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을 받으라
김재흥(2026-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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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곧 주간의 첫 날 저녁에, 제자들은 유대 사람들이 무서워서, 문을 모두 닫아걸고 있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와서, 그들 가운데로 들어서셔서,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고 인사말을 하셨다. 이 말씀을 하시고 나서,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보고 기뻐하였다. [예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 이렇게 말씀하신 다음에,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시고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 죄가 용서될 것이요, 용서해 주지 않으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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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신의 계승
좋으신 주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평안과 새롭게 하시는 은혜가 교우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50일 만에, 그리고 승천하신 후 10일 만에 제자들 위에 성령께서 강림하셨음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예수님이 떠나가신 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하던 제자들이 성령강림 이후 예수님께서 하시던 일을 이어감으로 교회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곧 성령강림일은 모든 교회의 생일인 것입니다. 오늘은 성령강림절을 맞아 성령강림의 본 의미를 생각해봄으로 교회를 더욱 교회답게 하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스승의 날이 얼마 전에 지났는데요, 스승과 제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보겠습니다. <스승의 은혜>라는 노래의 가사처럼 스승은 마음의 어버이입니다. 부모님이 우리의 육신을 낳아주신 분이라면 스승은 우리의 정신을 낳아주신 분이십니다. 스승은 스승의 스승으로부터 정신을 이어받아 그 정신을 제자에게 물려주고, 그 제자는 또 누군가의 스승이 되어 그 정신을 물려줍니다. 이런 정신의 계승은 동서고금 모든 인간 사회 속에서 이어져왔고 앞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공자에게는 공문십철孔門十哲이라는 10명의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 중 공자가 가장 사랑하던 제자는 안회였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안회가 요절하고 맙니다. 공자는 만년에 증자라는 제자를 얻었습니다. 증자는 스승의 뜻을 잘 이어받아 <논어> 편찬에 큰 역할을 하였고 <대학>을 저술하게 되었습니다. 달마대사에게는 네 명의 제자가 있었습니다. 임종의 순간 달마는 네 명의 제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나의 피부를 얻었고, 너는 나의 살을 얻었고, 너는 나의 뼈를 얻었고, 너는 나의 골수를 얻었다. 달마의 골수를 얻은 제자 혜가가 달마의 정신을 이어가는 사람이 됩니다. 신기합니다. 스승의 정신이 제자에게 그대로 이어지는 것이. 그 정신을 가지고 살던 스승은 사라지지만 그 정신은 제자에게로 이어지고, 그리고 또 다른 제자에게로 이어집니다.
2. 요한복음의 성령강림
우리는 성령강림하면 사도행전 2장의 말씀을 먼저 떠올립니다. 다락방에 모여 있던 제자들 위에 성령이 불과 바람으로 임하던 장면을. 그런데 요한복음의 성령강림은 좀 다릅니다. 요한복음 20장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모여 있는 가운데 나타나셔서 직접 그들에게 성령을 전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당신의 모습을 보고 놀라는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이라고 말씀하시며 그들의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신 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세상으로 파송하신 것이며,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하던 제자들에게 당신이 하시던 일을 이어가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하시던 일을 이어가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으라.”
예수님으로부터 성령을 받고 세상으로 파송을 받은 제자들은 이후 어떻게 살아갔습니까? 또 한 명의 예수가 되어 예수님께서 하시던 일을 이어갔습니까? 그 뒤의 기록인 요한복음 21장을 보겠습니다. 제자들은 다시 디베랴 바닷가로 돌아갔습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답게 또 한 명의 예수가 되어 예수님이 하시던 일을 이어가기는커녕 옛 생활로 돌아갔습니다. 마치 예수님을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이 되어 고기잡이 생활로 돌아간 것입니다. 그런 제자들을 위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다시 나타나셨습니다. 밤새 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제자들이 많은 고기를 잡게 해 주심으로 제자들로 하여금 처음 예수님을 만났을 때를 기억나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베드로에게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셨습니다. 베드로는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십니다.”라고 답했고, 그렇게 답을 한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는 “내 양 떼를 먹이라.” 부탁하셨습니다. 이 묘하게 긴장감이 흐르는 문답과 부탁이 세 번이나 반복되었습니다. 아주 중요한 의미가 그 안에 담겨 있다는 뜻입니다. 그 뜻은 무엇이었을까요?
