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조율의 시간
김재흥(2026-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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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곧 성령이 예수를 광야로 내보내셨다. 예수께서 사십 일 동안 광야에 계셨는데, 거기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다. 예수께서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셨는데, 천사들이 그의 시중을 들었다.
1. 사순절, 조율의 시간
좋으신 주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평안과 새롭게 하시는 은혜가 교우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시길 빕니다. 설 연휴 중 맞는 주일입니다. 목회실은 지난 한 주간을 지내며 설 명절이 다가온다는 것보다 사순절이 다가온다는 것에 더 마음을 쓰면서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설날 바로 다음 날이 사순절이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이기 때문입니다. 해마다 재의 수요일 저녁이면 교회에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며 사순절을 시작했는데 올해는 설 연휴가 겹쳐 그렇게 하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고민 끝에 재의 수요일 가정예배 순서지를 만들었습니다. 설 연휴 마지막 날 각 가정에서 재의 수요일 예배의 시간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교회는 재의 수요일부터 부활절 전날까지 주일을 뺀 40일을 사순절로 지켜왔습니다. 이 기간 동안 교인들은 금육, 금욕, 짧은 금식 등을 행하며 예수님의 고난에 조금이라도 동참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국교인 나라들에서는 40일 넘게 금육과 금욕의 삶을 살아야 했기에 사순절 전에 고기도 먹고 즐기는 축제를 벌였는데 그게 카니발입니다. 카니발은 ‘축제’로 알고 있지만, 카르네 발레Carne vale ‘고기여 안녕’이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합니다. 기독교뿐 아니라 대부분의 종교는 일상의 흐름을 끊고 삶을 재정비하도록 도와주는 특별한 절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슬람은 한 달 동안 해가 떠 있는 동안 물도 마시지 않는 절식을 행하며 신께 기도하는 ‘라마단’이라는 절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 시리아 친구 압둘 와합은 라마단 기간 중 낮에 만나면 다른 사람들이 식사할 때 정말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습니다. 이야기만 나누다 갑니다. 얼마나 미안한지 모릅니다. 불교에서는 안거安居라는 기간이 있는데 수행자들이 여름에 90일, 겨울에 90일 수도도량 밖으로 나가지 않고 수행에 집중합니다. 특별히 무문관 수행이라는 것이 있는데 문을 밖에서 닫아걸고 감옥 같은 작은 방 안에서 하루 한 끼만 먹으며 묵언 수행을 하며 90일을 지냅니다. 깨달음을 향한 구도자의 결기가 느껴집니다.
혹시 여러분은 듣기 힘들어 하는 노래가 있으십니까? 주변을 보면 트로트를 듣기 힘들어 하는 분도 있고, 힙합을 듣기 힘들어 하는 분도 있습니다. 저는 조율되지 않은 악기로 연주되는 노래가 가장 듣기 힘듭니다(제가 절대음감은). 가끔 조율이 제대로 되지 않은 현악기로 연주하는 노래를 들을 때가 있는데 참 듣기 힘들더군요. 조율이 참 중요합니다. 그래서 모든 오케스트라는 연주 전 반드시 조율의 시간을 갖고 연주를 합니다. 명곡이라 하더라도 조율이 되지 않은 악기들로 연주가 된다면 아주 듣기 싫은 소음이 될 뿐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자기의 생각과 주장이 맞는 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지금 틀린 음을 맞는 음이라 여기며 계속 연주하고 있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나의 음이 조율이 잘된 음인지 조율이 잘못된 음인지는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알 수 있고, 또 말씀에 비추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사순절은 조율의 시간입니다. 나의 음에 상대를 맞추게 하려는 시도를 멈추고 절대음 -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음성에 나를 맞추는 우리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2. 성령과 사탄 사이의 싸움
