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가져오는 사람들
김재흥(2026-02-01)
듣기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니, 주 하나님의 영이 나에게 임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상한 마음을 싸매어 주고, 포로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갇힌 사람에게 석방을 선언하고, 주님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언하고, 모든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게 하셨다. 시온에서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재 대신에 화관을 씌워 주시며, 슬픔 대신에 기쁨의 기름을 발라 주시며, 괴로운 마음 대신에 찬송이 마음에 가득 차게 하셨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들을 가리켜, 의의 나무, 주님께서 스스로 영광을 나타내시려고 손수 심으신 나무라고 부른다. 그들은 오래 전에 황폐해진 곳을 쌓으며, 오랫동안 무너져 있던 곳도 세울 것이다. 황폐한 성읍들을 새로 세우며, 대대로 무너진 채로 버려져 있던 곳을 다시 세울 것이다.
-------------
1. 입춘
좋으신 주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평안과 새롭게 하시는 은혜가 교우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지난 한 주간 정말 많이 추웠습니다. 한국에 관광을 온 어느 러시아 사람이 그랬다지요. 서울이 러시아보다 더 춥다고. 장난 아니라고. 대한절기 이후 영하 10도의 날씨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래도 봄은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번 주 수요일인 2월 4일이 입춘입니다. 물론 입춘이라고 해서 봄이 오는 것은 아닙니다. 완연한 봄은 춘분쯤 느낄 수 있습니다. 입춘은 겨울의 한가운데 봄이라는 한 글자를 세우고 ‘이제 곧 이 겨울이 물러가고 봄이 올 것이다’라는 희망을 품는 절기입니다. 일종의 예언자적 절기인 것이지요. 지난 주중에 교회 화단을 살펴보았습니다. 군데군데 눈이 쌓여 있었고 나무들마다 가지가 바짝 말라 아무런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니 매화나무 가지 끝에 ‘겨울눈’이 보였습니다. 겨울눈은 겨울 동안 추위와 건조함으로부터 어린 싹과 꽃을 보호하는 일종의 보호막입니다. 겨울눈이 가지 여기저기에 많이 붙어있었습니다. 대견했습니다. 작년에 매화가 좀 아팠습니다. 꽃도 많이 피지 못했고 당연 열매도 거의 맺지 못했습니다. 또 병충해도 겪어서 이파리들이 허옇게 죽어갔습니다. 그런데 매화는 이렇게 추운 날씨 속에서도 새롭게 봄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올해도 시련이 찾아올지 모르는데 다시 새로운 싹과 꽃을 피울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겨울눈을 보면서 결기, 믿음, 소명 같은 것들이 느껴졌습니다. 코끝이 찡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겨울 세상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 나라와 나라 사이에 온기는 사라지고 냉랭한 기운이 가득합니다. 인류가 큰 희생을 치르며 지켜온 생명과 평화라는 가치가 탐욕과 폭력에 의해 무참히 무너지고 있습니다. 예전에 우리가 많이 불렀던 복음성가 가사처럼, 세상은 평화 원하지만 전쟁의 소문은 더 늘어가고 인간이 느끼는 고통과 두려움은 끝이 없습니다. 오늘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통해 우리 안에도 매화의 겨울눈 같은 결기와 믿음과 소명이 자리하길 소망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겨울 같은 세상에 봄을 가져오는 사람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2. 제3이사야와 예수님
성서학자들은 이사야서 56장부터 66장까지를 제3이사야서라고 부릅니다. 앞부분의 이사야서와는 시대적 상황과 내용이 달라서 다른 저자가 이사야의 이름으로 선포한 말씀으로 보고 있습니다. 제3이사야서는 유다백성이 바벨론 포로기를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이후가 배경입니다. 주전 587년에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 멸망해 유대인들은 바벨론에 끌려가 노예살이를 해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주전 539년 바벨론이 페르시아에 의해 멸망해 유대인들은 고향땅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나라 멸망 후 약 50년 만에, 1차 포로기부터 계산하면 70년 만에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이 살던 집은 무너진 채로 방치되어 있었고, 성전도, 성벽도 그러했습니다. 귀환자들은 힘을 합쳐 무너진 것들을 재건해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지도자들은 게을렀고 자기 배를 채우는 일에만 몰두했습니다. 재판관은 진실되게 재판하지 않았습니다. 의인과 경건한 자와 죄 없는 자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사람들은 우상을 섬겼습니다.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금식과 같은 경건행위는 하였지만, 행위만 따라할 뿐 일상 속에서 경건의 정신을 실천하지는 않았습니다. 착취와 폭력이 난무했고, 가난한 자를 보살피지 않았습니다. 황폐함, 불의, 하나님을 저버림, 폭력, 무정함. 그것이 제3이사야가 살던 시대의 모습이었습니다. 그 시대 또한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없는 겨울 세상이었습니다.
