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48. 구원의 우물에서
설교자 김기석
본문 사12:1-6
설교일시 2016/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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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우물에서
사12:1-6
(2016/11/27/대림절 1주)

[그 날이 오면, 너는 이렇게 찬송할 것이다. "주님, 전에는 주님께서 나에게 진노하셨으나, 이제는 주님의 진노를 거두시고, 나를 위로하여 주시니,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다. 나는 주님을 의지한다. 나에게 두려움 없다. 주 하나님은 나의 힘, 나의 노래, 나의 구원이시다." 너희가 구원의 우물에서 기쁨으로 물을 길을 것이다. 그 날이 오면, 너희는 또 이렇게 찬송할 것이다.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의 이름을 불러라. 그가 하신 일을 만민에게 알리며, 그의 높은 이름을 선포하여라. 주님께서 영광스러운 일을 하였으니, 주님을 찬송하여라. 이것을 온 세계에 알려라. 시온의 주민아! 소리를 높여서 노래하여라. 너희 가운데 계시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은 참으로 위대하시다."]

• 맥베드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가운데 임하시기를 빕니다. 대림절 첫 주일인 오늘 우리는 대림 촛불 하나를 밝혔습니다. 어둠이 지극한 세상이지만 밝혀진 촛불 하나만큼 세상은 환해지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절망과 어둠의 세월에 짓눌려 마음의 빛이 꺼지면 그만큼 세상은 어두워질 뿐입니다. 어제 광화문 광장에서 1분 동안 모든 불빛을 껐다가 다시 켜는 퍼포먼스는 강력했습니다. 마치 대림절의 의미를 집단적으로 재현하는 듯 했습니다. 어둠의 세월일수록 싹싹하고 명랑한 기운을 모아 그 세월을 잘 건너야 합니다. 며칠 전 지인의 초대로 베르디의 오페라 '맥베드'를 보았습니다. 권력욕에 사로잡혀 신의와 우정을 저버리고 치달리다가 몰락의 길에 접어드는 맥베드의 이야기가 깊은 울림이 되어 다가왔습니다. 아시다시피 '맥베드'는 세익스피어의 비극 작품입니다. 스코틀랜드의 장군 맥베드는 세 마녀가 전해주는 예언, 곧 왕이 될 거라는 말을 철석같이 믿고 파멸을 향해 나아가는 비극적 인물입니다. 그의 아내는 주저하는 남편을 부추겨 왕을 시해하고, 친구들을 죽이도록 만듭니다. 소프라노와 바리톤의 아리아를 듣는 동안 지금 우리 시대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제 가슴을 울렸던 것은 맥베드의 학정으로 인해 고통받던 이들이 들고 일어나 부르는 민중들의 합창이었습니다.

"배신당한 조국이 울며 그곳으로 초대한다.
형제들이여! 억압당한 자들을 구하기 위해 달리자.
신의 분노가 불경건함 위로 폭발한다.
끔찍하고 과도한 행위가 신을 화나게 한다."

민중들은 하늘의 뜻을 저버리린 독재자 맥베드를 몰아내기 위해 용기를 발휘합니다. 더 이상 강포한 자의 폭력에 의해 가녀린 생명들이 스러지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그들은 두려움과 절망의 너울을 걷어내고 일어선 것입니다. 몸을 우뚝 일으켜 세운 백성들처럼 무서운 존재가 누구이겠습니까? 하나님이 그들 편에 서십니다. 하나님은 땅에서 벌어지는 일을 모른 체 하지 않으십니다. 신을 화나게 하는 '끔찍하고 과도한 행위'란 자기 분수를 지키지 않는 이들이 저지르는 폭력을 가리킵니다. 백성들을 잘 돌보라고 위임받은 권력을 가지고 백성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데 사용하는 이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들입니다.

