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성서 학당에서 알게 된 내용을 널리 알리기 위해 메모했던 내용들을
정리합니다. 제가 정리를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혼자 알고 있기가 아쉬워서요...
주의 은혜는 나눌수록 풍성해지잖아요...
그러면서 저의 머릿속에서도 다시 한번 되새기며 마음에 담아두려고 합니다.
이번 성서학당을 배우면서 화딱지가 난것은 이렇게 좋은 내용들을 찔끔찔끔 매주목요일에 2시간씩 공부하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욕심 같아서는 합숙훈련 받으며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거든요.
이번 두 번째 강의의 핵심어는 평등 공동체=나눔입니다.
평등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어떻게 인도하셨는지에 대한 성경의 예화와 더불어 지금 현재의 삶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강요가 아닌 감동으로 마무리 해주셨습니다....
애굽에서 하비루(=히브리,민족개념이 아닌 하층계층을 뜻함) 들이 탈출을 감행합니다.
그들은 민족 정체성이 없어서 구심점이 없었는데 야훼 하나님을 구심점으로 탈출합니다.
그들이 꿈꾸웠던 것은 왕이 없는 세상이지요.
애굽에서 그들은 할당량과 강제 노역에 시달렸지요.
야훼 하나님께서는 하비루들에 대해서 우선적으로 관심을 가졌지요.
출애굽기에 보면 그들의 신음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내 백성을 도우시겠다고 하시지요.
밑바닥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살 권리를 회복해 주시려는 하나님의 의도가 있었던 것입니다.
부족이 나중에 국가를 이루고 그 국가가 나중에는 제국이 된다고 합니다.
국가에서 제국으로 갈수록 폭력이 증가.
반대로 제국에서 부족으로 갈수록 협동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꿈꾸웠던 것은 국가를 이루는 것이 아닌 국가를 부정하고 부족주의 형태 즉 평등공동체를 이루려고 했던 것이지요. (사사시대)
그때 당시 사사는 왕과같은 계급이 아니기 때문에 세습을 하지 않았지요.
사사는 일을 마치고는 평상시의 자기 자리로 돌아갔대요.
기드온 이야기는 생략하구요...
정말 평등공동체가 가능한 것인가?
이스라엘 공동체는 그것을 꿈꿨어요.
그 평등 공동체를 깨뜨린 것이 욕심과 탐욕이라고 합니다.
예화로 든것이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만나로 먹이신일.
(만나-광야에 자라는 관목들에 벌레들이 내놓는 진해가 새벽이 되면 기온이 낮아지면서 응고가 되는 것. 맛이 달콤하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에게 만나를 주시면서 한사람이 한 호멜씩 일정한 분량이상을 거두어 들이지 말라고 이야기 하시지요.
만나를 거두어 들일때에 그날, 그날 먹을 만큼만 거두어 들이라고...
굶주린 사람은 더 거두어 들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지요.
만나를 쌓아두면 다 상해서 먹지를 못하지요.
여기서 만나 이야기가 후손에게 전해 주고자 하는 것이 나누어 먹는 이야기.
나눔의 기적이랍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훈련시킨것이 많이 거두어도 남지 않게. 모자라게 거두어도 모자라지 않게... 서로 나누어 먹으니깐요...
나눔의 기적. 이것이 평등 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인 것이지요...
엿새 날에는 이틀 분을 거두어 들이라고 하지요. 안식해야 하기 때문에.
여기서 안식이라는 단어가 세계 어느나라 말로도 번역할 수 없다고 하십니다.
종교적인 모든 언어는 다른 나라 언어로 번역이 가능한데 안식은 오직 히브리어 뿐이라고 하십니다.
<아브라함 죠수아 헤셀>은 안식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시간속의 성소”
성소는 공간적 개념인데, 안식일은 수평적 역사 끝에 있는 것이 아니고 모든 날들에 영향을 주는 날이라고 합니다.
안식일(히브리어;사바트?제대로 쓴건가용??) 은 하나님을 생각하는날..
안식한다는 것은 우리 생의 근본이 무엇인지 돌아보는것이래요.
내 삶이 올바른 삶으로서의 소리를 내기 위해 하나님을 기준음으로 삼고 조율하는것이 안식이다.라고 하십니다.
