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5. 주님, 평화를 주소서
설교자 김기석
본문 사26:1-9
설교일시 2018/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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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평화를 주소서
사26:1-9
(2018/02/04, 주현 후 5주)

[그 날이 오면, 유다 땅에서 이런 노래를 부를 것이다. 우리의 성은 견고하다. 주님께서 친히 성벽과 방어벽이 되셔서 우리를 구원하셨다. 성문들을 열어라. 믿음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가 들어오게 하여라. 주님, 주님께 의지하는 사람들은 늘 한결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니, 그들에게 평화에 평화를 더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너희는 영원토록 주님을 의지하여라. 주 하나님만이 너희를 보호하는 영원한 반석이시다. 주님께서는 교만한 자들을 비천하게 만드신다. 교만한 자들이 사는 견고한 성을 허무신다. 먼지바닥에 폭삭 주저앉게 하신다. 전에 억압받던 사람들이 이제는 무너진 그 성을 밟고 다닌다. 가난한 사람들이 그 성을 밟고 다닌다. 주님, 주님께서는 의로운 사람의 길을 곧게 트이게 하십니다. 의로우신 주님, 주님께서는 의로운 사람의 길을 평탄하게 하십니다. 주님, 우리는 주님의 율법을 따르며, 주님께 우리의 희망을 걸겠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사모하고 주님을 기억하겠습니다. 나의 영혼이 밤에 주님을 사모합니다. 나의 마음이 주님을 간절하게 찾습니다. 주님께서 땅을 심판하실 때에,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비로소 의가 무엇인지 배우게 될 것입니다.]

• 올림픽 정신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가운데 임하시기를 빕니다. 오늘이 입춘입니다. 입춘에 김장독 깨진다는 말이 있습니다만, 아직 추위가 물러갈 기미가 없어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봄의 설렘이 우리 삶에 가득하기를 빕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은 봄인가요? 아니면 여전히 겨울인가요? 며칠 전에 나온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연두교서(the State of Union)는 북한에 대한 비난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그러면서 항간에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코피 터트리기 전략(bloody nose strike strategy)이라는 용어가 떠돌고 있습니다. 미국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은밀하게 타격할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북한의 특정 지역을 공격하려는 전략이라고 합니다. 전쟁으로 이어질지도 모를 공포의 시나리오가 우리의 의사와 관계없이 검토되고 있다는 사실에 화가 납니다. 지금 이 나라는 칼바람 앞에 알몸으로 서 있는 형국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번 주 중에 평창 동계 올림픽을 개최합니다. 전 세계의 젊은이들이 모여 갈고 닦아온 실력들을 겨룰 것입니다. 남북 단일팀 구성을 놓고 설왕설래가 많지만, 올림픽 정신이 평화라는 사실은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올림픽은 자신의 가장 완벽한 몸과 정신을 신들에게 바치는 종교 제전이었다고 합니다. 그들에게 올림픽 우승이란 '가장 훌륭한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하나의 답이었습니다. 따라서 올림픽에서는 승자도 패자도 있을 수 없었습니다. 패자에게 승자는 신들이 준 몸과 정신을 최고의 경지까지 끌어 올린 덕망 있는 존재였고, 승자에게 패자는 자신의 최고 기량을 보여 줄 수 있도록 도와 준 동료였으니 말입니다. 올림픽 기간 동안에는 도시 국가들 사이의 모든 전쟁과 적대 행위가 엄격히 금지되었습니다. 모든 도시 국가들은 선수들과 사절단, 구경꾼들의 안전을 보장해야만 했습니다. 올림픽 기간 동안에는 모든 사형 집행이 금지되고 법적 분쟁도 중단되었습니다. 올림픽은 그리스인들이 자기들의 민족적 동일성과 정체성을 재확인하는 기회였습니다. 이번 올림픽이 이 땅은 물론이고 온 세상에 평화의 봄소식을 전하는 복된 기회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나뉜 것들을 하나로 회복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드리운 차별의 장벽들을 허물어 모든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는 세상을 열기 위해 분투하셨습니다. 믿는 이들은 이러한 주님의 꿈을 든든히 붙들어야 합니다. 이사야는 엄혹한 현실 앞에서 당혹스러워 하는 우리에게 귀한 통찰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 심판의 날
이사야는 오늘 본문의 앞 단락에서 이스라엘과 이방 나라들이 저지른 죄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를 전했습니다. 경고와 회개의 촉구가 중심 주제였습니다. 24장부터 27장까지는 여호와께서 다스리실 세계에 대한 비전을 전합니다. 불의에 가득 찬 현실 세계는 영원히 지속될 수 없습니다.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친히 당신을 대적하는 모든 세력과 신적 존재들을 무찌르신다고 말합니다. 예외는 없습니다.

