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꺼이 먹이려는 사람
김재흥(2026-05-10)
듣기
그들이 먹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빵을 들어서 축복하신 다음에,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고 말씀하셨다. "받아서 먹어라. 이것은 내 몸이다." 또 잔을 들어서 감사 기도를 드리신 다음에, 그들에게 주시고 말씀하셨다. "모두 돌려가며 이 잔을 마셔라. 이것은 죄를 사하여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다.
--------
1. 어버이 주일과 스승의 날
좋으신 주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평안과 새롭게 하시는 은혜가 교우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이며 이번 주중에는 스승의 날이 있습니다. 오늘은 어버이와 스승에 대한 말씀을 나누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어버이에 대한 노래와 스승에 대한 시 한 편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김진호 가수가 부른 <가족사진>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바쁘게 살아온 당신의 젊음에 / 의미를 더해줄 아이가 생기고그날에 찍었던 가족사진 속에 / 설레는 웃음은 빛바래 가지만
어른이 되어서 현실에 던져진 나는 / 철이 없는 아들이 되어서
이곳저곳에서 깨지고 또 일어서다/ 외로운 어느 날 꺼내본 사진 속/ 아빠를 닮아있네
내 젊음 어느새 기울어 갈 때쯤 / 그제야 보이는 당신의 날들이가족사진 속에 미소 띤 젊은 우리 엄마 / 꽃피던 시절은 나에게 다시 돌아와서
나를 꽃피우기 위해 거름이 되어버렸던 / 그을린 그 시간들을 내가 깨끗이 모아서당신의 웃음꽃 피우길 / 피우길
이번에는 박노해 시인의 <스승>이라는 시를 읽어보겠습니다.
세상 직분 중에 으뜸은 사람 농사다 / 사람은 제자를 잘 길러야 하는 법
훌륭한 제자란 선생을 잡아먹는 자 / 훌륭한 선생은 추격하는 제자에 앞서 도망가는 자
생을 두고 끝까지 정진하며 / 나이 들수록 간소하고 단순하게
버리고 비우고 작아지고 날렵해져 / 제자에게 잡아먹히기 전
저 아득한 우주의 아가리로 몸 던져 / 꽃씨처럼 표표히 사라지는 자
어버이와 스승의 공통점은 먹이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박노해 시인은 스승은 제자에게 잡아먹히기 전에 아득한 우주로 사라지는 자라고 했지만, 잡아 먹혀야, 제자에게 자신을 먹으라고 주어야 진짜 스승입니다. 어버이와 스승의 위대함은 거기에 있습니다. 생명은 다른 생명을 먹어야 삽니다.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 생명은 다른 생명을 먹여야 생명다운 생명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생명의 본령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다른 생명을 먹을 생각만 하지 좀처럼 먹일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잘못 사는 것입니다. 생명의 본령에서 어긋나서 살기에 잘못 사는 것입니다. 갈등, 다툼, 시기, 사기, 분쟁, 전쟁 등 인간사 대부분의 문제는 거기서 발생합니다. 오직 남을 먹으려 할 뿐 남을 먹이려 하지 않음에서.
2. 성만찬에 담긴 뜻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전 제자들과 마지막 유월절 식사를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유월절이 되면 집집마다 양을 잡고 그 양고기를 먹으며 자기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감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출애굽 때 유대인들은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를 바름으로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복음서에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유월절 식탁에 어린양이 놓여 있었다는 말은 없지만, 당연히 그 식탁 위에도 어린양 고기가 있었을 것입니다. 제자들이 한참 식사를 하고 있을 때 예수님은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하셨습니다. 빵을 들어서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받아서 먹어라. 이것은 내 몸이다.” 그 이후에는 포도주가 든 잔을 들어서 감사 기도를 드리신 다음에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며 말씀하셨습니다. “모두 이 잔을 마셔라. 이것은 죄를 사하여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다.”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어린양으로 제자들에게 내어주신 것입니다. 유월절 어린양의 살과 피가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듯이 당신의 살과 피가 제자들과 이스라엘과 세상을 구원하길 바라시며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받아서 먹어라. 이것은 내 몸이다.” “모두 이 잔을 마셔라. 이것은 죄를 사하여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다.”라는 말씀을 우리는 성찬식 때마다 듣습니다. 누가복음 22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빵과 포도주를 나누어주시는 사이에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여라”라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기독교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성찬 제정사’의 말씀으로 받아들여 성찬의 예전을 만들어 이 천 년 동안 지켜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정말 후대의 사람들이 교회를 이루어서 성만찬 예식을 하라는 뜻에서만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여라’라고 말씀을 하신 것일까요? 아니면 다른 뜻이 그 안에 담겨 있는 것일까요?
예수님은 유월절 식사 자리에서만 당신의 살과 피를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늘 당신 자신을, 당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사람들에게 먹으라고 주셨던 것을. 예수님은 주린 자에게는 빵과 물고기를, 병든 자에게는 나음을, 죽은 자에게는 생명을, 소외된 자에게는 곁을 내어주셨습니다. 그리고 골고다 언덕 십자가 위에서는 당신의 목숨까지 주셨습니다. 성찬식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성찬식보다 중요한 것은 성찬식에 담긴 뜻입니다. 한 해 몇 차례 성찬예식에 참여한다고 해도, 아니 매주 성찬예식에 참여한다고 해도 성찬의 뜻을 실천하지 못한다면 성찬식은 작은 전병을 먹고 적은 양의 포도주를 마시는 형식적 의식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성찬식에 담긴 뜻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우리의 살과 피를 주며, 다른 이를 먹이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찬식에 담긴 뜻이며 그것이야말로 예수님을 바르게 기억하는 방법인 것입니다.
