다. 크리소스토모스는 그 유배지를 향해 가던 도중 죽었습니다. 그때가 407년 9월 14일이었습니다. 

그의 전기를 다룬 책 두 권을 찾아 읽으며 저는 깊은 한숨을 자꾸 내뱉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타협할 줄 모르는 그의 올곧은 품성에 대한 존숭심과 아울러 그런 지도자를 미워하는 동료 성직자들의 위선이 아프게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모스는 신학자라기보다는 목회자였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정교한 이론 신학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의 삶의 변화였습니다. 안티오키아는 물론이고 콘스탄티노플의 많은 사람들이 그를 존경하고 따랐습니다. 하지만 기득권을 누리고 있던 이들은 그를 불편하게 여겼습니다. 그들의 특권을 인정하지 않았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 그들의 재산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은 집과 금은 도구들을 팔아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주어야 합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고 병자들이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빚 때문에 감옥에 갇힌 자들을 풀어주어야 합니다. 광산이나 포로로 잡혀 열악한 환경에서 착취당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풀어주어야 합니다.”(요아니스 알렉시우 대사제,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스>, 요한 박용범 옮김, 정교회출판사, 2014년 4월 20일, p.73-74)

요한 크리소스토모스에게 있어 살아 있는 교회의 표징은 아름답고 질서있게 수행되는 전례가 아니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 병자들, 수감자들, 노동자들, 유배자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었습니다. 그는 사용하고 남은 잉여를 가지고 그런 이들을 도우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을 최우선의 관심 대상으로 삼는 것이 교회의 마땅한 책무라는 것이었습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모스가 만일 지금 그런 설교를 한다면 그는 좌파로 낙인찍힌 채 쫓겨날 가능성이 큽니다. 그의 설교 가운데 한 대목을 더 인용해보겠습니다.

“교회는 천사들의 승리 조직이지 금광이 아닙니다. 교회는 인간의 영혼을 찾아다니고, 하느님께서는 오직 이 영혼들을 위해서 여러 선물들을 나눠주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최후의 만찬 때 제자들에게 주신 잔은 금잔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 가치는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그대들이 그리스도를 높이고 싶다면 빈자들의 얼굴 속에 계신 벌거벗은 그리스도를 높이 세워주십시오. 추위와 헐벗음 속에 고통 받고 계신 그리스도를 그대로 두고 실크와 값비싼 금속을 교회에 봉헌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금으로 된 기구들이 성당을 가득 채워도 그리스도께서 배고파하신다면 아무 유익도 없습니다. 그대들은 금잔을 제작하면서도 목마른 사람에게 시원한 물 한잔을 필요한 사람에게 제공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집 없는 방랑자처럼, 걸인처럼 헤매고 다니시는데 그대들은 그분을 모시는 대신에 장식에 치중합니다. 그러니 그대들은 비싼 장식품들과 값나가는 제의를 팔아 가난한 이들을 위해 사용하십시오.…“(요아니스 알렉시우, 앞의 책, p.75-76)

그는 당위적 삶을 그저 외치기만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보석으로 장식된 금 성작이나 금실로 짠 제대보 등을 기증하면, 그는 그것을 팔아서 구빈원에 전달했습니다. 그런 물건들을 기증함으로 자기들의 선행을 인정받고 싶었던 이들은 매우 불쾌하게 생각했습니다. 크리소스토모스는 주교 관저의 낭비도 철저히 막았습니다. 전임자들은 주교 관저를 찾아오는 이들에게 흐드러진 연회를 베풀어 인기를 끌었지만, 그는 모든 공식적인 연회 개최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루돌프 브랜들레, <요한 크리소스토무스-고대 교회 한 개혁가의 초상>, 이종한 옮김, 분도출판사, 2016년 3월 31일, p110 참조). 그는 아주 소박하게 차려진 식사를 혼자 하곤 했습니다. 주교가 베푸는 연회에 참여하는데 익숙하던 사람들은 크리소스토모스를 불편하게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또 신자들 가정마다 침대 옆에 자선함을 두고 돈을 모았다가 절기 때마다 가져오라고 요구했습니다. 물론 그것은 유다인들의 ‘쩨다카’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었습니다. 요한은 그 “함에 자선금을 넣는 것은 침대 옆에 걸려 있는 ‘복음 말씀’과 마찬가지로 효력이 강하다. 이 두 가지는 악마에게 대항하는 훌륭한 무기”(루돌프 브랜들레, 앞의 책, p.47)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실천을 하는 가정은 그 자체로 작은 수도원이었습니다. 그런 가정 모금 제도를 통해 안티오키아에서는 무려 삼천 명의 과부와 고아들을 도와주었고, 콘스탄티노플에서는 칠천 명에게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는 곤궁한 사람들에 대한 도움이 종교들의 경계선 앞에서 멈추면 안 된다면서 곤궁한 사람들은, 이교도건 유다인이건 다 하나님께 속한다고 말했습니다(루돌프 브랜들레, 앞의 책, p.122). 심지어는 그가 무신론자라 해도 도와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그가 돈을 흥청망청 낭비하는 행위를 비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에브독시아 황후조차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경건한 신앙인이었고 주교를 공경했던 황후는 허영기가 있던 여인이었던 모양입니다. ‘경건한 신앙인‘이라는 표현과 ‘허영기‘라는 말은 사실 조화되기 어렵습니다. 허영은 늘 자기를 찬미하는 사람을 필요로 하고, 자기를 돋보이게 하려고 할 짓 못할 짓을 다 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황후는 경건의 외양을 한 사람이었다고 말하는 게 온당하지 않나 싶습니다. 크리소스토모스는 황후가 정당하지 않는 방법으로 다른 이들의 재물을 가로채려 한다는 소식을 듣자,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황후를 꾸짖었습니다. 처음에는 편지를 통해 황후를 깨우치려 했습니다. 

