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또 다른 비유를 들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밭에 심었다.
겨자씨는 어떤 씨보다 더 작은 것이지만, 자라면 어떤 풀보다 더 커져서 나무가 된다. 그리하여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인다."
예수께서 또 다른 비유를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누룩과 같다. 어떤 여자가 그것을 가져다가, 가루 서 말 속에 살짝 섞어 넣으니, 마침내 온통 부풀어올랐다."
--------
1. 거대한 문제들 앞에서
좋으신 주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평안과 새롭게 하시는 은혜가 교우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그리고 폭우로 큰 피해를 본 이재민들 위에도 주님의 위로가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정말 큰 비가 내렸습니다. 충남 서천에는 500밀리 이상, 전남 광주에는 400밀리 이상, 경남 산청에는 700밀리 이상의 비가 내리며 큰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강이 범람하고 농경지와 도로와 집이 침수되고 산사태가 일어났습니다. 인명피해도 컸습니다. 일곱 분이나 사망하고 세 분이나 실종되었습니다. 몇몇 지역은 기상관측 이래 역대로 많은 비가 내렸다고 합니다. 우리는 해마다 ‘기상관측 이래’라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기상관측 이래 최고 온도입니다.’ ‘기상관측 이래 최대의 강우량입니다.’ 아마도 우리는 올해 그런 말을 몇 번 더 들을 것이며 내년에도 또 듣게 될 것입니다. 재난은 예고되어 있는데 우리는 그 거대한 재난 앞에서 속수무책입니다.
자연은 무너지는 중이고 인간은 전쟁 중입니다. 하루에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가 전쟁으로 인해 죽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가자지구 사람들 수 만 명을 학살하더니, 이스라엘의 미래에 위협이 될 것이라며 이란을 선제 타격해 천 명 이상을 죽였습니다. 이스라엘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얼마 전 가까스로 내란을 끝내고 국가를 재건 중인 시리아까지 폭격했습니다. 시리아 남부에서 일어난 베두인족과 드루즈족 간의 전투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시리아 남부와 수도 다마스쿠스를 폭격하여 수 백 명을 죽였습니다. 자꾸 국제법을 위반하는 이스라엘도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런 이스라엘을 저지하지 못하는 국제사회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러시아도 문제입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너무 오래 지속되고 있습니다. 종전은 고사하고 휴전에도 이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확전의 가능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지난 주중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는 제3국을 선제공격하겠다고 협박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미국은 세계 여러 나라와 관세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전쟁이라고 말은 했지만, 이것은 전쟁이 아니라 일방적 통보입니다. 지금 미국에게는 생명과 평화와 공존이라는 가치는 전혀 중요하지 않고 오로지 돈! 돈! 돈!만 중요할 뿐입니다. 1651년 홉스는 <리바이언던>이란 책을 냈습니다. 리바이언던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리워야단을 말하는 것입니다. 욥기에 묘사된 리워야단의 모습은 우리가 상상하는 용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몸뚱이는 갑옷 같은 비늘로 둘러싸여 있으며 코에서는 연기가 나고 입에서는 불이 나옵니다. 리워야단은 인간이 전혀 제어할 수 없는 난폭한 존재입니다. 홉스는 ‘이기적인 존재인 인간을 자연 상태로 두었다가는 만인이 만인에 대해 투쟁할 수밖에 없기에, 그런 싸움을 중재하기 위해 리워야단과 같은 강력한 힘을 지닌 존재가 필요한데 그것이 국가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형국은 그 자체로 강력하고 난폭한 힘을 지닌 리워야단끼리 불을 뿜으며 싸우는 형국입니다. 나라간 싸움을 중재하기 위한 국제기구들이 있기는 합니다만 국제기구보다 강력한 힘을 지닌 강대국들 앞에서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속수무책인 자연재해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전쟁도 우리를 힘들게 만들지만 어쩌면 그보다 우리를 힘들게 만드는 것은 우리의 일상일 수도 있습니다. 생노병사 희노애락이 오가는 일상은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습니다. 사람 인人자가 말해주듯 인간은 서로 잇대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 잇대어 살아감이 서로에게 힘이 되고 도움이 되어야 하는데 서로의 짐이 되고 상처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렇게 되도록 의도했다기보다는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이 결여와 결핍의 존재인 우리 인간의 실상입니다. 한 해 한 해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자연의 질서와 매일 매일 이 충돌이 전쟁하는 국제사회와 끝없이 상처를 주고받는 인간사를 보면서 종종 무력감을 느끼곤 합니다. 이 거대하고 어려운 문제들 앞에서 이 작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매주 전하는 말씀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렇게 세상이 너무 거대하게 느껴지고 나 자신이 너무 작게 느껴질 때면 성경을 펼쳐 묵상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2. 천국의 비밀
마태복음 13장에는 씨앗 이야기가 세 번 나옵니다. ‘농부가 뿌린 씨가 길가와 돌짝밭과 가시덤불과 좋은 땅에 떨어졌는데 각기 다르게 자랐다’라는 이야기. 그리고 ‘농부가 밭에 좋은 밀 씨를 뿌렸는데 원수가 그 밭에 가라지를 뿌리고 가서 둘 모두가 자랐고, 밀을 뽑을 수도 있으니 가라지를 추수 때까지 뽑지 말라’라는 이야기. 그 두 가지 씨앗 이야기 중간에 겨자씨 이야기와 누룩 이야기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씨앗 이야기는 씨앗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천국, 하늘나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씨앗 이야기를 하시며 그것은 하늘나라의 비밀이 담긴 이야기(11절)이며, 하늘나라를 두고 한 이야기(19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씨앗 이야기를 ‘하늘나라는 씨를 뿌리는 사람과 같다.’ ‘하늘나라는 겨자씨와 같다’라고 말로 시작하심으로 당신이 하시는 이야기가 씨앗 이야기가 아니라 하늘나라 이야기임을 밝히셨습니다. 그럼 이제 비밀스런 하늘나라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겠습니다.
