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52. 불온한 노래
설교자 김기석
본문 눅 1:46-56
설교일시 2018/12/25
오디오파일 s20181225.mp3 [9223 KBy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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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한 노래
눅1:46-56
(2018/12/25, 성탄절)

[그리하여 마리아가 말하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내 마음이 내 구주 하나님을 좋아함은, 그가 이 여종의 비천함을 보살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는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할 것입니다. 힘센 분이 나에게 큰 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름은 거룩하고, 그의 자비하심은, 그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대대로 있을 것입니다. 그는 그 팔로 권능을 행하시고 마음이 교만한 사람들을 흩으셨으니, 제왕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사람을 높이셨습니다. 주린 사람들을 좋은 것으로 배부르게 하시고, 부한 사람들을 빈손으로 떠나보내셨습니다. 그는 자비를 기억하셔서, 자기의 종 이스라엘을 도우셨습니다.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는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토록 있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엘리사벳과 함께 석 달쯤 있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소박한 빛
평화의 주님이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마음을 열고 주님을 맞아들이십시오. 그리고 주님이 주시는 기쁨과 평화와 안식을 누리십시오. 요즘처럼 우울한 시절에 주님의 오심을 마냥 즐거워할 수만은 없다고 말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 말도 일리가 있습니다만 저는 “주님 앞에서 기뻐하면 힘이 생기는 법”(느8:10)이라는 말씀을 꼭 붙들고 싶습니다. 세상의 어둠과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우리 속에 먼저 빛이 있어야 합니다. 명랑하지 않으면 우울에 빠집니다. 주님은 지금 빛으로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그 빛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을만큼 화려한 빛이 아닙니다. 소박하기에 눈에 띄지 않을 수도 있는 빛입니다. 하늘의 징조에 예민한 사람들만 볼 수 있는 빛입니다. 말구유에 그 빛이 계심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가짜 빛에 속아 방황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마치 환하게 밝혀진 집어등을 보고 몰려드는 물고기처럼 허망한 것들에 속아 생명을 탕진하는 이들이 참 많습니다. 소비주의의 낙원은 휘황찬란하지만 그 속에서는 인간적인 따스함이나 눈물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사람들을 현혹하는 거짓 종교는 따뜻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참여하는 이들의 시민적 삶을 황폐하게 만듭니다.

주님은 연약하기에 오랫동안 돌봄을 받아야 할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로마의 강한 군대가 아니라, 구유에 누이신 분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사실은 신비 그 자체입니다. 무정한 세상은 연약한 자들을 짓밟기도 합니다. 하지만 연약함 앞에 설 때마다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자비의 마음이 일깨워지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아주 오래 전에 보았던 드라마 ‘두 얼굴의 사나이’가 떠오릅니다. 어떤 자극을 받으면 근육이 터질 듯 솟아올라 괴물처럼 변하는 사람 이야기입니다. 그는 분노심에 가득 차서 악인들에게 가차 없는 폭력을 행사하지만 아이들이나 조그마한 꽃 앞에서 양순하게 변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성탄을 기뻐하는 이들은 이제 구유에 누이신 아기 예수의 품이 되어 드릴 결심을 해야 합니다. 주님이 가져오신 구원이 기쁨, 주님의 가르치심, 하나님 나라를 향한 주님의 열정을 가슴에 품고 주님과 함께 성장해가야 합니다. 그분을 우리 가슴에 모실 때 우리 마음에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는 풍랑은 잠잠해지고, 허망한 열정도 스러질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성탄절의 선물입니다.

∙여성들의 노래
오늘 본문은 마리아의 찬가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아기를 잉태하게 될 것이라는 전갈을 받고 주저하던 마리아에게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의 친척인 엘리사벳도 늙어 임신할 수 없었는데,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임신한 지 벌써 여섯 달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마리아는 비로소 용기를 내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입니다. 그 이후에 마리아는 유대 산골에 있는 엘리사벳의 집에 가서 석 달쯤 있다가 집으로 돌아갑니다. 하나님의 깊은 섭리 속에 있는 두 여인, 한 사람은 노인이고 다른 한 사람은 소녀입니다. 그 두 사람이 서로를 격려하고 지지해주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아름답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을 겁니다. 어머니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앞으로 닥쳐올 시련의 시간을 어떻게 견뎌내야 할지, 로마의 식민지 백성으로 살아가는 설움, 성전 체제에 기대 자기 욕심을 채우던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불편한 마음도 나누었을 겁니다. 마음을 나눌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입니다. 함께 있었기에 하나님에 대한 신뢰는 점점 깊어졌습니다.

