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컬럼

제목 버몬트에서 보내는 편지 2017년 05월 04일
작성자 김기석

 주님의 평안을 빕니다. 서울을 떠나온지 벌써 두 주가 흘렀습니다. 다들 무고하신지요? 교우들과 멀리 떨어져 있으니 그리움이 더 깊어집니다. 한 분 두 분 얼굴을 떠올리며 주님의 은총을 구했습니다. 저는 지난 두 주 동안 뉴욕과 뉴저지에 있는 한인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고, 지금은 미국 북부 버몬트 주의 한 수도원에 들어와 있습니다. 베네딕드 수도회인 웨스톤 프라이어리입니다. 숲 한 가운데 있어 매우 한적하고 고요합니다. 겨우 11명 정도의 수도자들이 살고 있는 곳이어서인지 더욱 고즈넉한 느낌이 듭니다. 이곳에서는 하루에 네 번씩 기도회가 열립니다. 새벽 6시, 낮 1시 30분, 오후 5시 30분, 저녁 8시입니다. 두 명의 수사들의 기타 반주에 맞추어 수도사들이 부르는 찬양은 아름답고 평화롭기 그지 없습니다. 그 평화로운 선율 속에 잠기노라면 '여기가 좋사오니 이곳에 초막 셋을 짓게 해달라'고 말했던 베드로의 심정이 이해가 됩니다.


수사들과 손님들이 함께 하는 공동 식사 자리는 매우 엄숙하고도 경건합니다. 음식을 접시에 담은 후에는 지정된 자리 뒤에 가서 섭니다. 모든 이들이 자리를 잡고 서면 함께 감사의 찬양을 올립니다. 식사는 침묵 속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식당의 한쪽 구석에서 수사 한 사람이 책을 낭독합니다. 기독교 고전을 읽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여기서는 20세기 카톨릭의 영성가인 동시에 사회운동가인 도로시 데이의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다들 낭송되는 내용에 귀를 기울이며 조용히 식사를 합니다. 식사가 다 끝나면, 원장이 작은 벨을 침으로 침묵을 깨도 된다는 신호를 합니다. 그러면 옆 사람과 조용히 이야기를 나눕니다.


저는 도착하던 첫날부터 설거지를 자청했습니다. 그러자 수사들이 와서 이름을 묻는 것을 시작으로 하여 제게 다양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연로한 한 수사는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한국의 상황을 말하면서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는 저와 한국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약속했습니다. 수도원 구역 안에는 정치적 억압을 피해 조국을 떠나온 과테말라 난민들이 살고 있는데, 그들이 이곳에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또 회복되었는지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비밀스런 이야기를 하듯 소리를 낮춘 채, 그들이 일주일에 한번씩 수도원에 와서 음식을 만들어주곤 하는데 조금 맵다고 말하며 웃었습니다. 


저는 기회만 되면 수도원을 찾아가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기도와 예배의 아름다움이 저를 사로잡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수도원에 머무는 이들이 세상과 동떨어진 채 기도에만 전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아는 것은 정의를 행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한 순간도 잊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기독교인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늘 물으며 세상의 아픔에 동참하려 합니다. 수사들은 수도원적 영성이 추구하는 바를 몇 가지로 요약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고립의 대안으로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기

둘째, 무의미에 저항하여 기도와 깊은 성찰의 사람이 되기

셋째, 편견과 분열에 대한 대안으로 서로에게 환대를 제공하기

넷째, 사람들을 소외시킬 뿐 아니라 비인간화하는 노동에 대한 대안으로 인간적인 동시에 존엄한 노동을 하기

다섯째, 끙끙 앓고 있는 세계를 치유하기 위해 비폭력, 즐거움, 정의, 그리고 평화를 지속적으로 추구하여 팔복의 징표로 살아가기


이번 주일은 우리 교회의 설립 기념주일입니다. 함께 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큽니다. 오후에 하게 될 작은 음악회를 꼭 보고 싶지만 어쩔 수 없지요. 저는 이곳에서 우리 교회가 위에서 언급한 그런 영성 위에 바로 설 수 있기를 바라며 기도를 멈추지 않겠습니다. 이제 버몬트와 애틀란타에서 말씀 전하는 일정이 남아 있습니다. 다시 만날 때까지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안녕히 계십시오.(웨스톤 수도원에서 주님의 작은 종 김기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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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데(17 05-28 04:05)
어느 설교보다도 가슴이 설레고 뜨거워 지는 편지 감사합니다.
청정한 새벽 공기를 마신듯 합니다.
은총이 소낙비같이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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