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35. 그 밤의 어둠 속에서
설교자 김기석
본문 행 16:25-34
설교일시 2021-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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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밤의 어둠 속에서
행 16:25-34
(2021/08/29, 성령 강림 후 제14주)

[한밤쯤 되어서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죄수들이 듣고 있었다. 그 때에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서, 감옥의 터전이 흔들렸다. 그리고 곧 문이 모두 열리고, 모든 죄수의 수갑이며 차꼬가 풀렸다. 간수가 잠에서 깨어서,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는, 죄수들이 달아난 줄로 알고, 검을 빼어서 자결하려고 하였다. 그 때에 바울이 큰소리로 "그대는 스스로 몸을 해치지 마시오. 우리가 모두 그대로 있소" 하고 외쳤다. 간수는 등불을 달라고 해서, 들고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면서,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렸다. 그리고 그들을 바깥으로 데리고 나가서 물었다. "두 분 사도님,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그들이 대답하였다. "주 예수를 믿으시오. 그리하면 그대와 그대의 집안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간수와 그의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들려주었다. 그 밤 그 시각에, 간수는 그들을 데려다가, 상처를 씻어 주었다. 그리고 그와 온 가족이 그 자리에서 세례를 받았다. 간수는 그들을 자기 집으로 데려다가 음식을 대접하였다. 그는 하나님을 믿게 된 것을 온 가족과 함께 기뻐하였다.]

• 경계를 넘어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가운데 임하시기를 빕니다. 장마처럼 사람을 지치게 하는 답답한 현실 가운데 모처럼 마음 따뜻해지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인들을 돕다가 탈레반의 재등장으로 위기에 처한 이들 391명이 대한민국 땅을 밟았습니다. 영유아가 포함된 인원입니다. 당국은 그들을 이송하는 작전명을 ‘미라클’이라 했고, 정말 말 그대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준비 또한 철저했습니다. 영·유아 인원을 미리 파악하여 필요한 우유와 분유, 그리고 기저귀까지 준비했고, 낯설어 할 아이들에게 줄 인형까지 준비했습니다. 정말 섬세한 마음 씀입니다. 이 모든 과정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데 저도 잘 아는 분이 깊이 관여했다는 소식을 듣고 더욱 기뻤습니다. 난민 지위가 아니라 특별기여자로 받아들였지만 그분들이 감내해야 할 정착생활의 어려움이 클 겁니다. 언어에도 적응해야 하고, 문화에도 적응해야 하니 말입니다. 부디 그분들이 이 땅에서 행복할 수 있기를 빕니다.

삶은 가끔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우리를 이끌어 가기도 합니다. 머릿속에 그리던 생의 경로에서 벗어나 새로운 영역으로 들어가야 할 때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누구나 당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거기 적응하며 살아야 하는 게 인생입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을 만나 고향을 떠나야 했고, 모세는 떨기나무 불꽃 속에 임한 하나님을 만난 후 한갓진 목자의 삶을 버리고 출애굽을 이끄는 지도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갈릴리의 어부들은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 운동에 동참했고, 바울은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 부활하신 주님과 만난 후 박해자에서 박해받는 사람으로 변합니다. 특별한 사람들만 그런 게 아닙니다. 예기치 않은 질병이나 사건이 우리 인생의 행로를 바꾸게 만들 때도 있습니다.

소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던 바울도 낯선 경험을 했습니다. 애초에는 지금의 터키 서북부 지역인 비두니아로 들어가 복음을 전하려 했지만 예수의 영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일행이 해안지대인 드로아에 이르렀을 때 바울은 환상 가운데서 한 마케도니아 사람의 요청을 받았습니다. “마케도니아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주십시오”(행16:9). 바울 일행은 그것을 하나님의 부름으로 듣고는 곧장 배를 타고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를 거쳐 빌립보에 이르렀습니다. 유럽 선교의 전초지기인 셈입니다. 빌립보에서 바울은 두아디라 출신의 자색 옷감 장수 루디아를 만났습니다. 루디아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마음으로 영접하고는 온 집안 식구와 함께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바울 일행을 자기 집에 초대했습니다. “나를 주님의 신도로 여기시면, 우리 집에 오셔서 묵으십시오”(행16:15). 유럽은 바울에게도 낯선 땅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그곳으로 부르시면서 조력자를 예비해 두셨던 것입니다.

