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어딘가에
김재흥(2026-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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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실 때에 생긴 일은, 아담 한 사람이 범죄 했을 때에 생긴 일과 같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범죄로 많은 사람이 죽었으나,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더욱더 넘쳐나게 되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은 한 사람의 범죄의 결과와 같지 않습니다. 한 범죄에서는 심판이 뒤따라와서 유죄 판결이 내려졌습니다마는, 많은 범죄에서는 은혜가 뒤따라와서 무죄 선언이 내려졌습니다. 아담 한 사람의 범죄 때문에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죽음이 왕노릇 하게 되었다면, 넘치는 은혜와 의의 선물을 받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하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더 확실합니다. 그러니 한 사람의 범죄 행위 때문에 모든 사람이 유죄판결을 받았는데, 이제는 한 사람의 의로운 행위 때문에 모든 사람이 의롭다는 인정을 받아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죄인으로 판정을 받았는데, 이제는 한 사람이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인으로 판정을 받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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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 사람의 중요성
좋으신 주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평안과 새롭게 하시는 은혜가 교우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아직 꽃이 피기에는 이른 시기입니다만 제주에는 지난 주간에 첫 봄꽃이 피었습니다. 해발 500미터 중산간에 노란 꽃잎의 세복수초가 활짝 핀 사진을 보았습니다. 세복수초는 복수초의 일종으로 잎이 가늘고 길게 자라 세복수초라고 하는데 ‘봄의 전령’으로 불립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춥고 어두운 소식들 천지인데 꽃 사진을 보니 제 마음 속에도 봄이 환하게 찾아오는 것 같았습니다. 오늘 말씀을 나누는 가운데 교우 여러분 마음속에도 새로운 하늘의 기운이 환하게 찾아들길 소망합니다.
이란의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최악의 경제난 때문에 전국 곳곳에서 시민들이 일어나 시위를 벌였습니다. 지난 1년 동안 물가가 무려 50%가 넘게 올랐습니다. 정부는 군대를 앞세워 잔혹하게 진압했습니다. 현재 사망자가 3,000명이 넘는다, 아니다 1만 명이 넘는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인터넷이 차단되어 정확한 피해를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란의 경제가 이렇게 나빠진 것은 이란 정부가 핵무기를 만들려 해서 미국이 경제 제재를 했기 때문입니다. 이란의 통치자 알리 하메네이는 36년간 이란을 통치하고 있습니다. 독재입니다. 세계를 점점 어둡게 만들고 있는 지도자들은 하메네이만이 아닙니다. 지금 세계 곳곳에는 소위 스트롱맨이라고 불리는 지도자들이 많습니다. 그렇기에 세계 전체가 위기 상황을 맞은 것입니다. 물론 민주국가에서 지도자는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 지도자의 자리에 앉을 수 없습니다.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야만 가능합니다.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지도자의 등장은 그 나라의 국민들 속에 있는 이기성과 폭력성의 집단적 발현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도자 한 개인의 성향 또한 중요합니다. 지도자 한 사람이 바뀔 때 나라 전체 혹은 세계 전체의 분위기가 바뀌기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현절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1월 6일에 시작한 주현절기는 사순절이 시작되는 재의수요일 전까지 계속됩니다. 주현절은 얼마 전에 말씀 드렸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모습을 공적으로 처음 드러내심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주현절기를 단지 예수님께서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셨음을 기념하는 절기로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드러내신 세계가 어떤 세계였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하고, 그뿐 아니라 지금 우리는 과연 어떤 세계를 드러내며 살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2. 아담의 세계와 예수의 세계
바울은 로마서 5:12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아담의 죄는 아담과 하와의 죄라는 것을. 그 둘은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첫 번째 죄는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욕심을 부린 것입니다. 물론 뱀의 꼬임이 있었지만 아담과 하와에게는 분명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욕심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죄는 서로를 탓한 것입니다. 아담은 하와를 탓했고 하와는 뱀을 탓했습니다.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고 남을 탓한 것 또한 그들의 잘못이었습니다. 욕심과 남 탓, 그 잘못으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 정죄를 받고 영생하지 못하고 죽을 존재가 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저지른 죄의 결과는 정죄와 죽음인 동시에 흑암과 혼돈과 공허였습니다. 에덴의 동쪽으로 쫓겨난 아담과 하와의 삶이 그렇지 않았습니까? 사랑이 넘치던 남녀관계는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되었고, 편안하게 열매를 따먹던 생활은 죽는 날까지 수고하고 땀 흘려야 간신히 양식을 얻는 고된 노동으로 변했고, 돌보아야 할 형제를 죽이게 되었습니다. 아담의 죄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빛과 조화와 기쁨이 가득했던 삶을 창조 이전의 상태인 흑암과 혼돈과 공허가 가득한 삶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은 아담이 한 일과 정반대되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담은 죄를 가지고 왔지만 예수님은 은혜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아담의 죄는 정죄를 가져왔지만 예수님의 은혜는 무죄선언을 가지고 왔습니다. 아담의 죄는 사람들로 죽음의 지배를 받게 만들었지만 예수님의 은혜는 사람들로 생명을 누리게 만들었습니다. 요약하자면 아담의 죄는 이 세상에 정죄와 죽음을 가져왔지만 예수님의 은혜는 이 세상에 무죄선언과 생명을 가져왔다는 말입니다.