3. 성령을 받으라
달마대사는 자신의 정신을 이어받은 제자 혜가에게 자신이 사용하던 밥그릇과 자신이 입던 옷을 물려주었습니다. 밥그릇과 옷을 물려주는 것은 불가에서 정신의 계승을 상징합니다. 밥그릇은 공급, 곧 인풋을 상징합니다. 자신이 삶의 양분으로 삼았던 정신을 제자 또한 양분으로 삼고 살라는 뜻입니다. 옷은 발현, 곧 아웃풋을 상징합니다. 자신이 세상에 드러내었던 정신을 제자 또한 세상에 드러내며 살라는 뜻입니다. 스승으로부터 밥그릇과 옷을 전수받은 제자는 스승이 되어 살아갑니다. 아니 스승이 물려준 정신이 되어 살아갑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양분으로 삼고 사셨습니까? 그리고 예수님은 무엇을 이 세상에 드러내며 사셨습니까? 그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가장 큰 두 계명에 드러나 있습니다. 마태복음 22장 37~39절에 나온 말씀,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예수님의 삶의 공급원, 양분, 인풋은 ‘하나님 사랑’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힘은 ‘하나님 사랑’에서 나온 것입니다. 예수님을 가득 채운 ‘하나님 사랑’은 어떤 모습으로 세상에 발현되었습니까? 그것은 ‘이웃 사랑’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씩이나 물으시고 답을 들으시고 양떼를 먹이라고 부탁하신 이유는 제일 중요한 것, 당신의 정신을 물려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힘으로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었기에 베드로 또한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하신 것입니다. 이후 베드로뿐 아니라 성령강림의 체험을 한 제자들은 모두 그렇게 살아갔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성령을 받았다는 것은 예수님의 정신을 이어간다는 것이며, 예수님이 하시던 일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그 일은 다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그러셨듯이 우리 또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힘을 양분 삼아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물론 성령이 역사하시는 범위는 정신보다 훨씬 큽니다. 그러나 성령은 정신 그 이상의 것이지 정신 이하의 것은 아닙니다. 성령을 받았다며 예수 정신에서 어긋난 일을 행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참 단순합니다. 구약의 수많은 계명에 비하면 너무 빈약해 보일 정도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계명을 지키려 하면 금방 알게 됩니다. 지키기 쉽지 않다는 것을. 왜 그렇습니까? 우리의 습성에 반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 사랑’보다는 ‘자기 사랑’을 양분으로 삼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나, 내 욕망, 내 계획, 내 취향, 내 성취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것이 삶의 동력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우리는 ‘이웃사랑’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계속 ‘자기 사랑’에만 매몰되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 이야기하는 ‘자기 사랑’은 건강한 자기 돌봄이나 자기 존중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자기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기 사랑’을 추구하는 이에게는 스승의 가르침이나 정신의 계승이 필요 없습니다. 그냥 자기의 동물적 본능을 따르면 됩니다. 사람들 모두가 그렇게 ‘자기 사랑’만을 추구할 때 이 세상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의 장이 됩니다. 오늘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세상이 그런 세상이지요.
말씀을 맺겠습니다. 성령을 받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골수를 이어받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그릇된 자기 사랑을 양분으로 삼지 않고, 하나님 사랑을 양분으로 삼고, 그 힘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 위에도 그 성령이 임하셔서, 예수님이 가신 사랑의 길을 이어가는 청파의 교우들과 믿음의 백성이 될 수 있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