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49. 악인의 입을 다물게 하고
설교자 김기석
본문 시 101:1-8
설교일시 2016/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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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의 입을 다물게 하고
시101:1-8
(2016/12/04, 대림절 제2주)

[주님, 주님의 사랑과 정의를 노래하렵니다. 주님께 노래로 찬양드리렵니다. 흠 없는 길을 배워 깨달으렵니다. 언제 나에게로 오시렵니까? 나는 내 집에서 흠이 없는 마음으로 살렵니다. 불의한 일은 눈 앞에 얼씬도 못하게 하렵니다. 거스르는 행위를 미워하고, 그런 일에는 집착하지 않겠습니다. 구부러진 생각을 멀리하고, 악한 일에는 함께 하지 않겠습니다. 숨어서 이웃을 헐뜯는 자는, 침묵하게 만들고, 눈이 높고 마음이 오만한 자는, 그대로 두지 않으렵니다. 나는 이 땅에서 믿음직한 사람을 눈여겨보았다가, 내 곁에 있게 하고, 흠이 없이 사는 사람을 찾아서 나를 받들게 하렵니다. 속이는 자는 나의 집에서 살지 못하게 하며, 거짓말하는 자는 내 앞에 서지 못하게 하렵니다. 이 땅의 모든 악인들에게 아침마다 입을 다물게 하고, 사악한 자들을 모두 주님의 성에서 끊어버리겠습니다.]

• 육사자책
주님의 은총과 평강이 우리 가운데 임하시기를 빕니다. 대림절 두 번째 주일인 오늘, 교회는 전통적으로 세례자 요한의 선포를 기억하곤 했습니다. 그는 요단 강 주변 온 지역을 찾아가서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면서 주님 오실 길을 닦으라고 외쳤습니다. "모든 골짜기는 메우고, 모든 산과 언덕은 평평하게 하고, 굽은 것은 곧게 하고, 험한 길은 평탄하게 해야 할 것이니,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될 것이다."(눅3:5-6) 요한은 회개를 마음의 돌이킴으로만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속옷 두 벌 가진 사람은 없는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그렇게 하는 것, 힘이 있다 하여 다른 사람을 협박하거나 빼앗지 않는 것, 제 사욕을 채우기 위해 자기 직위를 남용하던 짓을 그만 두는 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세상이 참 어지럽습니다. 오늘 이 땅에 드리운 혼돈과 어둠은 착하고 순박하게 살던 이들이 만들어낸 것이 아닙니다. 거리와 광장을 가득 메운 이들은 가리워졌던 불의한 현실의 실상을 보고는 떨쳐 일어나 정의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나라가 어지러울 때에는 권력의 정점에 있는 이부터 자기 처신을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순자荀子의 '대략大略' 편에 나오는 고사가 떠오릅니다. 은나라에 7년 큰 가뭄이 들자 태사太史가 탕왕湯王에게 인신공희를 제안합니다. 그때 탕왕은 "백성을 위해 빌려 하는 데 어찌 백성을 희생시키겠는가, 내가 희생됨이 마땅하다"고 말하고, 목욕재계를 한 후 흰 띠를 띠고 상림桑林의 들에 나가 하늘에 여섯 가지 일을 자책하며 기도를 올렸습니다. 이게 소위 말하는 육사자책六事自責입니다. '정치가 알맞게 조절되지 않았습니까?', '백성들이 직업을 잃고 있습니까?', '궁궐이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습니까?', '여자들의 치맛바람이 성합니까?', '뇌물이 성행합니까?', '아첨하는 사람이 들끓습니까?' 왕의 기도가 끝나기도 전에 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오늘의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바가 참 많습니다.

• 흠 없는 삶을 꿈꾸다
시편 101편을 사람들은 흔히 제왕시로 분류합니다. 제왕시는 주로 세상의 창조자이고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통치를 찬양하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지상 왕의 통치가 지향해야 할 바를 가르치기도 합니다. 시인은 "주님의 사랑과 정의를 노래"하는 것으로 찬양을 시작하여 하나님의 지혜를 구합니다.

"흠 없는 길을 배워 깨달으렵니다. 언제 나에게 오시렵니까? 나는 내 집에서 흠이 없는 마음으로 살렵니다."(2)

왕은 가르치고 지배하는 자이기에 앞서 배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배우려 한다는 것은 자기의 부족함을 잘 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아니고는 나라를 바로 다스릴 수 없음을 그는 절감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왕에 등극할 때 하나님께 청한 것이 무엇이지요? '지혜로운 마음'이었습니다(왕상3:9). 지혜로운 마음이라 번역된 단어의 원뜻은 '듣는 마음'입니다. 자기로 가득 찬 사람은 누구의 말도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기 속으로 구부러진 존재인 탓에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합니다. 자기 슬픔에 도취되어 남들의 아픔은 거들떠 보지도 않습니다. 역사의 비극은 이렇게 하여 빚어지는 것입니다.