• 복음이 일으키는 위기
바울은 루디아의 집에 머물며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기도하는 곳으로 이동할 때마다 귀신 들려 점을 치는 여종과 마주쳤습니다. 신통력을 인정받았던지 그는 주인에게 큰 돈벌이를 하게 해주었습니다. 그 여인은 바울 일행을 볼 때마다 콘소리로 외쳤습니다.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들인데, 여러분에게 구원의 길을 전하고 있다”(행16:17). 영은 영을 알아봅니다. 이런 일이 여러 날 반복되자 바울은 그 귀신에게 명령했습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네게 명하니, 이 여자에게서 나오라.”(행16:18). 그 순간 귀신이 나갔습니다. 참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 여종의 주인은 돈벌이의 소망이 끊어지게 된 것을 보고 격렬한 증오심을 드러냅니다. 그는 바울과 실라를 잡아 치안관에게 끌고 가서는 그럴싸한 혐의를 만들어 고발했습니다. 바울과 실라에게 적용된 혐의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이들은 유대 사람들로서 도시를 소란하게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교묘한 인종주의와 낯선 것에 대한 공포심을 자극하려는 것입니다. 둘째, 로마 시민들이 받아들일 수도 없고, 실천할 수도 없는 부당한 풍속을 선전하고 있다는 혐의입니다. 로마 시민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동질성을 깨뜨리려는 위험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선동에 무리가 합세하자, 치안관들은 바울과 실라의 옷을 찢어 벗기고, 매질을 하도록 했습니다. 옷을 찢는다는 것은 그들이 취약한 처지에 있음을 드러내는 것인 동시에 수치심을 안겨주기 위한 것일 겁니다. 바울과 사도는 발에 차꼬를 채인 채 깊은 감방에 갇혔습니다. 사회 혼란을 야기했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이지만, 그 이면에는 돈벌이의 소망이 끊어진 데 대한 분노가 숨어 있습니다. 세상 일이 대체로 이러합니다. 명분과 실제가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말은 이렇게 진실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감추기도 합니다.

귀신에 들린 채 돈벌이의 수단으로 전락한 사람을 고쳐준 대가로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리고 밤이 되었습니다. 매 맞은 상처가 욱신거리고, 비현실적인 사건이 주는 충격에서 헤어나오기 어려웠을 겁니다. 낮은 하나의 눈을 가지고 있지만 밤은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지요? 어둠 속에서 부릅뜬 눈이 자기들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 수도 있었을 겁니다. 과연 이 사태가 어떻게 진행될지 수많은 상념이 스쳐 지나갔을 것입니다. 그 한 밤의 어둠 속에서 바울과 실라는 문득 자기들이 누구에게 속한 사람인지를 떠올렸던 것 같습니다. 육신의 평안이나 영화로움을 얻으려고 예수의 제자가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이제 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살고 계십니다”(갈2:20)라고 고백한 바 있습니다. 서양 속담에 왜 사는지를 아는 사람은 어떻게든 살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두려움이 스러지고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여러 해 전에 로마에 있는 산타 마리아 교회에 들른 적이 있습니다. 교회라고는 하지만 발굴 중인 유적에 가까웠습니다. 사람들은 그 교회가 누가 혹은 사도 바울이 머물던 셋집 위에 세워졌다고 말합니다. 믿거나 말거나입니다. 발굴자들은 그 지하에 있는 한 기둥에 새겨진 라틴어 문장을 발견했습니다. ‘Verbum Dei non est alligatum’. 디모데후서 2장 9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느니라”라는 구절입니다. 사도 일행은 비록 갇혀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갇힐 수도 매일 수도 없다는 확신이 들자 그들의 입에서 저절로 찬미 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 어둠 속에서 영원한 빛을 바라보다
그들이 부른 찬양이 궁금합니다. 마음을 다해 부르는 찬송은 힘이 있습니다. 어쩌면 그들의 마음은 조은아, 신상우 님이 만든 ‘하나님의 은혜’라는 노래 속에 다 담겨 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나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나를 보내신 이도 하나님/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라/나의 달려갈 길 다 가도록/나의 마지막 호흡 다하도록/나로 그 십자가 품게 하시니/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한량없는 은혜, 갚을 길 없는 은혜/내 삶을 에워싸는 하나님의 은혜/나 주저함 없이 그 땅을 밟음도/나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

