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36. 생명의 밥이 되어
설교자 김재흥
본문 요 21:15~17
설교일시 2025-09-07
오디오파일 250907 말씀(음성).mp3 [25597 KBy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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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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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창조절
좋으신 주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평안과 새롭게 하시는 은혜가 교우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시길 빕니다. 오늘은 지난 주일에 말씀드렸듯이 교회력으로 창조절 제1주 주일입니다. 창조절기는 이 세상을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으로 고백하며,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그 처음 모습대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던 모습대로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는 절기입니다. 인간이 개발과 편리를 명목으로 자연과 동식물들의 서식지를 파괴하고 땅과 물과 공기를 오염시켰습니다. 그 결과 많은 동식물이 멸종하고 있고 탄소가 과다 발생하여 지구의 평균 기온이 올라가고 있습니다. 산업화 이전 대비 기온은 1.5도가 올랐고, 이 추세면 2041년에는 2도 이상 오르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1미터 상승하고, 강 주변의 농경지와 주거지가 침수되고, 동식물들 20~30%가 멸종하고, 사람은 4억 명 이상이 피해를 입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때가 되면 인류는 이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는 파국을 맞게 되는 것입니다. 파국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고 태양광과 풍력과 같은 친환경에너지로 속히 전환하면 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여러 나라가 비용 증가를 이유로 들며 계속 석유와 석탄을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미래가 걸린 일에 비용을 따지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어리석습니다.

기후파국을 앞둔 이 위기의 시기에 인류는 큰 갈등을 빚고 있습니다. 미국은 철저한 자국중심주의를 표방하면서 세계적 갈등을 유발하고 있습니다. 미국에 맞서기 위해 북한-중국-러시아-인도 등이 연합하고 있습니다. 이런 갈등과 긴장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요? 기후변화로 최근 20년간 세계 식량생산량은 최소 21%가 줄었으며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고 합니다. 세계 여러 나라가 전쟁할 준비는 되어 있고 식량이 점점 감소하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전쟁이 일어납니다. 세계적인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이미 3차 세계대전은 일어났다. 단지 느리게 진행 중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도 베르베르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지금 현재 세계는 아주 위험한 흐름 속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자연이라는 귀한 삶의 터전을 망가뜨리고, 하나님께서 서로 도우며 살아가라고 주신 이웃을 죽이려는 인간. 왜 우리 인간은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걸까요? 창조절기는 단지 환경운동을 하는 절기가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절기입니다. 교회력은 본디 예수님의 생애와 성령의 역사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절기, 예수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절기, 예수님께서 당신의 모습을 세상에 드러내신 주현절기,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향해 나아가신 사순절기,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부활절기가 절반이고 나머지 절반은 성령강림절기입니다. 현대에 들어와 교회력 속에 성부가 빠진 것을 인식하게 되고 창조질서가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성령강림절기 뒤의 절반을 창조절, 창조질서 보존을 위한 성부의 절기로 지키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인간이 어리석게 삶의 터전인 지구를 파괴하고 서로 지키고 돌보아야 하는 이웃을 죽이려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과 창조의 원리와 순리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2. 먹이시는 예수
예수님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은 참 많습니다. 목자, 메시야, 하나님의 아들, 주님 등등. 그런데 예수님께서 반복적으로 행하신 일을 가지고 예수님을 표현해 본다면, 병을 고쳐주는 사람, 귀신을 쫓아내는 사람, 죽은 자를 살리는 사람, 말씀을 전하는 사람 등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이것을 하나 더 추가해야 합니다. ‘먹이는 사람’. 예수님은 먹이는 사람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듣기 위해 당신 앞에 나온 5,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하루종일 굶주렸을 때, 그들을 위해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기적을 베풀어 그들 모두가 배부르게 먹게 하셨습니다. 마태복음은 예수님께서 그런 기적을 여러 번 베푸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6장에서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빵’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요6:41) 그러면서 사람들에게 당신을 먹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의 마지막 식사 자리에서도 제자들에게 빵을 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받아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해 내어주는 나의 몸이다.”

먹이시는 예수님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 3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감격했습니다. 예수님의 옆구리에 난 창 자국도 보았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다시 디베랴 바닷가로 돌아갔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기잡이 생활로 돌아간 것입니다. 마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적 없었던 것처럼, 예수님과 함께 공생애 3년을 보낸 적이 없었던 것처럼. 제자들은 밤새 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새벽을 맞았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물가에 나타나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 말씀대로 하자 고기가 너무 많이 잡혀서 그물을 끌어올리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당신이 처음 만났을 때 일어났던 일을 재현하심으로 제자들로 하여금 잊고 지냈던 많을 것을 기억하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육지로 올라와 보니 예수님께 숯불을 피워 놓으시고 생선을 구워놓으셨고 빵도 준비해 두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잊고, 본분도 잊고 옛생활로 돌아간 제자들을 꾸짖지 않으시고 그들을 위해 밥상을 차려주신 것입니다. 성경에 나온 밥상 중 가장 감동적인 밥상입니다. 그 물고기와 빵을 먹으며 제자들은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은 살아서도 죽어 부활해서도 사람들을 먹이는 분이셨습니다.