시인은 흠 없는 삶을 살고 싶어합니다. 성경에서 흠 없는 삶이란 도덕적으로 깨끗한 삶을 의미한다기보다는 주님의 인자하심과 공의에 일치된 삶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런 꿈을 가진 사람은 늘 자기 삶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조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욕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모든 판단의 기준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불의한 일은 눈 앞에 얼씬도 못하게 하렵니다. 거스르는 행위를 미워하고, 그런 일에는 집착하지 않겠습니다. 구부러진 생각을 멀리하고, 악한 일에는 함께 하지 않겠습니다."(3-4)

시인은 불의한 일을 눈 앞에 얼씬도 못하게 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는 다른 이들의 처신에 따라 자기 행위를 바꾸는 카멜레온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확고하고 단호하게 중심을 붙잡고 있습니다. 적당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타협하지 않습니다. 현실 속에서 그런 이들은 가끔 '동업자의 윤리'를 어겼다고 타박 당하기도 하고, '품위를 지키라'는 비난을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에게 중요한 것은 사람의 칭찬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정입니다.

• 불의한 자를 멀리함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 뿐만이 아닙니다. 사람들을 잘 살펴 적재적소에 잘 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먼저 필요한 것은 악인들을 가려내 멀리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의 한 시인은 악인들이 득세하는 현실을 가슴 아파하며 이렇게 하소연하고 있습니다. "주위에는 악인들이 우글거리고, 비열한 자들이 사람들 사이에서 높임을 받습니다"(시12:8). 기가 막힌 현실이지요. 다스리는 이들이 해야 하는 일은 자기 주위에서 그런 이들을 솎아내고 멀리하는 것입니다. 아첨꾼들과 모략꾼들, 나라꼴이야 어찌되건 자기 잇속만 차리는 사람들 말입니다. 시인은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말합니다.

"숨어서 이웃을 헐뜯는 자는, 침묵하게 만들고, 눈이 높고 마음이 오만한 자는, 그대로 두지 않으렵니다."(5)
"속이는 자는 나의 집에서 살지 못하게 하며, 거짓말하는 자는 내 앞에 서지 못하게 하렵니다."(7)
"이 땅의 모든 악인들에게 아침마다 입을 다물게 하고, 사악한 자들을 모두 주님의 성에서 끊어버리겠습니다."(8)

이웃에 대한 연민이 없는 자, 마음이 오만한 자, 속이는 자들은 한 사회의 기초를 야금야금 갉아내는 자들입니다. 어둠 뒤에 숨은 악인이 화살을 당겨 마음이 바른 사람을 쏘는 세상, "기초가 바닥부터 흔들리는"(시11:3) 세상에서는 의인조차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2014년 4월 16일, 그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들려오기 전까지 그들은 소박한 행복을 꿈꾸던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불의한 일들을 보며 혀를 차기도 했겠지만, 아주 의식적으로 불의에 저항하는 일은 하지 못한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 날 이후 유가족들은 '요나의 뱃속'에 갇힌 듯한 느낌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비통함과 절망의 심연에 갇혀 있는 것입니다. 저는 세월호 유가족을 볼 때마다 박두진 시인의 '갈보리의 노래'가 떠오릅니다.

"마지막 내려덮는 바위같은 어둠을/어떻게 당신은 버틸 수가 있었는가/뜨물같은 치욕을, 불붙는 분노를,/에어내는 비애를, 물새같은 고독을/어떻게 당신은 견딜 수 있었는가//꽝꽝 쳐 못을 박고,/창끝으로 겨누고, 채찍질해 때리고,/입맞추어 배반하고, 매어달아 죽이려는/어떻게 그 원수들을 사랑할 수 있었는가"

저는 이 시를 소리내 읽을 때마다 전율을 느낍니다. 물론 이 시가 가리키는 '당신'은 예수님입니다. 하지만 꼭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은 세상의 모든 작은 자들과 당신을 동일시하셨습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감내해 온 시간이 바로 갈보리의 시간이 아니었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습니까? 무정한 사람들은 동정 피로를 호소하며 그만 하면 되었다고, 이제는 노란 리본을 떼자고 말합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죽임 당한 이들의 억울함은 신원되어야 합니다. 대림절기를 지날 때마다 저는 이현주 목사님의 시 한 구절을 떠올리곤 합니다. "나를 둘러 당신의 옷으로 삼으소서 벌거숭이로 오시는 주님". 교회가 해야 할 일은 마음이 시린 사람으로, 벌거벗은 이의 모습으로 오시는 주님의 옷이 되는 것입니다.