결국 나눔은 하나님의 신뢰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신앙에 대해, 믿음과 신뢰의 차이에 대해 말씀해 주셨어요..
신앙에서 중요한 것이 성경의 말씀이 사실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그 진실이 무엇이냐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예) 예수님이 물위를 걸으심...
둘중의 하나는 예수님이니깐 걸으셨음이라고.. 회의론자는 말도 안돼..
오병이어도 예수님이시니깐 가능해라고...
사실에 대한 전달이 아니라 그 이야기를 전승해 온 사람들의 그 진실성, 진정성이 중요.
사실의 언어로만 바라보게 될 때 전승되어 내려오는 진실과 의미를 찾을수가 없게됨.
우리는 우리에게 어떤 진실을 알려주고 있느냐로 접근해야 함.
신앙은 고백이고 해석이지 사실관계가 중요한 것은 아님.
만나 이야기에서도 중요한것은 나눌 수 있다는 것.
나눌수 있다는 것은 내일에 대해 염려 하지 않을 때 나눌 수 있음.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배울수 있음.
믿음은 내가 믿습니다. 내가 주님을 믿습니다. 내가 성령님을 믿습니다.
신뢰는 하나님은 나를 어려움속에 홀로 버려두시지 않을 거야. 라는 확신
신뢰의 바탕은 확신.. 신뢰하기에 그분에게 나를 맡길 수 있음.
결론적으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배운것은
1. 나눔. 2. 하나님 신뢰- 오늘을 살아가는 것
사람들은 내일이 불안하기 때문에 불안의 대용물을 만들고 싶어하는 것.
이런 평등 공동체를 배신하는 일이 생김.
이스라엘이 8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여리고성 무너뜨린후 아이성 우습게 여기고 무너뜨릴려고 하다가 패배함. 이유는 아간이 전리품을 챙겨서...
진멸해야 하는 것을 전리품으로 사유화한 것임.
신에게 바치는 방법은 불태워 없애는 방법- 아간이 사유화함.
그 전리품이라는 것이 시날산 털외투, 500세겔의 은, 금을 숨김.
여기서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평등 공동체에서 함께 나누어야 하는데 사유화함으로써 평등공동체의 꿈을 깨뜨림.
사유화는 평등 공동체가 산산조각 나는것.
초대교회 역사에도 그대로 반복. 아나니아와 삽비라.
거짓이 공동체에 들어오게 되면 혼란.... 엄중히 경고하는 의미...
평등 공동체의 이상을 이루는데 개인의 탐욕이 문제임.
늘 구약을 읽으면서 가장 이해가 안되었던 부분이 전쟁시 적군들을 다 진멸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한영혼도 귀히 여기시는 분이 이렇게나 잔인하게...
왤까? 그것의 의문도 오늘 풀렸다.
아간을 말씀하시면서.. 그때 상황을....
그때는 전쟁시 진멸사상이 있었다고 한다.
이당시에는 합리적 상황이 아니었다고 한다. 나라와 나라간에 전쟁이 그 나라를 섬기는 신들의 전쟁과 같았기 때문이다. 두 나라간의 싸움이지만 그당시에는 신과 신의 싸움이었다고 한다. 이긴 신이 승리를 거두면 싹~ 죽여야 했다고 한다.
그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이스라엘 축제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셨다.
사람들이 축제 동참함으로 정체성을 확인한다고 한다.
이스라엘에는 3번의 순례 축제가 있다.
유월절, 칠칠절(오순절), 초막절(수장절, 장막절)
세가지 중 초막절에 대해 말씀해 주심...
초막절이 되면 수카라(숙곳)이라 하는 곳에 초막을 지음.
팔레스타인에서 구할 수 있는 나뭇잎으로 허술하게.. 누우면 하늘이 보일정도로...
일주일 동안 초막에 머물면서 옛날 선조들이 겪었던 이야기를 회상함.
옛 조상들이 평등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어떤 고생을 했는지등.. -민족 대 수양회임.
과거와 현재, 미래가 역사적 연속성의 틀로 아이들에게 각인되는 계기가 됨.
후손들은 조상들의 신산스런 삶을 생각할 뿐 아니라 편안함과 안락함에 길들여져 있는 개인적 정체성을 확인하고 축제에 동참한 모든 사람들이 서로에게 속한 것임을 깨닫게 해줌.
