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 이 땅을 보호하소서
설교자 김기석
본문 사 8:5-10
설교일시 2020-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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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을 보호하소서
사8:5-10
(2020/03/08, 사순절 제2주)

[주님께서 또 나에게 말씀하셨다. “이 백성이 고요히 흐르는 실로아 물은 싫어하고,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을 좋아하니, 나 주가, 저 세차게 넘쳐 흐르는 유프라테스 강물 곧 앗시리아 왕과 그의 모든 위력을, 이 백성 위에 뒤덮이게 하겠다. 그 때에 그 물이 온 샛강을 뒤덮고 둑마다 넘쳐서, 유다로 밀려들고, 소용돌이치면서 흘러, 유다를 휩쓸고, 유다의 목에까지 찰 것이다.” 임마누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 하나님께서 날개를 펴셔서 이 땅을 보호하신다. 너희 민족들아! 어디, 전쟁의 함성을 질러 보아라. 패망하고 말 것이다. 먼 나라에서 온 민족들아, 귀를 기울여라. 싸울 준비를 하여라. 그러나 마침내 패망하고 말 것이다. 싸울 준비를 하여라. 그러나 마침내 패망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전략을 세워라. 그러나 마침내 실패하고 말 것이다. 계획을 말해 보아라. 마침내 이루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Stand by Me‘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각지에 흩어져 예배를 드리고 있는 모든 이들과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우리 모두에게 낯선 이런 상황이 조기에 해소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아직은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많은 이들이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가까운 이들과 친밀한 교감을 나눌 수 없다는 사실이 참 고통스럽습니다. 고립감이 사람들을 괴롭힙니다. ‘코로나블루‘라는 말도 나왔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느끼는 우울증을 이르는 말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의도적으로라도 명랑한 기운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미국의 문명비평가인 리 호이나키는 “하느님에게 목소리를 높여 찬양하려면 친근한 이웃이 필요하다“(리 호이나키, <아미쿠스 모르티스>, 부희령 옮김, 삶창, 2016년, p.402)고 말합니다.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평생 교회생활을 삶의 중심에 놓고 살아오신 원로 장로님께서 아주 쓸쓸한 목소리로 교인들의 안부를 물어오실 때마다 짐짓 명랑한 체 응답하곤 했지만 사실 가슴이 좀 뭉클했습니다. 마치 고향을 잃은 것 같은 느낌이신 것 같았습니다. 지금은 함께 모이지 못하지만 우리는 분명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입니다. 신앙 공동체 안에 있을 때 우리는 고립된 존재가 아님을 알게 되고, 슬프고 우울한 시간을 견뎌낼 힘을 얻게 됩니다. 며칠 전 교우 한 분이 동영상을 하나 보내주었습니다. 여러 뮤지션들이 다양한 장소에서 부른 ‘Stand by Me‘라는 곡을 편집한 것이었는데 그 가사와 곡진한 목소리가 마음에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땅거미가 내려 대지가 어둠에 잠기고/오직 달빛만 보이는 어둠일지라도/나는 두렵지 않아/그대가 내 곁에 있어만 준다면//오 내 사랑 내 곁에 있어 주오/당신이 누구이든, 당신이 삶의 어느 지점을 지나고 있든지/곁을 지켜줄 누군가를 필요로 할 거예요/당신이 얼마나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든지/혹은 수많은 친구를 가졌다 해도/곁을 지켜줄 누군가를 필요로 할 거예요/그대여 부디 함께 있어 주오“

어떤 경우에도 곁을 지켜주는 한 사람이 있다면 두려움은 줄어듭니다. 제가 종종 인용하는 고정희 시인의 시 ‘상한 영혼을 위하여’를 기억하시나요? 시인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고통과 설움의 땅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눈물과 비탄을 금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지만 그래도 시인은 희망을 향해 눈을 듭니다.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고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의 시는 그래서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마주 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라고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잊지 마십시오. 지금 인터넷을 통해 예배드리는 우리들이 바로 서로를 향해 내민 마주잡을 손임을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또 다른 동행이 있습니다. 우리와 함께 계신 하나님, 임마누엘 말입니다.

