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컬럼

제목 빛의 시간이 다가온다 2016년 12월 24일
작성자 김기석

 빛의 시간이 다가온다


일년 중 밤이 가장 길다는 동짓날이다. 이 날을 기점으로 하여 낮이 조금씩 길어지기에 옛 사람들은 동지녘을 태양이 부활하는 때로 여겨 경축하기도 했다. '농가월령가'는 동지 무렵의 가난한 농촌 세태를 담담하게 노래한다. 가을걷이가 끝난 후, 벼 몇 섬은 팔아 필요한 돈을 마련하고, 몇 섬은 국세로 내고, 제사에 쓸 것과 씨앗을 따로 여퉈두고, 빚도 갚고, 품값도 치르고 나면 남는 게 얼마 없다. 본래 엄부렁하던 살림살이가 옹색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된다. 절망의 땅이라 해도 자꾸 움씨를 뿌리는 끈질김으로 농부들은 고단한 생과 맞섰다. 내면에 깃드는 어둠을 자꾸 헤집어 불씨를 찾아내고 거기에 숨을 불어넣어 불꽃을 되살리며 살 수밖에 없지 않은가.


성탄절이 동지녘과 인접해 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어둠의 시대를 살아가는 동안 우리 가슴에 켜켜이 쌓인 슬픔과 고통의 무게로 인해 허수한 느낌에 사로잡힐 때 성탄절이 다가온다는 사실이 참 고맙다. 성경은 예수를 가리켜 어둠이 지극한 세상에 와서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라고 고백한다. 이러한 은유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예수가 태어난 것은 소위 '로마의 평화'라는 허구의 평화가 지중해 세계 전체를 지배하고 있던 때이다. 로마는 압도적인 군사력을 바탕으로 주변 세계를 폭력적으로 복속시켰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은 로마의 화려하고 발전된 문화에 대한 선망을 내포하고 있지만, 사실 이 문장 속에는 깊은 폭력성이 숨겨져 있다. '그 길'은 로마의 전차부대가 정복을 위해 달려가는 길인 동시에 식민지로부터 약탈한 막대한 재화를 실어나르는 길이었던 것이다. 로마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1세기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극심한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고 있었고, 마을마다 로마제국이 자행한 폭력의 기억 때문에 정신의 통전성을 잃어버린 이들이 한 둘은 꼭 있었다. 로마는 무너질 수 없는 철옹성처럼 보였다. 그렇기에 로마에 자발적으로 부역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자유를 압살당한 사람들, 체제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자기가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지를 알지 못한다. 바로 이것이 예수가 태어날 당시의 어둠이었다.


예수는 로마의 지배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사람들을 비인간화하고 도구화하는 문화는 신에 대한 도전임을 폭로했다.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이들은 자기들이 구성한 기존 질서의 민낯을 폭로하는 이들을 폭력적인 방식으로 제거하려 한다. 이것은 어느 시대나 동일하다. 우리나라 도처에서 전해지고 있는 아기장수 설화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이들에 대한 권력자들의 두려움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아기장수는 늘 죽임을 당해왔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결코 죽지 않는다. 예수 탄생 이야기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역사의 꿈을 반영하고 있다. 새로운 세상은 늘 변방으로부터 시작된다. 돋아나는 새싹이 그러하듯 새로운 세상은 연약한 이들 속에서 움터나온다.


지금 이 나라에 드리운 어둠이 지극하다. 사람들은 어렴풋하게 짐작하고 있던 권력층의 삶의 방식을 보고 깊은 충격을 받았다.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지층 깊은 곳에서 불의한 이들이 얼마나 공고한 연대를 이루어 살고 있는지를 확인한 것이다. 분노가 증오로 화할 때 세상의 어둠은 더욱 짙어진다. 그러나 어둠을 어둠으로 폭로하는 동시에 마땅히 지향해야 할 세상을 끈질기게 바라볼 때 희망이 역사 속에 유입된다. 공허와 혼돈, 어둠과 심연의 자리야말로 빛이 잉태되는 자리이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그 빛이 비록 반딧불처럼 희미하다 해도 그 빛은 소중하다. 어둠 속에 유폐된 채 살고 있는 이들에게 빛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니 말이다. 그 작은 불빛들이 모여 빛의 바다를 이룰 날을 내다본다.


그러나 지금은 빛의 도래를 기뻐하는 노래를 해맑게 부를 수 없다. 아직 이 땅의 어둠이 물러갈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빛과 어둠이 혼재된 상황이 언제까지 계속될까? 수 천만 마리의 가금류들이 인간의 탐욕스러운 삶의 방식으로 인해 살처분 당하고 있고, 시리아의 알레포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하늘만 바라보고 있다. 국제사회의 무관심이 그러한 사태를 키웠다. 예수는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알레포에서 죽음의 공포에 질린 아이들 곁에 머물며 울고 계실까? 땅에 묻히고 있는 수많은 생명들을 바라보며 탄식하고 계실까? 다시금 정신을 가다듬고 빛의 노래, 희망의 노래를 부르자. 노래조차 부르지 않으면 우울함이 우리 영혼을 삼켜버릴 테니까. 동지가 지나면 빛의 시간이 다가온다. 그게 하늘이 정한 이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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