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23. 일어선 사람들
설교자 김기석
본문 행 2:37-42
설교일시 2017/06/04
오디오파일 s20170604.mp3 [8682 KBy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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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선 사람들
행 2:37-42
(2017/06/04, 성령강림절)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이 찔려서 "형제들이여,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말하였다.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 각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용서를 받으십시오.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이 약속은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와 또 멀리 떨어져 있는 모든 사람, 곧 우리 주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사람에게 주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 밖에도 많은 말로 증언하고, 비뚤어진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고 그들에게 권하였다. 그의 말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세례를 받았다. 이렇게 해서, 그 날에 신도의 수가 약 삼천 명이나 늘어났다.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에 몰두하며, 서로 사귀는 일과 빵을 떼는 일과 기도에 힘썼다.]

• 상한 마음에 임한 성령
주님의 은총과 평화를 빕니다. 성령강림절인 오늘 성령의 단비가 우리 마음에 그리고 이 척박한 역사 위에 내리시기를 빕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려라"(행1:4)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약속은 곧 성령의 세례입니다. 주님이 승천하신 후 제자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자기들이 묵고 있던 다락방에 들어가 한 마음으로 기도에 힘썼습니다. 함께 모여 기도하는 동시에 그들은 예수님과 더불어 지냈던 시간을 반추해 보았을 겁니다. 아름다운 존재는 그가 떠나고 난 후에야 그 빈 자리가 크게 느껴지는 법입니다. 갈릴리 온 땅을 걸어다니며 병든 사람을 고쳐주고, 귀신을 내쫓고, 배고픈 사람들을 먹이고, 소외된 이들의 벗이 되어 주었지만, 그들은 그 모든 일을 가능하게 했던 주님의 존재에 대해서는 청맹과니에 불과했습니다. 주님이 떠나신 후에야 비로소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었음을 절감했습니다. 깨달음은 늘 뒤늦게 찾아옵니다.

자책과 부끄러움이 강물이 되어 그들을 사로잡았을 것입니다. 위기 앞에서 주님을 버리고 떠났던 자기들의 비겁한 모습이 떠올라 가슴을 쳤을 것입니다. 성령이 강림한 것은 바로 그때였습니다. 브루더호프 공동체의 장로였던 하인리히 아놀드는 "성령은 물과 같아서 가장 낮은 곳을 찾는다"고 말했습니다(Heinrich Arnold, , plough, 2011, p.277). 가장 낮은 곳은 어디입니까? 상한 마음, 겸비한 마음입니다. 성령은 제자들의 상한 마음을 위로하고, 감싸안고, 일으켜 세우는 강력한 힘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렇기에 오순절은 제자들의 '영적인 부활절'입니다. 성령의 강림과 함께 그들은 일어선 사람이 되었습니다. 두려움과 의구심 속에 웅크리고 있던 어둠의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사도들은 골방문을 박차고 나가 세상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담대하게 예수의 이름을 전했습니다.

"여러분은 그를 무법자들의 손을 빌어서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서 살리셨습니다. 그가 죽음의 세력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행2:23b-24)

성령은 예수가 누구인지를 알게 해줍니다. 성령의 도우심 없이는 아무도 예수를 주님이라 고백할 수 없습니다. 성령을 체험한 사람들은 예수의 마음과 깊은 일치를 경험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겪는 모든 아픔을 당신과 무관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신 주님, 연약하고 무지한 이들을 못났다 책망하지 않으시고 그대로 받아 안으신 주님의 마음이 우리 속에 유입되는 것은 그야말로 은총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다른 이들 앞에서 젠체하지 않습니다. 겸허하게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하기 위해 애쓸 뿐입니다.