• 별을 던지는 사람들
주님은 지금 그런 마음을 품고 사는 이들을 찾고 계십니다. 지도자는 모름지기 눈이 밝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중심을 보시듯이 지도자들도 중심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나는 이 땅에서 믿음직한 사람을 눈여겨보았다가, 내 곁에 있게 하고, 흠이 없이 사는 사람을 찾아서 나를 받들게 하렵니다."(6)

여기서 말하는 믿음직한 사람은 왕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바칠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과 잇대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는 왕이 잘못하는 일에 대해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는 어떤 경우에도 선을 지향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제가 마음으로 아낄 뿐만 아니라 존경하는 목사님이 한 분 계십니다. 깨끗하고 성실하고 진실한 그는 지금 목사직을 내려놓고 목수로 살고 있습니다. 자기 마음을 잘 지켜내기 위해서입니다. 며칠 전 그가 페이스북에 쓴 글을 읽다가 뭉클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그는 어느 백인의 집을 수리하는 일을 맡았다고 합니다. 데크를 손 보고, 화단을 조성하고, 망가진 창문을 수리했습니다. 집주인은 백인 중산층 남성 특유의 고압적 태도를 보였습니다. 미국 사회에서 이민자로, 아시아 사람으로, 남자로, 육체 노동자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실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짜증을 내지도, 일을 대충대충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가 쓴 글을 그대로 인용해보겠습니다.

"묵묵히 최선을 다해 일했습니다. 부탁하지도 않은 물청소와 쓰레기까지 비워주고 끊어진 전기선 배선도 해주고, 망가진 창문틀까지 고쳐주었습니다. 화분도 흙을 돋우고, 꽃들도 바로 세워주고, 죽은 가지들을 정리해 주었습니다."(김성환 목사, 페북, 11월 11일 자)

대체 이 마음이 뭘까요? 나는 속으로 '이게 이분의 목회구나!' 하고 무릎을 쳤습니다. 비록 더디더라도 이런 성실함과 온유함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 아닐까요? 하나님은 분명히 이런 이를 눈여겨 보실 겁니다.

기왕 이런 이야기를 했으니 다른 이야기를 하나 더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파커 파머의 책에서 읽은 내용입니다. 동식물 연구가인 로렌 아이슬리(Loren Eisley)는 한동안 해안 도시에 지낸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불면증에 시달리던 그는 새벽마다 해변을 산책하곤 했는데, 해 뜰 무렵이 되면 해안가로 밀려온 불가사리를 수집해 팔기 위해 백사장을 뒤지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른 새벽 아직 아무도 나오지 않은 시간에 해안에 홀로 있는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불가사리를 주워 파도 너머로 던지고 있었습니다. 그 일은 날마다 계속되었습니다. 로렌은 그 사람을 '별을 던지는 사람'이라 불렀습니다. 불가사리의 모양이 별 모양이어서 붙인 별명일 겁니다. 파커 파머는 그 이야기 끝에 하나님은 '별을 던지셨고 지금도 던지고 계신 분"이라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세상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은 별을 던지시는 분입니다. 우리 또한 별을 던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역사의 해안가에서 세찬 파도와 조수에 저항하는 모든 사람들, 바보처럼 보일 것을 두려워하지 않은 채 그 모양이 아무리 작고 하찮을지라도 생명을 긍정하기 위해 몸을 굽히는 사람들(파커 파머, <역설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 김명희 옮김, 아바서원, 출판을 위한 가편집 원고 중에서)이야말로 하나님을 참으로 믿는 사람들입니다. 밤하늘을 수놓는 저 총총한 별들은 하나님의 뜻을 가슴에 품고 살아간 사람들의 영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동지녘을 향해 나아가면서 어둠이 더욱 짙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극한 어둠 속에서 빛을 준비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절망을 빚어 희망의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 죽임의 땅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는 사람들, 불의가 넘치는 세상에서 끝끝내 의를 지향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우리가 바로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역사의 새벽은 저절로 밝아오지 않습니다. 새벽을 깨우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주님 오실 길을 닦는 사람들, 골짜기는 메우고, 산과 언덕은 평평하게 하고, 굽은 것은 곧게 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 오실 길을 닦는 그 가슴 벅찬 일에 기쁨으로 동참할 수 있기를 빕니다. 아멘.

등 록 날 짜 2016년 12월 04일 12시 25분 28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