이사야 61장 1절 하반절부터 4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제3이사야가 꿈꾸었던 세상의 모습이 나옵니다. 가난한 자도 기쁘게 살 수 있는 세상, 마음이 상한 자가 치유받는 세상, 포로된 자가 자유해지는 세상, 갇힌 자가 석방되는 세상, 잘못을 저지른 자가 정당한 심판을 받는 세상, 슬픔을 감당할 수 없어 재를 뒤집어쓴 자가 재 대신 화관을 쓰는 세상, 괴로워 탄식을 쏟아내던 자가 기쁨의 찬송을 하는 세상, 황폐해진 곳들을 재건하여 사람이 살만한 곳으로 바꾸는 세상. 제3이사야, 그는 겨울의 세상을 살았지만 봄의 세상을 꿈꾼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겨울의 세상을 살면서 봄을 꿈꾸는 일은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그런 꿈은 누구나 꿀 수 있습니다. 제 3이사야가 놀라운 것은 겨울의 세상을 봄의 세상으로 만드는 일을 주님이 하실 일로, 누군가 이루어낼 일이라고 말하지 않고, 자신이 해야 할 일로 고백했다는 것입니다. 61:1 상반절입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니, 주 하나님의 영이 나에게 임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그런 일들을 하게 하셨다.’ 하나님의 영이 임한 사람은 무엇을 보았다, 들었다 말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겨울 같은 세상이 지나고 곧 봄의 세상이 온다고 말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자신이 직접 겨울 같은 세상을 봄의 세상으로 만드는 사람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이사야서 61:1,2의 말씀은 유난히 익숙합니다. 그 말씀이 누가복음 4:18,19에도 거의 그대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영이 내게 내리셨다. 주님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포로된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눈먼 사람들에게 눈 뜸을 선포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주고,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신 예수님께서는 이사야의 두루마리를 건네받으시고는 이 구절을 찾아 읽으셨습니다. 그리고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서 오늘 이루어졌다.” 놀라운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앞으로 이루어질 것이다’가 아니라 ‘이 말씀이 오늘 이루어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것을 ‘예언적 완료’라고 합니다. 강한 확신입니다. 내가 반드시 그런 세상을 이루겠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야말로 겨울 같은 세상에 봄을 가져온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로마의 무자비한 칼과 창에 짓눌린 사람들, 율법의 무거운 규율과 세금에 짓눌린 사람들, 냉랭하고 냉혹한 세상에서 지칠 대로 지친 사람들에게 다가가 한없이 따스한 봄이 되어주셨습니다.
3. 봄을 가져오는 사람들
우리나라는 영하 10도의 추위를 겪고 있지만, 미국 미네소타 주의 사람들은 영하 20도의 추위를 겪고 있습니다. 미네소타 주의 주요 도시인 미니애폴리스의 사람들은 아주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민세관단속국 ICE는 불법 이민자 단속을 명분으로 미니애폴리스에 수천 명의 요원을 투입했습니다. 단속과정에서 미국 시민권자인 르네 굿과 알렉스 프레티가 ICE 요원의 총을 맞고 사망했습니다. 영하 20도의 추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눈물을 흘리며 그들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습니다. 뉴스 보도에 따르면, 미니애폴리스의 이민자들은 한 달 이상 집 밖으로 나오고 있지 못합니다. 언제 ICE 요원이 집으로 들이닥칠지 몰라 밤에는 불빛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창문을 담요로 덮어놓기까지 합니다. 집 밖으로 나갈 수 없으니 식량도 구할 수가 없습니다. 이에 시민들이 나섰습니다. ICE 감시단을 조직해 요원들이 출몰하는 지역을 확인해 사람들에게 그 지역에 가지 말라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곳곳에 있는 교회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성직자들은 ICE 요원들에 의해 폭력을 당한 사람들을 위해 심리상담을 해주고 있습니다.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모여 기부자들로부터 물품을 받고 구호박스를 만들어 이민자 가정에 보급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교회는 한 주에 2,000가구에 물품을 배달하고 있다고 합니다.