∙신뢰의 위기
오늘 본문은 유다 왕 아하스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시리아 남쪽에서 조금씩 세력을 키워온 앗시리아가 제국주의의 야욕을 품고 침략 전쟁을 벌이자 시리아와 북왕국 이스라엘은 동맹을 맺어 대항하려 했습니다(시리아-에브라임 연합). 그러나 자기들만의 힘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고 생각한 그들은 남왕국 유다도 동맹에 가담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앗시리아로부터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던 유다는 득실을 계산한 끝에 그 불안한 동맹에 가담하기보다는 앗시리아와 선린 관계를 유지하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시리아-에브라임 동맹은 자기들의 배후에 있는 유다가 앗시리아의 손을 잡고 자기들을 칠지도 모른다고 판단하고는 먼저 남왕국 유다를 치기로 작정하고 공격해왔습니다. 주전 734년의 일입니다.

그 소식을 들은 왕과 백성의 마음은 마치 거센 바람 앞에서 요동치는 수풀처럼 흔들렸습니다(사7:2).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보내셔서 그들의 계략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니, 정신을 바짝 차리고 침착하게 행동하라고 일렀지만 왕은 그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공포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삼켜버렸던 것입니다. 시리아-에브라임 연합군은 타다만 부지깽이에 불과하고, 그들의 위협은 기껏해야 부지깽이에서 나오는 연기에 지나지 않으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여도 속절없이 흔들리는 왕의 마음은 진정되지 않았습니다. 연기 때문에 눈이 맵기야 하겠지만 집을 다 태우지는 못한다고 일러주어도 소용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앗시리아에 의존해 난국을 돌파하려는 아하스의 계획을 비웃으십니다. 하나님은 유프라테스 강 건너편에서 빌려 온 면도칼 곧 앗시리아 왕을 시켜서 그들의 머리털과 발털을 미시고, 수염도 밀어 버리실 것(사7:20)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존엄을 제거한다는 뜻입니다. 힘을 숭상하는 나라의 행태를 하나님은 꿰뚫어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필요할 때는 친구처럼 대해주지만, 이익이 엇갈릴 때는 냉혹하게 변하는 게 국제 현실입니다. 하나님은 표징까지 보여주시지만 왕의 마음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대가를 치르는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언약에 충실하지 않은 유다에 실망하셨습니다.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강한 군사력을 보유한 강대국을 더 신뢰했습니다. 그 그릇된 신뢰가 결국은 그들을 파국으로 이끌리라는 것을 그들은 짐작도 못했을 것입니다. 주님은 그것을 강물의 이미지를 통해 설명하십니다.

“이 백성이 고요히 흐르는 실로아 물은 싫어하고,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을 좋아하니, 나 주가 저 세차게 넘쳐 흐르는 유프라테스 강물 곧 앗시리아 왕과 그의 모든 위력을, 이 백성 위에 뒤덮이게 하겠다. 그 때에 그 물이 온 샛강을 뒤덮고 둑마다 넘쳐서, 유다로 밀려들고, 소용돌이치면서 흘러, 유다를 휩쓸고, 유다의 목에까지 찰 것이다.”(사8:6-8)

∙주권은 하나님께 속해 있다
자기 백성들에게 신뢰받지 못하는 하나님의 쓸쓸함이 느껴집니다. ‘고요히 흐르는 실로아 물‘보다 ‘유프라테스 강물’을 더 신뢰하는 이들에게 닥쳐올 것은 예기치 못한 파멸입니다. 실로아 물은 기드론 골짜기 비탈에 있는 기혼샘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흐르는 수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임금의 동산에 물을 공급하는 역할을 했습니다만 그 물줄기는 그리 세차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그 실로아의 물처럼 고요하여 잘 눈에 띄지도 않을 때가 많습니다.

‘고요히 흐르는 실로아 물’과 대비되는 것이 ‘유프라테스 강물’입니다. 학자들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세계 최초의 문명이라 말합니다.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란 고대 그리스어로 ‘두 강 사이의 땅’이라는 뜻입니다. 터키 아나톨리아 고원에서 발원한 물이 서쪽으로 굽이쳐 흐르는 것이 유프라테스강이고 동쪽으로 굽이쳐 흐르는 것이 티그리스 강입니다. ‘큰 하천’이라는 뜻의 유프라테스 강은 장장 2,735킬로미터에 달하고, ‘급류’라는 뜻의 티그리스 강은 1,931킬로미터에 달합니다. 두 강은 평평한 지대를 지나 페르시아만에 이릅니다. 유프라테스 강은 자연제방이 비교적 낮고 홍수가 적어서 문명 발달과 산물 교역에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고, 티그리스 강 역시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습니다(남영우, <땅의 문명>, 문학사상, 2018년, p.102-103 참고).

