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23. 생명 살림이라는 소명
설교자 김기석
본문 겔47:7-9
설교일시 2019-06-09
오디오파일 s20190609.mp3 [22281 KBy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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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살림이라는 소명
겔47:7-9
(2019/06/09, 성령강림주일, 환경주일)

[내가 돌아올 때에는, 보니, 이미 강의 양쪽 언덕에 많은 나무가 있었다. 그가 나에게 일러주었다. "이 물은 동쪽 지역으로 흘러 나가서, 아라바로 내려갔다가, 바다로 들어갈 것이다. 이 물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면, 죽은 물이 살아날 것이다. 이 강물이 흘러가는 모든 곳에서는, 온갖 생물이 번성하며 살게 될 것이다. 이 물이 사해로 흘러 들어가면, 그 물도 깨끗하게 고쳐질 것이므로, 그 곳에도 아주 많은 물고기가 살게 될 것이다. 강물이 흘러가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모든 것이 살 것이다.]

∙기후 위기 시대
길 잃은 이들을 찾아오시는 주님의 사랑과 은총이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오늘은 교회력으로 성령강림주일이고, 감리교회가 환경선교주일로 지키는 날입니다. 성령강림과 환경 살림의 문제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고민해보아야 하겠습니다. 최근에 영국 신문 가디언은 기후 변화(climate change)라는 용어보다는 기후 위기(climate crisis) 혹은 기후 붕괴(climate breakdown)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기후 위기의 징후는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폭염과 한파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증가했고, 산불도 자주 발생합니다. 고농도 미세먼지가 우리 삶을 괴롭힙니다. 푸른 하늘을 보면 마치 선물을 받은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만큼 우리 하늘이 흐려 있다는 말입니다. 물 부족 사태가 벌어지고, 국경을 넘나드는 전염병이 우리 삶을 위협합니다. 핵발전소의 위험이 시시각각 나타나고 있습니다.

인간의 편리를 위해 생산되는 플라스틱이 우리 삶을 위협함은 물론이고 바다 생물들의 대량 폐사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2017년을 기준으로 볼 때 연간 플라스틱 생산량은 3억 4800만 톤이고, 그 가운데 많은 것들이 사용된 후 매립되거나 방치되고 일부는 소각됩니다. 그 가운데 매년 800만 톤이 바다로 유입되고 있고, 바다를 떠다니는 플라스틱의 양은 무려 5조 톤이나 된다고 합니다. 고래, 거북이를 비롯한 바다 생물들이 플라스틱을 먹이로 착각하여 삼켰다가 죽은 사진을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그 동물들의 위에서 소화되지 않은 채 발견된 플라스틱 쓰레기는 인간의 죄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부끄럽게도 우리나라에서 발생되는 쓰레기의 일부가 가난한 나라들에 몰래 수출되기도 합니다. 차마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제적인 정책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창조주로 고백하는 기독교인들은 정치인들에게 온실가스감축에 노력할 것을 요구해야 하고, 생태계의 건강함을 회복하도록 하는 일에 그들의 역량을 발휘해줄 것을 요청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 전반의 의식 변화가 또한 절실합니다. 나의 편리함이 간접적으로나마 다른 이들이나 피조물의 생존을 위협한다면 기꺼이 불편을 감수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인간답게 산다 할 수 있겠습니다.

며칠 전 젊은 교우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가 홀로 자취생활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마트에 가서 햇반과 조리된 음식을 사다가 먹는 것 아니냐는 물음에 그는 수줍은 듯이 답했습니다. “집에서 다 해 먹어요.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으려고요.“ 그 대답이 참 고마웠습니다. 그의 작은 실천이 생태계 문제에 대한 궁극적 해결책은 될 수 없지만, 보다 많은 이들이 그런 거룩한 부담을 갖고 산다면 가능성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효과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옳기에 해야 하는 일도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계산이 아니라 모험입니다. 누가 뭐라든 주님이 우리를 부르신 그 자리로 나아가면서도 비애를 느끼지 않는다면 우리는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끈질긴 사랑
하나님을 창조주라고 고백하는 이들은 생명을 풍성하게 하는 일에 헌신해야 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것도 우연히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우리가 그 쓰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내가 그 쓸모를 모른다고 하여 함부로 대하면 안 됩니다. 또 쓸모로 세상을 평가하는 세상이 건강하다 할 수도 없습니다. 있음 그 자체로 사람들의 영혼을 굳게 붙들어주는 것들이 있습니다. 하늘과 산과 바다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상기시켜줍니다. 그래서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주님,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은 하늘에 가득 차 있고, 주님의 미쁘심은 궁창에 사무쳐 있습니다. 주님의 의로우심은 우람한 산줄기와 같고, 주님의 공평하심은 깊고 깊은 심연과도 같습니다. 주님, 주님은 사람과 짐승을 똑같이 돌보십니다.“(시36:5-6)