미니애폴리스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장로교회의 마가렛 폭스 목사는 지난주일 설교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금요일에 수만 명이 모인 평화시위에서 많은 이와의 연결을 통해 큰 힘을 얻었다고, 그러나 토요일 오후에 프레티의 죽음으로 희망이 깨어지는 것을 느꼈다고. 그리고 그는 이사야서의 말씀을 인용하며 “이 땅의 누군가 모든 권력을 가진 것 같아보여도 이 세상의 진정한 통치자는 하나님이십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큰 슬픔 속에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싶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함께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돌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일어섰습니다. 우리는 저항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강합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위로입니다.” 설교가 끝났을 때 예배당에 있던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배 중이었음에도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보냈습니다. 이민자들을 위한 미니애폴리스 사람들의 연대와 지지를 보면서 마음이 찡했습니다. 목사 까운을 입고 무장한 ICE 요원 앞에 서는 목회자들, 휴대폰 하나를 들고 맨몸으로 총에 맞서는 사람들, 한 주에 4일씩 나와서 이민자 가정에 보낼 음식과 생활용품을 박스에 담는 사람들. 그들의 모습이 폭스 목사의 설교처럼,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위로입니다. 그 사람들이야말로 겨울 세상에 봄을 가져오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문학평론가 신형철 선생은 <인생의 역사>라는 책에서 ‘돌봄’이라는 말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돌봄이란 무엇인가. 몸이 불편한 사람을 돌본다는 것은 그가 걷게 될 길의 돌들을 골라내는 일이고, 마음이 아픈 사람을 돌본다는 것은 그를 아프게 할 어떤 말과 행동을 걸러내는 일이다. 돌보는 사람은 언제나 조금 미리 사는 사람이다. 상대방의 미래를 내가 먼저 한번 살고 그것을 당신과 함께 한번 더 사는 일. 그것이 돌봄이다. 누군가를 돌보기 위해서는 미리 살아야 한다는 말, 그를 위해 그의 입장이 되어 길을 미리 걸어보아야 한다는 말에 적극 동의합니다. 그런데 ‘돌봄’만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봄의 나라는 그냥 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봄의 나라를 미리 사는 사람을 통해 옵니다. 그러나 위기의 시대를 맞아 모두가 이기적으로 살아갈 때 이기성을 버리고 내가 아닌 다른 이를 돌보며 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본능에 맞서야 하기 때문입니다. 힘을 가진 불의한 권력자가 ‘저리로 가!’하며 한쪽을 가리켜 보일 때 그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엄청난 불이익을 당하거나 때로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이기적인 본능에 저항하여 내가 아닌 다른 이를 돌볼 때, 그리고 불의한 권력자가 가리키는 방향이 아니라 하나님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내디딜 때, 그때 하나님의 나라, 봄의 나라는 시작됩니다.
겨울은 우리의 생각보다 오래 지속될 것입니다. 3년, 5년, 10년이 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주눅들지 맙시다. 이 세상의 참된 통치자는 하나님이십니다. 겨울은 가고 봄은 옵니다. 반드시 옵니다. 제3이사야처럼, 예수님처럼, 미니애폴리스의 시민들처럼, 교회화단의 매화처럼 겨울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는 지금 우리부터 봄이 됩시다. 우리부터 봄을 미리 살아갑시다. 하나님 나라를 미리 살아갑시다. 나중이 아니라 지금, 가난한 사람을 돕고, 마음이 상한 자를 위로하고, 불의에 저항하고, 슬퍼하는 사람에게 기쁨이 되어 주고, 황폐해진 곳을 사람과 뭇 생명이 살만한 곳으로 바꾸어나갑시다. 이곳저곳에서 그런 사람들이 늘어날 때 봄은 자연스레 찾아올 것입니다. 그 귀하고 아름다운 일을 함께 이루어가는 청파교우들과 이 시대 믿음의 백성들이 되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