• 예수의 운명과의 일치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마음에 큰 찔림을 받았습니다. 그의 말은 더 이상 자연인 베드로의 말이 아니었습니다. 에너지로 가득한 말, 곧 사건을 일으키는 말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애써 보지 않으려 했던 자기들의 모습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더럽고, 추하고, 탐욕스러운 자기들의 모습을 보며 그들은 탄식하듯 물었습니다. "형제들이여,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이 질문이야말로 구원의 서곡입니다. 베드로는 서슴없이 대답했습니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 각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용서를 받으십시오.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행2:37,38) 조금의 망설임도 없습니다. 암덩어리를 도려내는 의사의 메스처럼 정밀한 말씀입니다. 회개란 우리의 전 존재가 새로워지는 과정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돈과 명예와 권세를 가장 소중한 가치로 여기는 삶과 작별하는 것입니다. 이웃을 경계하고, 미워하고, 배척하던 삶으로부터 돌이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우리가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이 임할 때만 가능한 일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예수와 한 운명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의 눈과 마음으로 세상과 이웃을 대하는 것 말입니다. 그게 참 사람의 길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는 말이 의미하는 바를 확실하게 보여주신 분입니다. 복음서가 증언하고 있는 예수님은 세상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놓은 경계선을 넘나들면서, 만날 수 없었던 사람들이 서로 만나게 하셨고, 차별과 혐오의 세상을 이해와 사랑의 세상으로 바꾸셨습니다. 기독교인은 바로 이런 일을 수행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를 알게 모르게 지배하는 분열의 영을 쫓아내야 합니다. 주님의 영이 우리 속에 임할 때 가능한 일입니다. 예수님은 귀신 들린 사람을 고쳐주신 후에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영을 힘입어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에게 왔다"(마12:28).

• 사랑의 공동체
성령은 하나 되게 하는 영입니다. 성령이 임했을 때 모든 사람들이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을 갈라놓던 경계선은 어느새 사라지고 모두가 정다운 이웃이 되었습니다. 성령은 곧 우리 속에 잠들어 있던 사랑을 깨웁니다. 2016년 미국 서부에 있는 'death vally'에서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몇년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척박하기 이를 데 없는 그 땅에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났기 때문입니다. 마침 그 해에 때맞춰 비가 내렸고, 땅 속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꽃씨들이 발아하여 아름다운 꽃들을 피워낸 것이었습니다. 죽음의 땅처럼 보이던 그곳이 생명을 품고 있었던 것입니다.

얼마 전 우리는 영국 맨체스터 공연장에서 벌어진 폭발 사고 소식을 들었습니다. 많은 사상자가 났고 , 아비규환의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공포에 사로잡힌 채 어딘가로 달아났습니다. 그때 노숙자 몇 사람이 등장해 부상에 신음하고 있는 이들을 도와주었습니다. 그 가운데 '스티브'라는 사람과의 인터뷰를 횃불트리니티 대학의 김진혁 교수가 옮겨놓았습니다. "노숙자이기 때문에 내가 인간의 마음이 없었거나 사람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인간이란 누군가 도움이 필요할 때 가서 도와야 한다는 본능이 있습니다.…만약 제가 그[상처입고 울부짖는] 아이들을 버려두고 그냥 도망쳤다면, 저는 제 자신을 견딜 수 없었을 것입니다"(뉴스앤조이에 실린 서평글 "평화로운 미래 위한 '번영의[?] 신학" 중에서). 저는 그 노숙인의 마음 속에 주님의 영이 함께 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주님의 영은 이렇듯 우리 속에 잠들어 있는 사랑을 일깨웁니다. 제 책상 앞에 놓여있는 성공회대학교 달력 6월 편에는 신영복 선생님의 글귀가 담겨 있습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자기를 뛰어넘는 비약입니다.
모든 사랑은 비약으로 이어지고
비약은 다시 비상으로 날개를 폅니다.

한 사람에 대한 사랑은
그 한 사람에 머물지 않고
그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으로 이어지고
어느새 아름다운 사회와
훌륭한 역사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집니다."

저는 이것이 성령께서 하시는 일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은 자기를 넘어서는 비약이고, 그 비약은 더 큰 사랑을 부르고, 그 사랑에 응답한 이들이 공동체를 이룸으로 사회와 역사가 새로워집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이야말로 교회의 원뿌리입니다. 살아있는 교회는 사람들이 만든 정교한 조직이나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교회는 자신의 상처와 연약함을 인정하고, 동료들을 사랑의 마음으로 품어 안으려는 이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 교회가 바로 그런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를 일으켜 세워주시기를 빕니다. 비겁과 무기력함을 떨치고 일어나 가장 낮은 자리에 서셨던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세상의 중심임을 선언할 수 있기를 빕니다. 아멘.

등 록 날 짜 2017년 06월 04일 10시 55분 23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