복음서에는 예수님의 은혜가 무죄선언과 생명을 가져온 경우가 많이 나옵니다. 마가복음 2장에 나오는 병자 치유 사건도 그런 경우 중 하나입니다. 한 중풍병자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데리고 예수님께로 찾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병자를 고쳐주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죄가 용서 받았다.’ 이상합니다. 왜 ‘네 병이 나았다’라고 하지 않으시고 ‘네 죄가 용서 받았다’라고 하신 것일까요?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그 중풍병자는 그가 지은 죄 때문에 병에 걸렸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병은 죄가 아닐 뿐더러 정죄받아야 할 일이 결코 아니지요. 중풍병자는 질병의 아픔뿐 아니라 사람들이 죄인 취급하는 시선이 주는 아픔까지 견뎌야 했습니다. 그의 삶은 흑암과 혼돈과 공허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에게 ‘네 병이 나았다’라고 하지 않으시고 ‘네 죄가 용서받았다’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그곳에 있던 사람들에게 이 사람은 죄인이 아니니 이제 더 이상 죄인으로 취급하지 말라는 공개적 무죄선언이었습니다. 이후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그의 다리에는 힘이 들어갔고 일어나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사람들은 그 중풍병자를 더 이상 죄인으로 바라보지 않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순간 그 사람 속에 오래토록 자리하고 있던 흑암과 공허는 사라지고 빛과 기쁨이 그의 영혼을 가득 채웠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단지 그 사람의 질병을 고쳐주신 것이 아니라 그를 재창조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되어 주신 것입니다.
3. 이 세상 어딘가에
인천의 어느 무인카페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아이가 자몽에이드를 마시기 위해 자판기에 돈을 넣었습니다. 그리고는 컵이 나오는 레버인 줄 알고 레버를 눌렀는데 얼음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잘못 눌렀던 것입니다. 아이는 당황해했습니다. 아이는 얼음을 치우다 말고 카페를 나가더니 1시간 만에 돌아왔습니다. 그 사이 얼음이 녹은 물은 다른 손님이 닦고 가셨습니다. 청소가 된 것을 확인한 아이는 CCTV에 꾸벅 인사를 하고는 쪽지를 손으로 들어 보이고는 자판기 옆에 살짝 꽂아 놓고 갔습니다. CCTV를 보던 무인카페 사장님이 카페에 와서 쪽지를 확인했습니다. 쪽지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사장님 죄송합니다. 제가 무인카페를 처음 와서 모르고 얼음을 쏟았습니다. 다음부터는 그러지 않고 치우겠습니다. 작은 돈이지만 도움 되길 바랍니다. 장사 오래오래 하시고 행복하게 지내세요.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
쪽지 속에는 천 원짜리 한 장도 들어있었습니다. 사장님은 쪽지를 읽다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인카페를 운영하며, 어지르고 그냥 가는 사람, 기물을 파손하는 사람, 물건을 훔쳐가는 사람들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많이 받았는데 그 쪽지를 보면서 그 상처들이 다 사라지는 듯했다고. 알아보니 그날 아이가 얼음을 쏟고 치우지 못하고 그냥 갔던 것은 학원 시간이 다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이는 학원에 가서 공부하는 내내 자신이 쏟고 온 얼음이 마음에 걸려서 다시 카페에 갔다고 말했습니다. 작은 한 아이의 진심어린 사과와 천 원짜리 한 장도 새로운 세상을 열 수 있습니다.
그 뉴스를 보는데 제 마음 속에서는 예전에 불렀던 노래가 BGM처럼 들려왔습니다. <이 세상 어딘가에> (박희진 작사 한태근 작곡)
이 세상 어딘가에 남이야 알든 말든 착한 일 하는 사람 있는 걸 생각하라
마음이 밝아진다
이 세상 어딘가에 하늘을 공경하고 이웃을 돕는 사람 있는 걸 생각하라
기뻐서 눈물 난다
욕심에 이끌려 살아가는 이들, 자기반성을 하지 못하고 남 탓만 하는 이들, 그래서 빛과 조화와 기쁨의 세상을 흑암과 혼돈과 공허의 세상으로 만드는 이들이 가득합니다. 우리 자신이 그런 사람 중 하나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이 그나마 버티는 것은 이 세상 어딘가에 욕심에 이끌리지 않고 도리에 이끌려 사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고, 남 탓하기보다는 자기를 반성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고, 그래서 흑암과 혼돈과 공허의 세상을 빛과 조화와 기쁨의 세상으로 재창조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의 세상입니다. 우리부터 새롭게 살아갑시다. 예수님이 그러셨듯이 흑암과 혼돈과 공허의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빛과 조화와 기쁨의 세상이 되어 줍시다. 겨울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 곁에 다가가 한 송이 꽃이 되어 줍시다. 우리가 꾸준히 그렇게 살아가다보면 언젠가 겨울 같은 이 세상에도 봄이 오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귀한 일을 함께 이루어가는 청파의 교우들과 이 시대 믿음의 백성이 되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