"주님께서 땅을 텅 비게 하시며, 황폐하게 하시며, 땅의 표면을 뒤엎으시며, 그 주민을 흩으실 것이니, 이 일이 백성과 제사장에게 똑같이 미칠 것이며, 종과 그 주인에게, 하녀와 그 안주인에게, 사는 자와 파는 자에게, 빌려 주는 자와 빌리는 자에게, 이자를 받는 자와 이자를 내는 자에게, 똑같이 미칠 것이다."(사24:1)

땅의 현실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된 단어인 '텅 빔'과 '황폐함'은 창조 이전의 혼돈과 연결됩니다. 땅이 이 지경이 된 것은 사람의 죄, 곧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어기고, 법령을 거슬러 영원한 언약(베리트 올람)을 깨뜨렸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언약이 정확히 뭘 가리키는지는 알기 어렵습니다. 다만 율법 전체 속에 울리고 있는 생명 아낌, 약자 보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사야는 세상이 황폐하게 변하게 된 까닭은 땅에 스며든 사람들의 피 때문(사26:21)이라고 말합니다. 생명을 아끼지 않는 문화, 정책, 종교, 나라는 내세우는 명분이 어떠하든 모두 하나님을 적으로 돌리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그 결과 땅이 메마르고 시들 것이고, 세상이 생기가 없어 시들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약자들의 살 권리를 존중하지 않는 세상이야말로 메마른 세상, 생명의 기운이 시든 세상, 곧 심판을 앞둔 세상이 아니겠습니까. 타락한 세상, 음란한 세상, 약자들에 대한 폭력이 일상화된 세상에 저항하는 것은 하나님께 속한 이들의 의무입니다. 서지현 검사가 검찰 내에 만연한 성추행을 폭로 하면서 세상이 들끓고 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 여성들이 겪어야 했던 여러 가지 차별, 남성들 특히 직장 상사들에 의해 관행적으로 저질러졌던 성추행이나 성희롱 등이 커다란 범죄라는 인식이 조금씩 확산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이 땅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남자들은 알아차리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여성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어두운 밤거리를 걷다가 앞에서 걸어가는 여성이 보이면 일부러 먼 길을 우회하거나, 발걸음을 늦추거나, 그도 여의치 않으면 '앞서 가겠습니다' 하고 말하고는 재빨리 앞으로 나갑니다. 뒤에서 느껴지는 기척이 공포스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여성들이 느끼는 공포가 짐작되어 괜히 미안해지곤 합니다. 좋은 세상은 아낌과 존중이 특별한 사람들의 덕행이 아니라 모든 이들의 상식이 되는 상입니다.

교회는 강자들이 저질러온 잘못들을 깨끗이 빨아주는 자동세탁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시인 최승호는 타락한 교회의 모습을 이렇게 폭로합니다. "주일(主日)이면/꿍쳐둔 속옷 같은 죄들을 안고/멋진 옷차림으로 간편한 세탁기 같은 교회에/속죄하러 몰려가는 양(羊)들./세탁비를 받으라, 성직자여/때 밀어 달라고 밀려드는 게으른 양떼에게/말하라, 너희 때를 이젠 너희가 씻고/속옷도 좀 손수 빨아 입으라고./제 몸 씻을 새 없는 성자(聖者)들이 불쌍하다."(<얼음의 자서전>[세계사, 2005] 중에 나오는 '때밀이 수건' 중에서) 교회는 자동 세탁기가 아닙니다. 우리가 땅에서 저지른 죄를 간편하게 교회로 가져가 말끔하게 해결하려 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 피난처와 그늘
하나님은 사람들로 하여금 억울한 피를 흘리게 하고, 다른 이들을 존엄한 인간 혹은 살고자 하는 생명으로 여기지 않는 일체의 권세를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참으로 주님께서는 가난한 사람들의 요새이시며, 곤경에 빠진 불쌍한 사람들의 요새이시며, 폭풍우를 피할 피난처이시며, 뙤약볕을 막는 그늘이십니다."(사25:4)

하나님은 가난한 사람들과 곤경에 빠진 사람들의 요새이십니다. 그리고 '폭풍우'로 상징되는 포악한 자들의 폭력으로부터 사람들을 지켜주시고, '뙤약볕'으로 상징되는 곤경에 빠진 이들을 회복시키는 서늘한 그늘이십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굳건히 의지하는 사람들, 곧 한결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지키시는 '성벽'과 '방어벽'이 되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이들이 해야 할 일은 문을 열고 "믿음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가 들어오게"(26:2) 하는 것입니다.