이스라엘은 주후 70년에 로마에 의해 망함.
1948년 이스라엘 국가를 세울때까지는 1900년동안 떠돔.
바로 초막절의 경험이 민족의 정체성을 깨우치게 하는 계기가 됨.
이스라엘이 부유해 졌을 때 이 꿈이 깨어짐.
여로보암 2세, 웃시야때.
제국을 향해 가는것은 인간의 욕망때문.
신앙은 그 반대임.
장❍❍(이름을 미처 메모못함)는 진보에 대해 아래와 같이 이야기함.
‘보듬어 안는 능력이 큰 것이 진보다’
역사도 경쟁에서 뒤쳐진 사람을 다 품어 안을 때 진보다.
아래의 시에 대해 감상하면서 헨리 나우웬의 경험담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마지막 책을 쓰고나서인가? 아버지와 여행을 떠났다고 한다. 나우웬은 아버지와의 관계가 굉장히 불편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여행에서는 불편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나우웬이 자각한것은 아버지가 나를 고치려 하지 않고 나도 아버지를 고치려 하지 않았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덧붙여 말씀해 주시기를 인간관계에서 가장 나쁜것은 사람을 내 방법으로 바꾸려고 하는 것. 그것이 상대방을 더욱 방어적으로 만듬. 내 기준을 가지고 상대방을 바꾸려고 하는 태도 때문에 문제가 발생함.
상대방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일때 모든 관계속에서 평화한다고함.
성서 여행을 떠나기 전에 시를 읽고 마음에 와닿는 구절들을 서로 나눈다.
시인이신 목사님과 함께 시에 푹~~ 빠지는 시간이다...
느티나무와 민들레 (최두석)
간혹 부러 찾는
수백 년 묵은 느티나무 아래
민들레 꽃씨가
앙증맞게 낙하산을 펼치고
바람 타고 나는 걸 보며
나는 얼마나 느티나무를 열망하고
민들레에 소홀하였나 생각한다.
꿀벌의 겨울 잠 깨우던 꽃이
연둣빛 느티나무 잎새 아래
어느 새 꽃씨로 변해 나는
민들레의 일생을 조망하며
사람이 사는데 과연
크고 우람한 일은 무엇이며
작고 가벼운 일은 무엇인가 찾아본다.
느티나무 그늘이 짙어지기 전에
재빨리 꽃 피우고 떠나는
민들레 꽃씨의 비상과
민들레 꽃 필때
짙은 그늘 드리우지 않는 느티나무를 보며
가벼운 미소가 무거운 고뇌와
함께 어울려 사는 모습 떠올린다.
감상) 큰것에만 관심을 가졌고, 작은 것에 관심을 가지지 못한 것을 돌아봄.
많은 감상을 말씀해 주셨는데... 기록이 없슴.. 시를 메모하느라 목사님의 시평을 메모못했슴돠...
순결하고 결백한 마음으로
주님,
하늘의 별처럼 빛나라고
저를 파견하신 당신께 말씀드립니다.
순결하고 결백한 마음으로 당신을 따르게 해주십시오.
큰 것보다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길 수 있는
소박한 마음을 주십시오.
바쁘다고 서둘러대며 사람보다 일을 중요하게 여기던
저의 나날을 뉘우치며 비오니
당신이 지니셨던 그 마음을 제게 주십시오.
가던 길을 멈추시고
아들의 죽음으로 절망에 빠진 과부를 측은히 보시고
그의 아들을 살려내신 주님,
배고픈 이들의 심정ㅇ르 알아주시고
굶주림을 채워주신 주님,
진실한 가르침에 목말라하며 당신을 따라다니던 이들의 약함에
눈물 흘리시던 주님,
저의 돌같이 차가운 심장을 꺼내 주십시오.
저를 귀찮게 하는 답답한 이들에게
핀잔을 주기보다 인내로이 들어주는 여유를 갖게 해주십시오.
고집스러움으로 화나게 만드는 이들에게 분노로 대하기보다
고집 아래 숨어 있는
그의 부드러움을 꺼낼 수 있는 지혜를 주십시오.
무엇보다 당신이 지니셨던 아버지께 대한
철저한 순명의 마음을 저도 지니게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