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 저 위를 바라보아라
설교자 김기석
본문 사 40:26-31
설교일시 2017/03/05
오디오파일 s20170305.mp3 [9760 KBytes]
목록

저 위를 바라보아라
사40:26-31
(2017/03/05, 사순절 제1주)

[너희는 고개를 들어서, 저 위를 바라보아라. 누가 이 모든 별을 창조하였느냐? 바로 그분께서 천체를 수효를 세어 불러내신다. 그는 능력이 많으시고 힘이 세셔서, 하나하나, 이름을 불러 나오게 하시니, 하나도 빠지는 일이 없다.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불평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불만을 토로하느냐? 어찌하여 "주님께서는 나의 사정을 모르시고, 하나님께서는 나의 정당한 권리를 지켜 주시지 않는다" 하느냐?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너는 듣지 못하였느냐? 주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다. 땅 끝까지 창조하신 분이시다. 그는 피곤을 느끼지 않으시며, 지칠 줄을 모르시며, 그 지혜가 무궁하신 분이시다. 피곤한 사람에게 힘을 주시며, 기운을 잃은 사람에게 기력을 주시는 분이시다. 비록 젊은이들이 피곤하여 지치고, 장정들이 맥없이 비틀거려도, 오직 주님을 소망으로 삼는 사람은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솟아오르듯 올라갈 것이요, 뛰어도 지치지 않으며, 걸어도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

• 우리가 빼앗긴 것
주님의 은총과 평화를 기원합니다. 사순절 첫번째 주일을 맞았습니다. 오늘이 마침 경칩입니다. 봄 기운을 맞아 땅 속에 잠들어 있던 생명들이 깨어나는 때입니다. 생명의 기적은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삶의 속도를 줄이고 가만히 멈춰 그 생명의 신비를 깊이 체감하고 싶지만 세상은 그런 한가함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알베르 카뮈의 말이 떠오릅니다. "동양의 한 현자는 흥미로운 시대에 살지 않도록 자기를 구원해 달라고 신께 기도했다. 우리는 현명하지 못하므로 신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시지 않았고, 그래서 우리는 흥미로운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지금을 흥미로운 시대라 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둘러싸고 벌이는 두 진영의 치열한 공방이 국민들을 갈라놓고, 사드 배치를 둘러싼 한반도 주변 나라의 갈등은 중국의 보복무역으로 가시화되고 있습니다.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때입니다. 절망, 냉소, 폭력, 갈등, 공포가 우리의 의식을 옭죄고 있습니다. 희망은 있는 것일까요?

애덤 스미스는 <도덕 감정론>이라는 책에서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인(selfish) 존재라 하더라도, 그 천성(principles)에는 분명히 이와 상반되는 몇 가지가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이 천성으로 인해 인간의 타인의 운명에 관심을 가지게 되며, 단지 그것을 바라보는 즐거움밖에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타인의 행복을 필요로 한다"(도메 다쿠오, <지금 애덤 스미스를 다시 읽는다>, 우경봉 옮김, 동아시아, 2015년 11월 11일, p.39에서 재인용)는 것이지요. 그는 사회의 구성원들이 사랑과 감사, 우정과 존경의 마음으로 각자에게 필요한 도움을 제공할 때 행복을 누린다고 말합니다. 이 시대는 우리에게서 그런 마음을 빼앗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저항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시대 정신입니다.

• 더 큰 세계에 접속하라
이사야 40장은 제2이사야서가 시작되는 장입니다. 40장 이후의 장들은 주전 8세기가 아니라, 바벨론 포로기와 그 이후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전쟁에서 패배하고, 백성들은 포로로 잡혀가거나 유민이 되어 세상을 떠돌고 있던 상황입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역사 회복의 길은 요원하기만 했습니다. 유배지에서 근근이 생존을 이어가던 유대인 디아스포라는 깊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습니다. 희미한 빛조차 발견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고통 속에서 사람들은 자기들의 처지를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나의 사정을 모르시고, 하나님께서는 나의 정당한 권리를 지켜 주시지 않는다"(27b). 이런 생각은 시시때때로 우리 마음에도 떠오릅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우리 현실이 이렇게도 어지러운가?'하는 원망스런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왜 불의한 자들을 내버려두시는지, 하나님의 심판이 왜 즉각적으로 시행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불퉁거리는 이들이 많습니다.