• 제3의 기다림
대림절은 기다림의 절기입니다. 우리는 '다시 오마' 약속하셨던 주님이 이 땅의 어둠을 뚫고 빛으로 임하시기를 간절히 기다립니다. 그러나 그 기다림은 막연한 기다림, 수동적인 기다림이어서는 안 됩니다. 체코 대통령으로 재직했던 바츨라프 하벨은 기다림을 둘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하나는 고도(Godot)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고도'는 사무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에 나오는 가상의 인물입니다. 이 희곡에서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언제 올지도 모르는 '고도'를 막연히 기다리며 권태를 다스립니다. 하벨은 공산주의 체제 가운데 살던 자기들의 처지가 그러했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내부에 희망을 갖지 못했기에 외부에서 올 구원을 갈망"(바츨라프 하벨, <불가능의 예술>, 이택광 옮김, 경희대학교 출판문화원, 2016년 6월 1일, p.127)했던 것입니다. 그들에게 고도는 무력감을 감추기 위한 가림막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다른 하나는 인내의 기다림입니다. 이것은 "억압에 굴하지 않고 진리를 말하는 저항이야말로 합당하다는 생각에서 우러나오는 기다림입니다. 인정을 받든 승리를 거두든 패배를 하든 상관이 없습니다"(같은 책, p.127). 그는 이런 기다림을 반체제적 인내의 기다림이라고 말합니다. 어찌 보면 매우 숭고한 태도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것과는 또 다른 하나의 기다림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결코 절망으로 귀착될 수 없는 기다림입니다. "어둠 속과 죽음의 그늘 아래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게 하시고, 우리의 발을 평화의 길로 인도하실"(눅1:79) 분이 오고 계십니다. 우리의 희망은 우리의 의지나 지성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어 우리 삶과 역사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주님이 오심을 기다린다는 것은 그렇기에 막연히 좋은 날 오기를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그저 인내하며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꿈꾸시는 세상의 꿈을 가슴에 품고 그 세상을 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시달리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간절히 기다리던 '그 날'은 반드시 옵니다. 이사야는 그 날이 오면 사람들은 이런 찬양을 올릴 거라고 말합니다.

"주님, 전에는 주님께서 나에게 진노하셨으나, 이제는 주님의 진노를 거두시고, 나를 위로하여 주시니,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다. 나는 주님을 의지한다. 나에게 두려움 없다. 주 하나님은 나의 힘, 나의 노래, 나의 구원이시다."(12:1-2)

주님께서 진노를 거두시는 날, 고통받던 이들을 위로하시던 날, 사람들은 감사의 찬양을 하나님께 바칠 것입니다. "주 하나님은 나의 힘, 나의 노래, 나의 구원"이라고 진실되게 고백하는 순간, 우리 속에 깃들었던 무기력증은 사라지고 하늘의 생기가 스며들 것입니다. 어둠이 지배하는 것 같은 세상살이에 지쳐 낙심할 때도 있고, 가끔은 어긋난 길로 나아가기도 하지만, 믿는 이들은 기어코 몸을 일으켜 다시 하늘빛을 따라 걷습니다. 조금 더디다고 하여 안달할 것 없습니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조롱하는 것만으로는 어둠의 세력과 싸워 이길 수 없습니다. 시절이 수상할수록 기쁨과 명랑함으로 현실을 건널 수 있어야 합니다. "너희가 구원의 우물에서 기쁨으로 물을 길을 것이다". 먼 훗날 벌어질 일이 아닙니다. 구원의 우물에서 기쁨으로 물을 길어올릴 수 있을 때 우리는 긴 싸움에서 승리할 것입니다.

• 지향이 분명하면
대림절기는 우리에게 너무 성급하게 희망하거나 절망하지 말고, 우리가 마땅히 가야 할 길을 내다보면서 꾸준히 걸어가라고 우리를 초대합니다. 도종환 시인의 '화'는 선불맞은 짐승처럼 세상이 왜 이 모양이냐며 씩씩거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용히 다독거려줍니다.

"욕을 차마 입 밖으로 꺼내 던지지 못하고
분을 못 이겨 씩씩거리며 오는데
들국화 한무더기가 발을 붙잡는다
조금만 천천히 가면 안되겠느냐고
고난을 참는 것보다
노여움을 참는 게 더 힘든 거라고"

들국화만으로는 안 되었던지 은행잎들도 놀란 얼굴로 내려오며 앞을 막고, 저녁 종소리까지 어떻게 알고 달려오고, 낮달도 근심 어린 낯빛으로 가까이 와서 조용히 속삭입니다. "우리도 네 편이라고 지는 게 아니라고". 지향만 분명하다면 우리는 결코 지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그 증거입니다.

매년 이맘 때면 떠오르는 것이 윤동주의 '쉽게 씌어진 시'입니다. 그는 절망스러운 현실을 개탄하지만, 무너져내리는 마음을 애써 추스리면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작다고, 초라하다고 낙심할 것 없습니다. 등불을 밝히는 순간 어둠은 조금 물러나게 마련입니다. 등불을 밝혀든다는 것은 어느 날 도둑처럼 찾아오게 될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그것을 알았기에 시인은 마지막 연에서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슬픈 자기 위안이 아닙니다. 자기의 시린 손을 스스로 잡아줄 때 주님의 손길도 포개지는 법입니다. 어둠이 짙을수록 별빛은 더욱 찬란한 법입니다. 주님 안에서 걸어가는 우리가 이 세상의 외로운 영혼들의 마음을 밝히는 한 점 불빛이 될 수 있기를 빕니다. 아멘.

등 록 날 짜 2016년 11월 27일 12시 15분 43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