예수님은 겨자씨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겨자씨를 가져다가 자기 밭에 심었다. 겨자씨는 어떤 씨보다 더 작은 것이지만, 자라면 어떤 풀보다 더 커져서 나무가 된다.” 누룩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여자가 누룩을 가져다가 가루 서 말 속에 살짝 섞어 넣으니 마침내 온통 부풀어 올랐다.” 겨자씨와 누룩 이야기는 재료는 달랐지만 작디작은 것이 크게 되었다는 점에서는 같은 이야기입니다. ‘작은 것이 큰 것이 된다’ 은혜롭지요? 성공신화 같기도 하고, 늘 대박을 소망하는 인간의 욕망에도 부합하는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정말 그렇게 말씀하신 것일까요? 인생 대박 나라고, 대박이 천국이라고 말씀하신 것일까요? 우리는 좀더 주의 깊게 예수님의 말씀을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작은 겨자씨가 나무가 된다는 말씀 뒤에 한 마디를 덧붙이셨습니다. “그리하여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인다.” 이는 겨자씨가 새들이 와서 깃들일 정도로 큰 나무가 되었다는 결과를 강조한 것일 수도 있지만, 겨자씨가 나무처럼 커진 것은 새들의 쉴 곳이 되어 주기 위함이었다는 목적을 강조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누룩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여자가 누룩을 가져다가 가루 속에 섞어 넣었는데, 그 밀가루의 양이 좀 많았습니다. 500g이나 1kg이 아니었습니다. 서 말이었습니다. 약 22ℓ 정도입니다. 꽤 많은 양입니다. 혼자 먹을 수 있는 양이 아닙니다. 그래서 “가루 서 말 속에 누룩을 살짝 섞어 넣으니 마침내 온통 부풀어 올랐다”는 말씀은 ‘작은 누룩이 그 많은 반죽을 크게 부풀어 오르게 했다’에 방점을 찍어 읽을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생략된 이야기 – ‘그리하여 많은 이가 그 빵을 함께 나누어 먹었다’에 방점을 찍어 읽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들려주신 겨자씨 이야기와 누룩 이야기를 ‘작은 것이 큰 것이 된다’는 욕망 성취의 이야기로만 읽을 때, 우리가 직면한 거대하고 어려운 문제들 - 자연이 무너지고, 세계가 충돌하고, 사람과 사람이 서로에게 힘과 도움이 되지 못하고 짐과 상처가 되는 일을 계속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 사이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문제는 작은 것으로 큰 것을 얻으려는 욕심에서 생기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 이야기는 천국의 비밀이 담긴 이야기, 천국 이야기다’라고. 저는 그 비밀이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작은 것이 큰 것이 된다’가 천국의 비밀이 아니라, ‘작은 것이라도 어려운 이들과 함께 나누려 할 때 그것은 큰 것 - 이 땅에 천국을 이루는 것이 된다’가 천국의 비밀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거대한 로마제국과 오래된 성전체제에 비하면 작은 겨자씨와 눈에 보이지도 않는 누룩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떻게 해서든 의지할 곳 없는 이들의 기댈 곳이 되어 주려 노력하셨고, 육신과 영혼이 주린 이들을 먹이려 애쓰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예수님이 전해주신 하늘나라는 그 어떤 국가나 종교보다 커졌고 온 세상에 퍼져나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3. 보이지 않는 선한 일을 계속하는 힘