어지러운 세상을 보노라면 하나님이 무능한 것처럼 느껴져 답답해지기도 합니다. 우리는 모호함이 제거된 분명한 해답을 찾고 싶어합니다. 많은 이들이 이단 종파에 빠지는 것은 그들이 분명한 답을 제시해주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사유의 주체가 될 힘이 없는 이들은 단정적인 언어로 말하는 이들에게 매력을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길의 끝에 남는 것은 허망함과 피폐해진 영혼 뿐입니다. 그들은 사막에서 신기루를 따라가는 사람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인생은 끊임없이 길을 묻고 또 물으며 한 걸음씩 더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해 나아가는 과정입니다. 절망의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이들을 보며 예언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고개를 들어서, 저 위를 바라보아라. 누가 이 모든 별을 창조하였느냐? 바로 그분께서 천체를 수효를 세어 불러내신다. 그는 능력이 많으시고 힘이 세셔서, 하나하나, 이름을 불러 나오게 하시니, 하나도 빠지는 일이 없다"(26)

현실의 어둠에 잠겨 있는 이들을 향해 고개를 들라 말합니다. 그리고 저 위를 바라보라 초대합니다. 찬란하게 빛나는 밤하늘, 그 광대무변한 세상을 잠시 넋을 잃고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지각으로는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저 무한한 세계를 하나님은 질서있게 다스리신다는 것입니다. 그 큰 세계를 바라보는 순간 지금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절망의 어둠 혹은 혼돈은 상대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며칠 전, 이런저런 일들로 마음이 심란하던 차에 FM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제 귀를 사로잡았습니다. 요한 스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이었습니다. 그 유장한 음의 물결에 마음을 싣자 어느결에 심란한 마음은 사라지고 평안한 마음이 찾아왔습니다. 현실은 그대로이지만 현실을 대하는 마음이 달라진 것입니다.

15세기 초엽 라인강 하류의 신비주의 집단에서 그려진 성화 한 장이 제 마음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하늘의 음악을 관장하는 성인 세실리아가 꽃이 만발한 동산에 앉아 아기 예수님께 리라처럼 보이는 현악기를 내밀자, 아기는 조그마한 손가락으로 그 악기를 연주합니다. 동산은 아름다운 음악으로 가득찹니다. 꽃들도 그 소리에 반응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그림은 완전한 세계와 완전한 평화의 상징일 것입니다(요르크 칭크,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강원동 옮김, 현존사, 1989년 12월 25일, p.137-8 참고).

• 기력을 주시는 하나님
시끄러운 세상을 잊고 하늘에만 마음을 집중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가끔은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아야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신비에 눈을 떠야 현실의 어둠에 갇히거나 현실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는 법입니다. 하늘로부터 공급되는 힘을 받지 않고는 절망과 어둠의 세력에 맞서 끈질기게 싸울 수 없습니다. 우리는 가끔 피곤에 지쳐 쓰러지기도 하지만 땅 끝까지 창조하신 하나님은 피곤을 느끼지 않으시며, 지칠 줄 모르시는 분이십니다. 동시에 그 하나님은 "피곤한 사람에게 힘을 주시며, 기운을 잃은 사람에게 기력을 주시는 분"(29)이십니다. 하나님과 늘 접속을 유지하는 사람이라야 명랑함을 잃지 않고 이 거친 세상을 돌파해 나갈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 대한 미움과 증오만으로는 싸움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뜻 안에 머무는 사람만이 궁극적인 승리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저 광대한 세계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숨결에 접속한 이들은 이제 스스로 별이 되어야 합니다. 비록 희미한 빛이라 해도 한숨을 내쉬며 어두운 밤하늘을 바라보는 이들에게는 희망이 되는 법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향해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둔 세상에 작은 등불 하나라도 밝히는 것, 바로 그것이 우리들의 소명입니다. 다니엘의 말이 제게는 큰 도전이자 위로입니다. "지혜 있는 사람은 하늘의 밝은 빛처럼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길로 인도한 사람은 별처럼 영원히 빛날 것이다"(단12:3). 사순절 순례길을 걷는 동안 우리 몸과 마음에 배어든 어둠과 절망이 벗겨지고, 우리 속에 감춰진 빛이 오롯이 드러날 수 있기를 빕니다. 아멘.

등 록 날 짜 2017년 03월 05일 11시 02분 04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