이 거대한 강을 본 사람들은 요단강이나 실로아 수로가 초라하다고 느꼈을 것이고, 메소포타미아의 선진 문명을 경험한 사람들은 자기들의 문명을 부끄러워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규모에 대한 선망이 있습니다. 크기에 압도되어 자기를 과소평가하는 것은 일종의 변방 의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크기가 아닙니다. 일찍이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요단강은 작은 강에 불과하지만 세례자 요한과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이 탄생했기에 위대한 강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큰 강이라 해도 오염된 물이면 사용할 수 없는 법입니다. 깨끗한 물이라야 마실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크게 되는 것이 아니라 맑아지는 것입니다. 신앙은 커지는 길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맑아지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아하스 왕과 유다 왕실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저버리고 유프라테스 강으로 상징되는 큰 힘에 의지하려 했습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범람한 그 물이 아람과 북왕국 이스라엘을 넘어 유다의 목까지 차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홍수가 나서 범람하는 물을 보셨습니까? 제방이 터지고 물이 밀려올 때는 누구도 그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절망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모래로 바다의 경계를 정해놓으신(렘5:22) 하나님은 제국들의 횡포를 마냥 두고 보시지는 않습니다.

∙무한의 품
이사야는 이 무서운 심판의 예언 속에 희망을 숨겨두었습니다. 그는 이 모든 역사의 큰 변화는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다고 선언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배신해도 하나님은 당신의 신실함을 거두지 않으십니다. 이게 우리가 절망 중에도 낙심하지 않는 까닭입니다. “임마누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 하나님께서 날개를 펴셔서 이 땅을 보호하신다”(사8:8b) 희망은 하나님의 주권에 있습니다. 독일의 신학자 칼 라너는 이런 현실을 너무나 잘 알기에 하나님께 정직하게 고백합니다. “당신 없이는 내가 존재할 수 없는, 그런 분이 바로 당신이십니다. 유한한 존재인 내가 깃들어 살 수 있는 곳, 그 무한의 품이 바로 당신이십니다.” 하나님은 제 힘만 믿고 날뛰는 민족들과 맞서십니다. 그들이 아무리 정교한 전략을 세운다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결국 제 꾀에 넘어가 패망하고 말 것입니다.

노자는 도덕경 76장에서 사람이 살아 있으면 부드럽고 약하다가 죽으면 단단하고 강해지며, 초목은 살아 있으면 부드럽고 연하다가 죽으면 바싹 말라 단단해진다고 말하면서 “단단하고 강한 것은 죽음의 무리요 부드럽고 약한 것은 삶의 무리”(故堅剛者死之徒 柔弱者生之徒)라고 가르쳤습니다. 고요하게 흐르는 실로아의 수로와 거세게 흐르는 유프라테스의 큰 물 이야기도 동일한 교훈입니다. 굳어지면 꺾입니다. 지나치게 커지면 자체의 모순 속에서 무너집니다. 사상도 그렇고 종교도 그렇습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 삶이 얼마나 허약한 토대 위에 세워졌는지를 절감했습니다. 가장 작은 것들이 우리 삶을 뒤흔들자 세계가 멈춰 선 것처럼 보입니다. 이 일순 정지는 우리 삶을 돌아볼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너무 오만하게, 방만하게 살지는 않았는지, 제 욕심을 추구하느라 사회적 약자들에게 너무 무정하지는 않았는지, 크기와 속도를 추구하느라 인간다움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자꾸 반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학자들은 이런 바이러스의 역습은 환경파괴와 기후변화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인간의 개발과 파괴로 인해 서식지를 잃은 야생동물들이 인간 사회 가까이 접근하면서, 동물들 속에 머물고 있던 바이러스가 인체로 건너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실 것을 믿지만,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동행이 되어 주시는 것처럼 우리 또한 우리 이웃의 설 땅이 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보전하는 일에 매진해야 합니다. 이것은 거룩한 과제입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의 손과 발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애쓸 때 하나님은 우리 곁을 지켜주실 것이고, 이 땅을 보호하실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우리의 삶과 실천 위에 임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등 록 날 짜 2020년 03월 08일 11시 10분 07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