3. 기꺼이 먹이려는 사람
가나안의 신 중에는 몰렉이라는 신이 있었는데 인간이 자신의 자식을 불살라 바치면 복을 내려주는 신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극악한 방법으로 드리는 희생제사를 받고 복을 내려주는 신은 참된 신일 수 없습니다. 몰렉은 신에게 나의 가장 귀한 것을 바치면 신 또한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어야 한다는 인간의 계산과 자기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자신이 지켜야 할 가장 귀한 가치까지 기꺼이 희생시키는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낸 거짓신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몰렉과 비슷한 발음의 단어로 멜렉이 있는데 멜렉은 이스라엘의 왕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최고의 권력자인 왕 멜렉은 몰렉이 되기 십상입니다. 겉으로는 국가와 민족과 백성을 위한다고 말은 하지만 실상 권력을 이용해 백성을 희생시켜 자기 배만 불리는 왕이 많았습니다. 오늘날에도 그런 왕들이 많이 있지요. 그런데 왕만 몰렉이 아닙니다. 자신을 위해 다른 생명을 먹으려는 하나의 방향성만 가지고 살 뿐 다른 생명을 먹이기 위해 자기 자신을 내어주는 또 하나의 방향성을 갖추지 못하고 사는 이는 모두 몰렉일 수 있습니다. 말장난 같지만, 곳곳에서 몰렉이 늘어날 때 이 세상은 몰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황선미 작가가 쓴 <마당을 나온 암탉>이라는 동화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양계장 철망에 갇혀 알만 낳는 암탉 잎싹이 있었습니다. 잎싹은 알을 품어 병아리를 부화시키고 싶었지만 그런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잎싹은 알만 낳는 일을 하지 않기 위해 모이도 물도 먹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이내 바짝 말랐고 병든 닭들과 함께 양계장 밖으로 버려졌습니다. 그때 족제비가 나타나 잎싹을 잡아먹으려 덮쳤습니다. 위기의 순간에 나그네 청둥오리가 나타나 잎싹을 살려 주었습니다. 잎싹은 들판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들판에는 청둥오리와 수달 친구도 있었지만 잎싹의 생명을 노리는 족제비도 있었습니다. 나그네 청둥오리는 짝을 만나 알을 낳았지만 족제비가 그 짝을 잡아먹었습니다. 잎싹은 청둥오리의 알을 대신 품어주었습니다. 어느 날 밤 족제비는 나그네 청둥오리까지 잡아먹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잎싹이 품던 알이 부화했습니다. 잎싹은 새끼 청둥오리에게 초록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고 엄마와 새끼로 함께 살았습니다. 초록이는 무럭무럭 자랐고 점점 어엿한 청둥오리가 되어 갔습니다. 어느 겨울날 잎싹은 작은 굴 앞을 지나가다가 어떤 동물의 새끼 울음소리를 듣고는 멈추었습니다. 족제비의 어린 새끼들이었습니다. 마침 족제비는 초록이를 잡아 동굴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잎싹과 족제비의 눈은 마주쳤고 둘 다 멈칫했습니다. 잎싹은 재빨리 족제비 새끼를 죽일 듯이 움켜쥐며 말했습니다. “네 아기를 지키려면 초록이를 더 이상 건드리지 마!” 족제비는 초록이를 놓아주었고, 잎싹은 족제비 새끼를 놓아주었습니다. 청둥오리들이 이동할 때가 되었습니다. 청둥오리들은 약속이나 한 듯 한꺼번에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초록이도 엄마 잎싹에게 작별인사를 고하고는 먼 하늘로 날아갔습니다. 잎싹은 초록이가 멀리 날아가는 것을 바라보았고, 족제비는 그 잎싹을 바라보았습니다. 잎싹은 도망가지 않고 족제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 이제 나를 잡아먹어. 그래서 네 아기들 배를 채워.”
생명의 원칙은 준엄하면서도 단순합니다. 다른 생명을 먹어야 삽니다. 그것이 생명의 본능적 원칙입니다. 그러나 생명의 신앙적 원칙은 다릅니다. 모두가 먹을 생각만 하며 살면 이 세상이 멸망하니 다른 생명을 먹을 뿐 아니라 다른 생명을 먹이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 생명의 신앙적 원칙입니다. 어버이와 스승이 우리 삶의 본이 되는 이유는 그분들이 생명의 신앙적 원칙을 삶으로 보여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예수님이야말로 모든 인류의 참된 어버이요 스승이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가신 그 ‘먹이는 길’이 참된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어버이 주일과 스승의 날을 맞아, 우리를 위해 자신을 먹이로 내어준 어버이와 스승을 고맙게 기억합시다. 그리고 주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어버이와 스승이 우리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우리 또한 다른 이를 먹이며 살아갑시다. 그렇게 이곳저곳에서 기꺼이 자신을 다른 이에게 먹이려는 사람들이 늘어날 때 이 세상은 좀더 하나님 나라에 가까운 세상이 될 것입니다. 그 귀하고 아름다운 일을 함께 이루어가는 청파교우들과 이 시대 믿음의 백성들이 되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