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컬럼

제목 봄의 씨앗을 심는 사람들 2016년 01월 29일
작성자 김기석

 봄의 씨앗을 심는 사람들


며칠 전 제주도에 내린 기록적인 폭설로 항공기 운항이 불가능하게 되자 수많은 사람들이 공항에 갇혀 지낼 수 밖에 없었다. 시내로 나가는 차를 타기도 어려웠고, 숙소를 잡기는 더욱 어려웠다. 예기치 못한 사태 앞에서 모두가 허둥거렸다. 공항에서 밤을 지새야 했던 사람들은 종이 박스나 스티로폼을 구해 바닥에 깔고 고단한 몸을 눕혀야 했다. 아기도 노인도 환자도 예외가 아니었다. 일종의 재난 상황이었다. 제주도는 한국공항공사 제주지역 본부에 시민들을 위해 난방을 해달라고 부탁하자 비용 문제 때문에 난색을 표했다고 한다. 추위와 기다림에 지친 이들에게 빵과 생수를 제공하려 하자 공항 내에 있는 매점과 식당의 영업이 종료된 후에 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그것이 적법한 조치였을지는 모르겠지만 제주 공항에서 벌어진 사건은 경제논리가 생명 돌봄의 요구를 압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관료주의의 폐해인가? 고통당하고 있는 이들을 보면서도 비용과 이익을 계산하는 일에 익숙한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생명은 속절없이 유린당한다.


일본 대사관 앞에 설치된 '소녀상' 철거를 막기 위해 일단의 젊은이들이 여러 날 노숙을 하고 있다. 경찰이 천막 설치나 침낭 반입을 허용하지 않았기에 그들은 혹한의 추위를 비닐 한 장 덮고 견디고 있다. '국민을 위해서'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정치인들 가운데 그들을 찾아가 시린 손이라도 쥐어준 이들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 '유엔 평화적 집회 및 결사의 자유 특별 보고관'인 마이나 키아이는 추위가 절정으로 치닫던 날 밤에 그 젊은이들을 찾아갔다. 그것은 연대의 몸짓이고 격려의 메시지였다. 이합집산을 거듭하고 있는 정치인들의 눈에는 고통받는 이들이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오직 다음 총선에서 과연 공천을 받을 수 있을 것인지, 누구에게 줄을 대야 하는지를 계산하느라 분주한 것 같다.


절망의 조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주먹밥과 따뜻한 국물을 마련해서 공항에 머물던 이들을 대접한 종교인들이 있고, 자기집을 열어 사람들을 맞아들인 제주시민들도 있다. 밥차를 끌고 와 소녀상을 지키는 젊은이들에게 더운 밥을 제공한 이들도 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신영복 선생은 감방에서 겨울을 날 때 계수씨에게 보낸 편지에서 겨울의 가장 아름다운 색은 불빛일 거라고 말했다. 서화반 작업장에 피워놓은 연탄 난로를 보며 그는 "새까만 연탄 구멍 저쪽의 아득한 곳에서부터 초롱초롱 눈을 뜨고 세차게 살아오르는 주홍의 불빛은 가히 겨울의 꽃이고 심동의 평화"라고 말한다. 이 추운 겨울, 난감한 처지에 빠진 이들을 위해 음식을 마련해서 달려가는 이들이야말로 신영복 선생이 말하는 불빛 혹은 겨울의 꽃이 아닐까?


예수는 당신을 좇아 빈 들에 나온 무리가 굶주린 것을 보고는 제자들을 불러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 이르셨다. 제자들은 그들을 다 먹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불퉁거리지만, 예수는 보리떡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로 굶주린 무리들을 먹이셨다. 그런 기적이 과연 가능한지를 묻는 순간 그 이야기의 핵심 메시지는 누락되게 마련이다. 예수와 제자들의 차이는 무엇일까? 예수는 그들의 아픔에 깊이 공감했고 제자들은 그들을 처리해야 할 문제거리로 대한 것이 아닐까? 돈이 주인 노릇하는 세상이 인간에게서 앗아가는 것이 바로 공감의 능력이다.


신영복 선생은 작은 난로 하나가 "추위에 곱은 손을 불러모으고, 주전자의 물을 끓이고, 젖은 양말을 말리고…, 그리고 이따금 겨울 창문을 열게" 한다고 말한다. 인간적 따스함이 사라진 

세상은 좀비들의 세상이다. 입춘이 멀지 않다. 겨울 한복판에 봄의 씨앗을 심는 이들을 보고 싶다. 스스로 거칠어지지 않으면서 누군가의 가슴에 온기를 불어넣는 사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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