믿음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요?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 시에나의 옛 시청사 건물 벽면에는 암브로지오 로렌제티(Ambrogio Lorenzetti, 1290-1348)가 그린 대작 두 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좋은 정부의 알레고리Allegory of the Good Government'이고 다른 하나는 '나쁜 정부의 알레고리Allegory of the Bad Government'입니다. 시청사에 그런 그림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흥미롭습니다. 정책을 결정하는 이들은 그 그림을 보면서 뭔가 마음가짐을 새롭게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좋은 정부'를 묘사한 부분에서는 통치자의 머리 위에 세 인물이 배치되어 있는데 그들은 '믿음', '소망', '사랑'을 상징합니다. 통치자 옆에는 여섯 사람이 줄지어 앉아 있는데 그들은 통치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인 정의, 용기, 절제, 지혜, 관대, 평화를 나타냅니다. 그 오른쪽 벽면에는 그런 좋은 정부를 가진 시민적 삶의 풍요로움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도시에서는 교역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직인들은 즐겁게 일하고, 악기를 손에 든 여인들과 손을 잡은 채 빙빙 돌며 춤을 추는 여인들의 모습도 보입니다. 여인들의 모습은 매우 다채로우면서도 감각적이어서 그 춤판에 슬쩍 끼어들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농촌 지역 역시 평화롭습니다. 올리브나무를 재배하는 사람들, 가축들을 끌고 가는 사람들, 수확한 것을 저장하거나 교역하는 사람들 모두 활기차 보입니다. 도시와 농촌은 어느 곳 하나 소외됨 없이 각자에게 주어진 일을 감당하며 아름답게 소통하고 있습니다.

반면 왼쪽 벽면에 있는 '악한 정부'를 표현한 그림에는 뿔이 난 통치자 머리 위에는 교만 허영 인색함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의 옆에는 잔인함, 기만, 사기, 분노, 배반, 전쟁 등의 악덕을 상징하는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그 때문일까요? 그림이 많이 훼손되기는 했지만 그들이 지배하는 세상 역시 황폐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사람들은 갈등 속에 빠져 있고, 집들은 퇴락하고, 농촌 지역 역시 활기가 없습니다. 앞서 인용한 말씀대로 생기가 없어 시들어버린 세상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열어주시려는 세상은 물론 암브로지오의 그림 가운데 '좋은 정부'에 속한 세상일 겁니다. 주님은 당신에게 마음을 비끌어 맨 사람들에게 평화에 평화를 더하여 주시고, 의로운 사람의 길을 곧게 트이게 하시지만, 교만한 자들은 비천하게 만드시고, 교만한 자들이 사는 견고한 성을 허무십니다. 이런 확신이 있기에 이사야는 스스로 다짐하듯 말합니다.

"주님, 우리는 주님의 율법을 따르며, 주님께 우리의 희망을 걸겠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사모하고 주님을 기억하겠습니다. 나의 영혼이 밤에 주님을 사모합니다. 나의 마음이 주님을 간절하게 찾습니다. 주님께서 땅을 심판하실 때에,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비로소 의가 무엇인지 배우게 될 것입니다."(26:8-9)

희망도 기억도 능동적인 행위입니다. 희망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세상을 이루려는 열망과 헌신 속에서 싹이 트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디에 희망을 걸고 살고 있습니까? 강대국의 군사력입니까?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정의와 공의라는 주춧돌 위에 세상 질서를 세우신 하나님만이 우리 희망의 근거이십니다. 평화가 위태로운 시대일수록 주님의 마음을 간절히 찾는 이들이 필요합니다. 또한 절망의 어둠이 쓰나미처럼 몰려올 때라도 주님이 세상을 다스린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지금이야말로 주님의 의를 배울 때입니다. 전쟁의 위협이 일상이 된 세계에서 믿는 이들의 책임은 믿음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가 들어오게 하는 것입니다. 출구가 보이지 않아도 낙심하지 말 것이며, 불의와 폭력에 맞서 저항하는 것이 창조적인 삶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겨울과 봄의 갈림길에 선 이 계절, 우리 모두 생명의 봄소식이 될 수 있기를 빕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친히 이 나라를 세상 평화의 전초로 삼아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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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날 짜 2018년 09월 18일 09시 47분 01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