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컬럼

제목 고향이 되어주는 사람들 2020년 10월 01일
작성자 김기석
고향이 되어 주는 사람들

코로나19가 명절 풍경마저 바꿔놓고 있다. 올해는 고속도로를 가득 채운 귀성 행렬을 보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집안의 어르신들이 다 세상을 떠나신 터라 고향을 찾아갈 일이 별로 없다. 고향을 떠나온 지 50년이 훌쩍 지났지만, 그곳에서 지냈던 유년 시절의 기억은 내 정서의 밑절미임이 분명하다. 서해 바닷가, 뒷산과 앞산 사이의 들판 주위로 점점이 박혀 있던 집들, 저녁이면 집집마다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해질녘 바닷가에서 놀다가 밥 먹으러 오라는 엄마의 불호령에 깨나른하게 하나 둘 집으로 향하던 벗들이 떠오른다. 

여름밤이면 라디오를 들으러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고, 모기를 쫓기 위해 왕겨에 불을 붙이고 그 위에 쑥대를 얹어 연기를 피웠다. 마당가 오동나무 가지 위에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올리는 일은 날렵한 내 몫이었다. 마을 분들이 다 돌아간 후에도 멍석자리를 걷지 않고 엄마 무릎을 베고 누워 은하수를 우러러보곤 했다. ‘하늘엔 총총한 별, 내 가슴엔 도덕률’(칸트)이라는 말도 몰랐고, ‘밤하늘의 별을 보고 길을 찾던 시대’(루카치)가 왜 그리운지 몰랐지만, 우유를 쏟아놓은 것 같은 은하수는 영원한 동경의 마음을 내 속에 새겨 놓았다.

그러나 고향은 기억 속에만 있을 뿐이다. 간척사업으로 인해 우리 놀이터였던 갯벌과 바다가 사라졌고 앞산과 뒷산도 함께 사라졌다. 바다를 메우는데 필요한 돌과 흙을 얻기 위해 허물었던 것이다. 그 일이 진행된 몇 년 후 고향을 찾아갔다가 그 황망한 광경 앞에 기가 막혀서 털썩 주저앉았던 기억이 새롭다. 시간이 조금 흐른 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노래를 흥얼거렸다. “내 놀던 옛 동산에 오늘 와 다시 서니 산천의구란 말 옛 시인의 허사로고/예 섰던 그 큰 소나무 베어지고 없구려”. 기억의 저장고가 사라졌다는 것, 그 속에서 함께 빚었던 삶의 이야기가 불도저 소리와 함께 스러졌다는 것이 가슴 아팠다.

토머스 울프의 소설 <그대 다시는 고향에 못 가리>의 주인공인 조지 웨버는 자기를 길러준 이모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15년 만에 산골 고향의 작은 읍으로 돌아간다. 기차 차창으로 계곡 밑의 작은 마을들을 바라보며 남다른 감회를 느꼈다. 방황의 먼 여로를 거쳐 왔지만, 그래도 눈을 감으면 고향의 길, 거리의 집들, 사람들의 모습을 쉽게 떠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고향은 옛 모습이 아니었다. 부동산 투기와 개발의 ‘광기’가 소읍 전체를 휩쓸고 있었다. 부동산업자들이 설치고 다니고, 불필요한 거리와 다리가 놓이고, 커다란 건물이 세워져 고향은 이미 옛 모습을 잃고 있었다. 살풋한 정을 나누던 이웃들도 하나같이 다 변해버렸다. 웨버는 고향과 자신을 이어주던 끈이 다 끊어졌음을 느끼며 쓸쓸해한다. 

고향상실이야말로 현대인들이 앓고 있는 속병이다. 어디 하나 마음 둘 곳이 없다는 것처럼 쓸쓸한 일이 또 있을까? 가끔 저물녘 서해 바다 같은 쓸쓸함이 몰려올 때면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의 나는 새도 보금자리가 있으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신 분의 음성이 떠오른다. 예수님도 외로우셨다. 그 외로움을 헤아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뿌리 뽑힌 채 세상을 떠돌 수밖에 없는 이들, 어딜 가나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것과, 갈 수 있지만 가지 않는 것은 천양지차이다. 고향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이들에게는 마음의 고향이 되어줄 이들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와 만나면 마음의 무장이 절로 해제되고, 자기로 존재하는 일이 두렵지 않고, 숨이 가지런해지는 사람이 하나쯤 있다면 인생이 제아무리 고달파도 견딜 수 있지 않을까? 고향 상실의 쓸쓸함을 누군가의 고향 되기로 빛나게 전환할 수 있다면 삶의 비애는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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