우리 교회에서 후원하는 단체 중에 ‘홈리스 행동’이란 단체가 있습니다. 도시빈민들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입니다. 몇 해 전에 그 단체에서 낸 책을 보게 되었습니다. <힐튼호텔 옆 쪽방촌 이야기>라는 책이었습니다. 힐튼호텔 옆에 동자동 쪽방촌과 양동 쪽방촌이 있는데 그곳에 사는 여덟 분을 인터뷰해서 쓴 책이었습니다. 사기를 당해서, 철거를 당해서, 강제이주를 당해서, 가정폭력을 당해서, 장애가 생겨서 쪽방촌에 오게 되었고, 그곳에서 길게는 60년을 짧게는 몇 년을 살아온 분들의 구구절절한 삶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습니다. 한 분 한 분의 사연도 제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겼지만, 그 분들과 신뢰관계를 쌓고 그 신뢰를 바탕으로 그분들의 사연 하나 하나를 정성스레 풀어낸 인터뷰어들의 자세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책 한 쪽 면에는 인터뷰어들의 자기소개 글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한 분의 소개글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홍수경 활동가 – 홈리스 야학에서 교사로 활동 중. 성과가 잘 보이지 않는 더디고 느린 활동이 주는 힘을 믿는다.’ 성과가 잘 보이지 않는 더디고 느린 활동, 그런 활동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회피하고 알아주지 않는 활동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 삶의 중요한 일상들은 거의 그런 활동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사람을 먹이고 키우는 일이 그렇지요. 매일 삼시 세끼 먹인다고 성과가 바로 보이나요? 언젠가 자라겠지, 하며 그냥 계속 정성껏 먹이는 것이지요. 또 살림도 그렇지요. 청소, 빨래. 해도 해도 티가 잘 안 납니다. 그런데 안 하면 티가 금방 나죠. 우리는 살림을 수행하듯 매일매일 꾸준히 합니다. 식구들이 편안함을 느끼길 소망하며 그렇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홍수경 활동가의 말처럼 성과가 잘 보이지 않는 더디고 느린 활동이 주는 힘이 있습니다. 그 힘이 우리를 살게 합니다.
저의 신학교 선배님 중에 많은 이로부터 존경받는 선배님이 계셨습니다. 채희동 목사님. 희동, 이름도 정겹지요. 사람이 따스하고 품이 넓고 글도 잘 쓰는 분이었습니다. 글을 잘 쓴다는 것은 문장이 힘 있고 좋았다는 뜻만이 아니라 글을 쓴 대로 사는 분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많은 이가 존경했지요. 설명이 다 과거형이지요? 안타깝게도 채목사님은 2004년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목사님의 <걸레질 하시는 예수>라는 책의 한 대목을 읽어드리겠습니다. “걸레는 우리 그리스도인을 그리스도인 되게 하는 제일 요소이다. 걸레를 들지 않는 기독교 신앙은 위선적일 수밖에 없고, 이웃의 아픔, 고통, 배고픔을 함께 나누는 걸레의 삶을 살지 않는 사람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 말할 수 없다. … 굳이 성자를 말하라면 자기 십자가(걸레)를 짊어지고 예수를 따르는 자일 것이다. 세상 죄를 지고 고난 받으신 어린 양처럼 세상의 아픔, 이웃의 슬픔을 닦아주는 삶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이요, 성자의 삶이 아닌가. … 한국의 어머니야말로 걸레와 같으신 분이다. 자기 몸을 온전히 남편을 위해 자식을 위해 희생하신다. 일생을 걸레처럼 사신 분이 우리의 어머니이시다. 걸레가 자기를 위해서는 아무 치장도 꾸밈도 없이 다만 자기의 몸으로 더러운 곳을 닦아내듯 그렇게 사셨다.… 걸레와 같은 어머니의 거룩한 삶이 우리의 가정을 살렸다.”
거대한 세상에 비하면 우리는 너무나 작습니다. 어려운 문제들에 비하면 우리는 너무나 연약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겨자씨와 누룩처럼 작아도 우리 안에 지친 이들에게 품이 되어주려는 마음과 주린 자를 먹이려는 선한 마음을 품는다면, 그런 마음으로 성과가 잘 보이지 않는 더디고 느린 걸레질과 같은 일을 계속해서 할 수 있다면, 세상 전체를 하늘나라로 바꿀 수는 없어도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이들에게 편히 쉴 수 있는 나무그늘이 되어 줄 수 있고 주린 배와 영혼을 든든히 채워줄 수 있는 빵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주려 노력한다면 언젠가 이 세상도 하늘나라가 되리라 믿습니다. 저는 그것이 예수님의 믿음이었으며 오늘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믿음이라고 믿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 믿음으로 우리의 삶의 자리를 조금씩 조금씩 천국, 하늘나라로 만들어가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