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41. 함께여서 좋은 사람들
설교자 김기석
본문 롬1:8-12
설교일시 2017/10/15
오디오파일 s20171015.mp3 [10 KBy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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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여서 좋은 사람들
롬1:8-12
(2017/10/15, 창조절 제7주, 전 교인 가을 나들이)

[나는 먼저 여러분 모두의 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믿음에 대한 소문이 온 세상에 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그 아들의 복음을 전하는 일로 충심으로 섬기는 분이시기에, 내 마음 속을 알고 계십니다. 나는 기도할 때마다, 언제나 여러분을 생각하며,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의 뜻으로 여러분에게로 갈 수 있는 좋은 길이 열리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내가 여러분을 간절히 보고 싶어하는 것은, 내가 여러분에게 신령한 은사를 좀 나누어 주어, 여러분을 굳세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여러분과 함께 지내면서, 여러분과 내가 서로의 믿음으로 서로 격려를 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 서성인다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가운데 임하시기를 빕니다. 한로寒露를 지나 상강霜降을 향해 가는 계절이 참 아름답습니다. 산과 들도 가을빛을 머금고 있습니다. '무르익다'는 말이 실감나는 나날입니다. 감이 무르익고, 배와 사과가 무르익고, 들판의 벼가 무르익고 있습니다. 왠지 모를 그리움이 우리 가슴에 깃들 때입니다. 시인 나희덕 선생은 가을을 가리켜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 아름다운/단풍잎 같은 사람 하나 만나고 싶어질 때"('가을에 아름다운 사람' 중에서)라고 말했습니다. 평화영성가인 박노해 선생은 '서성인다'라는 시에서 가을이 오면 왠지 창 밖에 누군가 서성이는 것만 같다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막상 문을 열고 나가 보면 아무도 없어 그만 방으로 돌아와 홀로 서성인다는 것입니다. 책상에 앉아 있어도 뭔가 자꾸 서성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슬며시 돌아보지만 아무도 없습니다. 자꾸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그 기척은 대체 뭘까요?

"선듯한 가을바람이 서성이고
맑아진 가을볕이 서성이고
흔들리는 들국화가 서성이고
남몰래 부풀어 오른 씨앗들이 서성이고
가을편지와 떠나간 사랑과 상처 난 꿈들이
자꾸만 서성이는 것 같다

가을이 오면 지나쳐온 이름들이
잊히지 않는 그리운 얼굴들이
자꾸만 내 안에서 서성이는 것만 같다"

야외에 나와보니 뭔가 수런수런 움직이는 것 같은 기척이 느껴지시나요? 일상의 분주함 속에 파묻혀 지낼 때는 감지할 수 없었던 것들이 한가로움 속에서 혹은 고독 속에서 말을 걸어올 때가 있습니다. 가을은 그런 계절인 것 같습니다. 이 계절이 주는 은총을 한껏 누리면서 우리도 자기 나름의 색깔로 무르익어 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은 여전히 잿빛이지만, 그 잿빛 세상을 하늘빛으로 물들이라고 주님은 우리를 불러주셨습니다.

• 믿음의 소문
오늘은 로마서의 첫 부분을 묵상하면서 우리를 당신의 백성으로 삼아주신 주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살펴보려 합니다. 사도 바울이 쓴 서신들은 대개 그가 직접 세운 교회와 교인들을 향해 쓴 것입니다. 로마서만은 예외입니다. 로마 교회는 바울이 세우지 않았습니다. 물론 로마 교회에는 바울 사도가 잘 아는 이들이 꽤 많이 있었습니다. 로마서 16장에 나오는 문안 인사에서 바울이 언급한 사람들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뵈뵈,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 에배네도 등 많은 이들이 로마 교횀 있는 사람에게나, 어리석은 사람에게나 다 빚을 진 사람입니다."(롬1:14) 죄인 중의 괴수인 자기를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전파함으로 그는 그 빚을 조금이라도 갚고 싶어합니다. 빚진 자 의식에는 공로 의식 따위가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바울이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 이야기 외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보다 더 큰 선물은 없습니다.

미국의 탁월한 작가인 리베카 솔닛은 "가끔은 한 사람의 이야기가 더 큰 영역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되어 주기도 한다"(리베카 솔닛, <멀고도 가까운>, 김현우 옮김, 반비, 2017년 5월 22일, p.285)고 말합니다. 누군가의 삶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순간, 우리는 자신을 온통 사로잡고 있는 일상의 무게가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순간 우리를 사로잡고 있던 우울감이 사라지기도 하고, 울혈처럼 우리를 괴롭히던 삶의 무게감이 줄어들기도 합니다. 리베카 솔닛의 책을 번역한 김현우 선생은 바로 그런 것을 일러 성장이라고 말합니다.

"타인의 이야기가 들어올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내 이야기의 일부를 비워 내는 것, 그렇게 타인의 어휘를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며 더 커진 경계 안에서 나를 발견하는 것을 성장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위의 책, p.379, 옮긴이 후기 중)

바울의 이야기는 그의 이야기인 동시에 그리스도 이야기입니다. 두 이야기가 합류하여 구원 이야기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이들 또한 그 이야기에 합류하면서 구세주의 구원 이야기는 점점 풍료로워질 것입니다. 바울은 일방적으로 그들을 가르치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믿음 이야기를 경청함으로 자신도 격려 받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한 교회에 불러주신 까닭은 무엇일까요? 우리를 찾아오신 하나님의 이야기를 함께 나눔으로서, 하나님의 은혜의 깊이와 넓이와 높이를 깨닫고, 인생의 어떤 상황이 닥쳐와도 믿음으로 이겨낼 수 있도록 피차 격려하라는 것이 아닐까요? 하나님이 일하시는 모습은 참 다양합니다. 내가 경험한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라는 오만함을 버리고, 다른 이들의 경험에 귀를 기울일 때 우리 믿음의 지평이 커질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보내는 시간이 그런 아름다운 나눔의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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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날 짜 2018년 09월 18일 09시 46분 30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