아침 식사 후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물으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답했습니다. “주님, 그렇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이렇게 부탁하셨습니다. “내 어린 양 떼를 먹여라.” 똑같은 질문과 답변과 부탁이 세 번 반복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 양 떼를 먹이라’고 신신당부를 하신 것입니다. 왜 예수님은 ‘사랑’과 ‘먹이라’는 말씀을 그렇게 강조하신 것일까요? 그것이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세계의 원리이자 순리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은 다른 생명을 먹고, 자기 또한 다른 생명에게 먹혀야 합니다. 그게 순리이건만 인간은 다른 생명을 먹을 생각만 할 뿐 다른 생명에게 먹힐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삶의 터전인 자연을 파괴하고 함께 살아가야 할 이웃을 죽이려하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 드립니다. 다른 생명을 먹고, 사랑으로 다른 생명에게 먹히는 것, 그것이 하나님 창조의 원리와 순리입니다.

3. 생명의 밥이 되어
감리교회의 목사이자 작가인 이현주 목사님이 채희동 목사님과 함께 쓰신 시가 있습니다. <밥을 먹는 자식에게>란 시인데 노래로도 만들어졌습니다. 3절에 이런 가사가 나옵니다. 쌀 보리 밀 옥수수 물고기에 온 만물들은 자신을 제단 위에 밥으로 드리는데 그렇게 사람들만 밥 되지 않으면 어느 누가 생명 세상을 열겠느냐 사람은 생명의 밥을 먹고 밥이 되어 사는 거여. 생명의 밥을 먹고 밥이 되어 사는 것, 그것이 예수님이 가신 길이고, 모든 생명이 따라가야 할 길입니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작가 카렌 블릭센의 소설 중 <바베트의 만찬>이란 소설이 있습니다. 이 또한 <아웃 오브 아프리카>처럼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1800년대 후반 덴마크의 외딴 바닷가 마을에 금욕적인 목사 아버지 밑에서 자란 두 딸이 살고 있었습니다. 두 딸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에도 독신생활을 하며 마을 사람들과 함께 예배를 드렸고, 그들을 돌보며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의 소개로 파리에서 살던 바베트가 그 자매의 집에 식모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바베트는 프랑스 5차 혁명이 일어났을 때 남편과 아들을 잃고 몸과 마음을 의지할 곳이 필요했던 처지였습니다. 바베트는 월급 없이 두 노년의 자매를 위해 일했고, 마을 사람들을 돌보며 그들의 사랑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그렇게 14년이 지난 어느 날 바베트가 복권에 당첨되어 1만 프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때 마침 두 자매가 아버지의 생일을 기념하며 잔치를 준비 중이었는데 바베트가 그 식사를 자신이 준비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바베트는 복권당첨금 전부를 들여 프랑스 궁중요리를 풀코스로 준비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사실 바베트는 파리 최고 식당의 수석 요리사였던 것입니다. 바다거북이, 메추라기, 달팽이, 최고급 와인 등 값비싼 재료들이 도착했습니다. 바베트는 옛 솜씨를 발휘해 최고의 식사를 준비했습니다. 그 당시 마을 사람들은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고 기도도 했지만, 그들 사이에는 함께 살아온 오랜 세월만큼의 오랜 감정의 앙금들이 쌓여있었습니다. 12명의 사람들은 다소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식탁에 앉았고 생전 처음 보는 최고급요리, 정성이 가득 들어간 맛난 요리를 하나 둘 먹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아주 귀한 대접을 받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마음이 너그러워진 사람들은 진솔하게 담소를 나누었고 쌓였던 악감정은 봄볕에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식사 후 그들은 오래간만에 별이 반짝이는 마당으로 나가 함께 손을 잡고 예전에 불렀던 찬양을 불렀습니다. 한 사람이 감사와 사랑의 마음으로 자신의 전부를 쏟아부어 만든 음식이 경직되고 분열되어 있던 공동체에 평안과 화해를 가져온 것입니다. 한 사람이 자신을 온전히 다른 사람들에게 먹이려 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이 영화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많은 발전과 번영을 이룬 이 세상이 점점 멸망으로 치닫는 이유는 먹으려는 사람들만 가득하고 먹이려는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먹이는 자로 사셨음을 기억합시다. 우리가 예수를 따라 서로를 사랑으로 먹이려 노력할 때, 하나님의 창조 원리와 순리를 따라 살 때, 멸망으로 치닫던 이 세상은 다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세상이 될 것입니다. 그 귀한 일을 기꺼운 마음으로 함께 감당하는 청파의 교우들과 이 시대 믿음의 사람들이 되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아멘.

등 록 날 짜 2025년 09월 07일 14시 31분 42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