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컬럼

제목 궁핍한 시대의 신앙 2021년 10월 27일
작성자 김기석
궁핍한 시대의 신앙

13세기의 수도자 프란체스코는 위험에 처해 있는 교회를 구하라는 다미아노 성인의 꿈 속 메시지를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네 명의 탁발 수도사와 함께 포르티운쿨라에 거처를 정하고 아시시의 거리와 근처 마을을 다니면서 사랑에 대해 설교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성자 프란체스코>에서 어느 날 아침 프란체스코가 바친 기도를 소개하고 있다. “주님, 만일 제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가 저를 천국에 보내 달라고 하기 위한 것이라면 칼을 든 천사를 보내 천국의 문을 닫아 버리게 하소서. 주님, 만일 제가 지옥에 가는 것이 두려워서 당신을 사랑한다면, 저를 영원한 불 구덩이 속으로 던져 넣으십시오. 그렇지만 제가 당신을 위해서, 당신만을 위해서 당신을 사랑한다면 당신의 팔을 활짝 벌려 저를 받아 주소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다만 천국에 대한 기대나 지옥 형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면 그 사랑은 진실한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은 그 대상 속으로 녹아드는 경험이다. 사랑은 사로잡힘이다. 그렇기에 불가항력이다. 사랑은 계산을 모른다.

디베랴 바닷가에서 부활하신 주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믿느냐‘고 묻지 않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다. 믿음 또한 믿음의 대상과의 깊은 일치를 지향하지만, 사랑은 주체와 객체의 차이를 넘어 한결 근원적인 일치 속으로 우리를 잡아 끈다. 스승을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부인했던 베드로에게 던져진 그 질문은 사랑의 신비 속으로 들어오라는 일종의 초대였다. 사랑의 초대를 받아들이는 순간 베드로는 더 이상 자기 욕망에 충실한 개별적 존재로 살 수 없었다. 십자가의 길이 그의 길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랑은 달콤한 감정이 아니라 목숨을 건 모험이다. 그렇기에 사랑은 매혹인 동시에 영혼을 흔드는 두려움이다.

그 부름에 응답하는 이들은 성스러운 반역자가 될 수밖에 없다. 가장 아끼는 것을 버리고, 사람들이 싫어하는 외로움과 가난 혹은 시련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며 산다는 것, 편안하고 안전해 보이는 넓은 길을 버리고 좁은 길을 선택한다는 것은 세상의 눈으로 보면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십자가를 붙들고 산다는 것은 그 어리석음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붉은 네온 십자가가 도시의 밤하늘을 밝히고 있지만, 십자가의 어리석음을 삶으로 실천하려는 이들은 많지 않다.

횔덜린은 ‘이 궁핍한 시대에 시인은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일까?‘를 물었다. 그가 말하는 궁핍한 시대는 물질적으로 곤궁한 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든든하게 지탱해주던 신들이 떠나버린 후 새로운 신이 도래하지 않은 그 사이 시간을 말한다. 신들이 떠났다는 말은 사람들이 세속적인 것에만 마음을 둘 뿐 존재 자체이신 분에 대한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말이다. 정신의 위기 속에 있지만 신적 현실이 틈입할 여지를 주지 않는 시대야말로 궁핍한 시대이다. 그렇게 본다면 소비주의와 향락주의가 유사 종교가 된 오늘이야말로 궁핍한 시대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교회의 위기를 말하는 소리가 도처에서 들려온다. 코로나19 때문이 아니다. 이 궁핍한 시대의 허기를 채워줄 생명의 양식을 잃었기 때문이다. 종교개혁 기념일이 다가온다. 1517년 독일의 소도시 비텐베르크에서 일어났던 한 사건을 기억하는 것만으로 충분할까? 마르틴 루터의 용기를 칭송하는 것만으로 충분할까? 그가 비텐베르크 성채 교회 문에 게시했던 95개조 논제 가운데 제1논제는 전체 내용의 서론인 동시에 방향타이다. "우리의 주요 선생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마4:17) 하신 것은 신자의 전 삶이 돌아서야 함을 명령한 것이다." 지금은 돌아서야 할 때이다. 머리나 가슴의 변화만으로는 부족하다. 용감하게 신뢰하며 그리스도의 빛을 따라 걸어야 한다. 교회에 과연 희망이 있냐고 묻는 이들이 있다. 희망은 발이 없기에 누군가 어깨에 메고 데려와야 한다. 이 궁핍한 시대에 어리석은 십자가의 길을 걷는 이들이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세상의 희망이 아닐까?

(* 2021/10/27일자 '국민일보' '김기석의 빛 속으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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