“만약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황후의 권세를 주었다면 그것은 정의를 세우라고 주었을 것입니다. 인간은 흙과 재, 풀과 먼지에 불과하고, 인생 또한 그림자와 연기 그리고 한바탕 꿈에 지나지 않듯이, 황제도 그와 같습니다. 그러니 이제 절망에 빠져 있는 이들에게 더 이상 고통과 불행을 지우지 마십시오. 당신은 포도밭과 무화과밭, 기름과 돈, 그리고 권력을 가지고 무덤에 내려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요아니스 알렉시우, 앞의 책, p.83)

하나님의 뜻을 설파하는데 그는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권력 앞에서 움츠러드는 일이 없었습니다. 황후가 자신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자 그는 설교단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쓴 소리를 뱉어냅니다. 결국 그는 모욕감을 느낀 황후의 분노와 그를 제거함으로 자기 영향력을 확대하려던 알렉산드리아 대주교 테오필루스가 함께 꾸민 음모의 희생양이 되었습니다. 그는 주교좌에서 쫓겨나 유배되었고, 결국 길 위에서 죽음을 맞게 되었습니다. 영문 밖에서 고난 당하신 주님의 잔을 그도 남김없이 마신 셈입니다. 교회를 새롭게 하려던 그의 치열한 노력은 그렇게 좌절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의 믿음조차 스러진 것은 아닙니다. 조언을 구하고자 유배지까지 찾아왔던 안티오키아의 청년 귀족이 고향으로 돌아가 영적인 혼돈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크리소스토모스는 그를 격려하는 편지를 보냅니다. 그의 말은 영혼을 납작하게 만드는 현실에 치여 어찌할 바를 모르는 모든 이들에게 도전이 되는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누군가가 그대에게 해를 입히고 덫을 놓으려 해도 그 파도들 위에 우뚝 서십시오. 어리석은 자는 악에 대항하는 이가 아니라 악을 행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나는 그대가 보인 용기와 평정심을 높이 하고 칭찬합니다. 왜냐하면 혹독한 시련을 겪으면서도 그 시련 위에 그대가 우뚝 서 있음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요아니스 알렉시우, 앞의 책, p.153)

어쩌면 이것은 자기를 격려하는 다짐의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파도들 위에 우뚝 선 영혼‘이라는 말이 가슴을 칩니다. 믿음이란 마음속에 굳건한 기둥 하나가 들어서는 것이라지요? 기둥이 기울면 그 위에 아주 작은 무게만 얹혀도 무너지게 마련이지만, 기둥이 바로 서면 어지간한 무게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얼마 전 포항에서 일어난 지진에도 문화재급 건물들은 훼손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자연석의 곡면에 따라 기둥을 깎아 세웠기 때문에 기둥이 밀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강남의 한 대형교회의 세습을 둘러싼 설왕설래로 세상이 떠들썩합니다. 이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노자 2장에 나오는 한 대목이 떠오릅니다. 그는 성인의 경지를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만물이 일어나도 막지 않고, 생겨도 잡아두지 않으며, 행하고도 자랑하지 않고, 공을 이루어도 머물지 않는다”(萬物作焉而不辭, 生而不有, 爲而不恃, 功成而不居). 사실 ‘공성이불거’라는 구절은 민중신학자인 안병무 박사님의 글을 읽다가 처음 만났습니다. 글의 맥락과 관계없이 그 구절이 내게 준 도전이 참으로 컸습니다. 공을 이루고 머물지 않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을 연습하지 않으면 삶이 누추해집니다. 내가 뭔가를 이뤘다는 허망한 자부심, 그리고 그것을 내려놓기 싫은 애집이 사람들의 영혼을 잡아채 사탄 앞에 엎드리게 합니다. 가여운 일입니다. 교회에 대한 사랑이니 책임이니 하지만 그건 누가 뭐래도 욕망을 분식하기 위한 핑계일 뿐입니다.

크리소스토모스가 그리운 것은 그 때문입니다. 그는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원한 참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전투적인 그의 삶이 거칠어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에 대한 끝없는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한번 차이코프스키의 ‘요한 크리소스토모스의 전례’에 귀를 기울입니다. 은총의 신비에 깊이 눈 떠야 자기와의 싸움, 세상과의 싸움에서 탈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듬쑥한 영혼을 가꾸기 위해 정신차려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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