마리아 찬가는 바로 그런 상황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내 마음이 내 구주 하나님을 좋아함은, 그가 이 여종의 비천함을 보살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는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할 것입니다.”(눅1”46b-48). 당돌하다고 느껴질 만큼 거침없는 말입니다. 더 이상 두려움에 떨던 마리아가 아닙니다. 역사의 주체로 우뚝 선 메시아의 어머니의 모습입니다. 거룩하시고 자비로운 하나님의 숨이 그를 채우자 마리아는 일어선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내용은 매우 전복적입니다.

“그는 그 팔로 권능을 행하시고 마음이 교만한 사람들을 흩으셨으니, 제왕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사람을 높이셨습니다. 주린 사람들을 좋은 것으로 배부르게 하시고, 부한 사람들을 빈손으로 떠나 보내셨습니다.”(눅1:51-53)

마리아의 찬가는 기존 질서에 대한 도전/도발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매우 예언자적입니다. 마리아는 하나님께서 교만한 사람들, 남들 위에 군림하면서 거들먹거리는 사람들을 끌어내리고, 비천한 자들을 높이신다고 말합니다. 사실 마리아의 노래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매우 소중한 역할을 감당했던 여성들의 노래와 잇닿아 있습니다. 미리암과 한나와 드보라가 그들입니다.

홍해 바다를 건넌 후에 미리암은 손에 소구를 들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주님을 찬송하여라. 그지없이 높으신 분, 말과 기병을 바다에 던져 넣으셨다“(출15:21). 하나님이 뜻하시면 말과 기병도 무용지물이라는 것입니다. 강력한 혁명 정신이 이 속에 담겨 있습니다.

한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사무엘을 낳은 후 그를 성소에 데려와 맡기면서 이런 기도를 드립니다. “가난한 사람을 티끌에서 일으키시며 궁핍한 사람을 거름더미에서 들어올리셔서, 귀한 이들과 한자리에 앉게 하시며 영광스러운 자리를 차지하게 하신다. 이 세상을 떠받치고 있는 기초는 모두 주님의 것이다. 그분이 땅덩어리를 기초 위에 올려놓으셨다”(삼상2:8).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들의 살 권리를 되찾아주시는 분이 땅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철 병거 구백 대를 가지고 이십 년 동안 이스라엘을 괴롭힌 가나안 왕 야빈을 물리친 후에 부른 드보라의 노래(삿5장)도 세상을 뒤집어엎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벗이 되어
이 여성들은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비존재 취급을 받고 살았을 겁니다. 여성들은 으레 세상 물정에 어두울 거라는 편견이 지금도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억눌린 자들의 설움과 아픔을 그들보다 더 잘 알아차릴 이들이 누가 있겠습니까? 마리아의 노래는 바닥에서 울려 나온 혁명의 진군가입니다. 그의 태중에 있는 아기는 바로 그 일을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꿈이 빚은 아기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폭력적 방식으로, 누군가를 배제하고 혐오하는 방식으로 세상에 맞서지 않으셨습니다. 폭력의 고리를 끊는 사랑의 위대한 힘을 보여주셨을 뿐입니다.

우리 사회가 참 많이 아픕니다. 400일이 훌쩍 지나도록 굴뚝 위에서 내려오지 못한 해고 노동자들이 있고, 억울하게 죽은 자식들로 인해 비통한 울음을 터뜨리고 있는 어머니들이 많습니다. 세계 도처에서 폭력과 분쟁이 끊이지 않는 세상에서 라헬들의 울음소리가 도처에서 들려옵니다. 난민이 되어 세상을 떠도는 이들이 있습니다. 어쩌면 그들이야말로 지금 우리 시대에 구유에 누인 아기인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욱 세심한 열정으로 예수님을 우리 속에 모셔야 합니다. 연약한 생명을 감싸 안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이 상처받은 이들의 벗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마리아의 노래가 우렁우렁 우리 사회 곳곳에 물결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민족에게만 희망이 있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참된 기쁨을 한껏 누리시고, 그 기쁨의 빛을 이웃들에게 전하는 기쁨 또한 누리시기를 빕니다. 아멘.

등 록 날 짜 2018년 12월 25일 12시 15분 26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