이 가사를 옮겨 적는데도 가슴 뭉클한 감동이 몰려왔습니다. 이런 노래가 가슴 깊은 곳에서 솟구쳐 나오는 이들을 누가 감히 흔들어 놓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어둠 속에 있을 때 우리를 찬송으로 채우십니다(시42:8).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연인이었던 루 살로메에게 헌정한 시도시집(時禱詩集, Das Stunden-Buch)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내 눈빛을 꺼주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
내 귀를 막아주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발이 없어도 당신에게 갈 수 있고,
입이 없어도 당신의 이름을 부를 수 있습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기도 시집>, 김재형 옮김, 세계사, p.90)

이 시가 말하는 ‘당신’은 루 살로메일 수도 있지만 하나님일 수도 있습니다. 눈빛을 꺼도 볼 수 있고, 귀를 막아도 들을 수 있고, 발이 없어도 갈 수 있고, 입이 없어도 부를 수 있는 지경은 대체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랑뿐입니다. 한 밤의 어둠 속에서 바울과 실라가 불렀던 노래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 고백이었을 겁니다. 그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 터전이 흔들릴 때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났고, 감옥의 터전이 흔들렸습니다. 그리고 문이 열리고, 모든 죄수의 수갑이며 차꼬가 다 풀렸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간수는 죄수들이 다 달아난 줄 알고 자결하려 했습니다. 그 때에 바울이 큰소리로 “그대는 스스로 몸을 해치지 마시오. 우리가 모두 그대로 있소” 하고 외쳤습니다. 등불을 들고 감옥에 들어간 간수는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렸습니다. 이 때 간수가 느낀 것은 안도감이 아니라 낯선 두려움이었을 겁니다. ‘이때다’ 하고 바람처럼 달아난 줄 알았던 죄수들이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뿐 아니라, 자살하려는 자기를 만류했습니다. 그는 뭔가 새로운 세계가 자기 앞에 열리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는 마치 모세가 불붙은 떨기나무 아래 신을 벗고 엎드린 것처럼, 고기잡이 이적을 경험한 베드로가 주님 발 앞에 엎드렸던 것처럼 엎드렸습니다. 삶의 토대가 흔들릴 때 우리는 어지러움을 느낍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그러나 토대가 흔들릴 때는 더 큰 세계로의 문이 열리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위기라는 뜻의 영어 단어 ‘crisis’는 라틴어 크리시스에서 온 말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는 의학용어였다고 합니다. 크리시스란 질병의 전개에 있어서 환자의 회복과 죽음을 결정짓는 중요한 전환점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이 단어의 뿌리는 그리스어 ‘krinein’인데 ‘중요한 결정을 내리다’라는 뜻입니다(배철현의 월요 묵상, NEWS1, 2020/03/02 컬럼 참고). 위기를 기회라 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간수가 죄수들을 다시 차꼬에 채워 감옥에 가뒀다면 그는 이전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게 되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는 바울과 실라를 감옥 밖으로 데리고 나갔고 매우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두 분 사도님,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주 예수를 믿으시오. 그리하면 그대와 그대의 집안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마치 세례 문답처럼 들립니다. 단순하지만 명확한 답입니다.

그 간수는 사도 일행에게서 진정한 자유인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자기를 세상의 중심에 놓고 사고하지 않는 사람들 말입니다. 바울의 말이 큰 울림이 되어 다가옵니다.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몸이지만,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고전9:19). 이 고백은 조금의 거짓도 없는 진실입니다.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모든 사람의 종이 되기로 작정한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인이 아니겠습니까? 찬송가 336장 2절 가사가 떠오릅니다. “옥중에 매인 성도나 양심은 자유 얻었네 우리도 고난 받으면 죽어도 영광 되도다 성도의 신앙 따라서 죽도록 충성하겠네”.

바울과 실라는 그 밤에 간수와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 간수는 그들을 데려다가 상처를 씻어 주었고, 온 가족과 더불어 세례를 받았습니다. 또 그들을 자기 집으로 모셔다가 음식을 대접하였습니다. 믿음 안에서 그들은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빌립보에서 일어난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성령의 만류, 환상 중에 들려온 마케도니아 사람의 초대, 루디아, 귀신에 들려 점치던 여종, 매 맞음과 감옥, 지진, 그리고 간수 가족의 변화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 속에 하나님의 세밀한 은총이 스며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살다 보면 캄캄한 어둠이 찾아와 확고하게 우리를 감쌀 때가 있습니다.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스럽지만 그 어둠 속에서도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어디로 이끄시든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합니다. 고난 중에 부르는 찬송은 힘이 있습니다. 이 확고한 믿음으로 일상의 기적을 만드는 우리가 되기를 빕니다. 아멘.

등 록 날 짜 2021년 08월 29일 10시 54분 24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