잃어버린 양을 찾아나서는 것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오늘의 교회는 무엇을 잃어버렸을까요?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에 대한 경탄의 마음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요? 인간의 욕망에 복무하는 순간 교회는 타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우상에게 마음이 팔린 사람들을 보고 아파했습니다. 종교조차 사람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지 못할 때 성전은 성전이 아니라 강도들의 굴혈로 변하는 법입니다. 기독교가 역사를 이끌기보다는 역사 발전의 장애물이 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통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영광이 머물러 있던 그룹에서 떠올라 성전 문지방으로 옮겨가는 것을 보았습니다(겔9:3).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성전은 더 이상 성전이 아닙니다. 정신은 무너지고 형해만 남은 성전은 짓다 만 건물처럼 스산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오늘 세상의 추문거리로 변한 한국 교회가 그런 것은 아닌지 아프게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끈질깁니다. 우리가 사랑받을 만하기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사랑을 심으시고 사랑하십니다. 주님은 시련의 시간을 보내는 백성들을 긍휼히 여기십니다. 죄로 인하여 세상 도처에 흩어진 백성들을 다시 모으시고, 그들 속에 일치된 마음과 새로운 영을 심어주십니다(겔11:19). 하나님의 영이 있는 곳에서 새로운 삶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영은 일으켜 세우는 힘입니다. 에스겔은 마른 뼈들만 버석거리던 계곡에 하나님의 생기가 불어오자 뼈들이 일어나 하늘 군대가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욕망의 전장에서 경쟁으로 여일이 없던 이들이 서로를 긍휼히 여기기 시작하고, 다른 이들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는 사람이 되는 것도 일종의 부활경험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는 장벽들을 무너뜨리는 강력한 힘입니다. 성령은 우리 마음을 예수님의 마음과 접속시켜줍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예수의 마음으로 이웃을 대합니다.

∙작은 시작을 부끄러워 말라
지금 우리 사회에 절실한 것이 이 마음입니다. 우리 마음이 깨끗이 비워지면, 하나님을 향한 그리움이 절실하면 하나님은 우리 곁에 다가오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사람들 속에 있을 때 땅은 새로워집니다. 에스겔은 정화의 시간이 지난 후에 주님의 영광은 다시 돌아와 성전을 가득 채우는 것을 보았습니다(겔43:5). 어느 순간 에스겔은 성전 문지방 밑에서 물이 솟아 나오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 물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의 오른쪽에서 밑으로 흘러 내려가서, 제단의 남쪽으로 지나갔습니다. 그 물은 처음에는 졸졸졸 솟아나는 것 같았지만 흐르고 흘러 마침내 큰 강을 이루었습니다. 물이 풍족한 강 양안으로 많은 나무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에스겔은 그 물이 흘러 바다로 들어가면 죽은 물이 살아날 것이고, 그 강물이 흘러가는 모든 곳에서는 온갖 생물이 번성하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성전에서 솟아나는 물 이야기는 우리에게 희망은 작은 데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일러줍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부터 솟아나는 물은 가뭄에도 끊이지 않고 흐릅니다. 그 물은 처음에는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기어코 큰 강을 이루게 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작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과 접속되어 있다면 작은 시작을 부끄러워할 것 없습니다. 별 하나는 희미하지만 그 별들이 모여 성단을 이룰 때 어두운 밤하늘을 찬란하게 밝히는 법입니다.

성령의 충만함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작은 헌신과 사랑은 솟구치는 샘물이 되어 이 척박한 땅을 흐르다가 마침내 강물을 이룰 것이고, 그 강물이 닿는 곳마다 생명이 되살아나는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는 이 희망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문제의 크기에 압도되어 아무 일도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그 문제를 잘게 쪼개서 옮길 수 있는 것들부터 옮기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우리의 실천을 통해 이 땅을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주님의 주시는 용기와 희망이 우리 삶에 임하시기를 빕니다. 아멘.

등 록 날 짜 2019년 06월 09일 12시 45분 29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