오래 전부터 교회는 재의 수요일이 있는 주일에 예수님의 산상변화에 관한 말씀을 묵상해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상변화 사건 이후 제자들과 예루살렘을 향한 마지막 순례를 시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예수님께서 공생애 시작 전 광야에서 40일간 기도하시고 시험을 받으신 말씀을 묵상하려 합니다. 그 말씀이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가며 저마다 ‘내가 절대음이다’ 주장하는 우리를 조율해줄 진정한 절대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전에 광야에서 기도하시고 시험 받으신 말씀은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 나옵니다. 그런데 마태와 누가복음은 그 광야에서 예수님께서 받으신 세 가지 시험을 기록하고 있는 반면, 마가복음은 “성령이 예수를 광야로 내보내셨다. 예수님께서 사십 일 동안 광야에 계셨는데, 거기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다.”라고 짤막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세 가지 시험에 대한 부분은 세 복음서가 다 다르지만, 예수님께서 사십 일 동안 광야에 계셨다는 것과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다는 말씀은 같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같은 것은 성령께서 예수님을 광야로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예수님을 광야로 보내셨는데 그곳에서 예수님께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다? 성령과 사탄이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좀 이상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 삶의 실상입니다. 우리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성령과 사탄 사이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이끌고 있는 것이 성령인지 사탄인지 잘 분간해야 합니다. 사탄에게 이끌려 살면서도 ‘나는 성령에게 이끌려 살고 있다’라고 착각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인간이 이기기 힘든 존재와 힘을 상징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가장 이기기 힘든 것은 무엇일까요? 아내? 남편? 자식? 직장 상사? 돈? 오래되고 그릇된 제도?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에게 있어 가장 이기기 힘든 것은 자기 자신일 것입니다. 좀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자기의 욕구와 욕망일 것입니다. 마태와 누가복음이 소개하고 있는 사탄의 세 가지 시험 - 돌로 떡을 만들어 먹어보라, 높은 성전에서 뛰어내려보라, 내게 절을 해보라는 시험은 예수님이 극복해야만 했던 육체적 욕구와 명예욕과 권력욕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욕구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 욕구가 우리에게 신적인 것이 되어 우리가 그 욕구를 누리며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욕구가 우리를 이끄는 대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욕구가 우리를 삼키게 되면 우리는 욕구의 노예가 되어 기꺼이 다른 이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공동체의 질서를 깨트립니다. 예수님의 광야 40일 기도와 싸움은 예수님만의 기도와 싸움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기도와 싸움이어야 합니다. 독일에서 출판된 <어린이 성경>(지은이 : 베르너 라우비, 그림 : 안네게르트 푹스후버)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성경말씀을 어린이가 읽기 쉽게 동화형식으로 풀어 썼으며 중요 장면들을 그림으로 그렸는데 깊이가 있는 그림들이 많습니다. 숨빛청파교회의 손성현 목사님이 번역하여 우리나라에서도 출판되었습니다. 한 장 한 장 읽다가 예수님의 광야 시험 장면에서 깜짝 놀라 멈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광야에서 40일 동안 예수님을 시험한 사탄의 얼굴이 예수님의 얼굴과 같은 얼굴이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욕망과 마음과 생각과 별로 싸워 본적이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자주 싸웁니다. 그에게는 자신의 욕망과 마음과 생각이 ‘절대’이기 때문입니다. 몇 번 말씀드렸듯이, 많은 사람이 십계명의 제1계명인 ‘나 외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를 철저하게 잘 지키며 살아갑니다. 나 외에는 다른 신이 없습니다. 이 때의 나는 하나님이 아니라 나 자신과 나의 욕망과 마음과 생각입니다. 십계명의 제1계명이 ‘나 외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인 이유는 그 계명이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지만 사람들이 가장 잘 지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와 반대로 자신의 욕망과 마음과 생각과 힘써 싸우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잘 싸우지 않습니다. 그에게는 자신의 욕망과 마음과 생각이 ‘절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에게도 욕망과 마음과 생각이 있습니다. 그런데 절대가 아니라 상대로 존재하지요. 그는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과 다른 이의 마음에 가닿게 됩니다. 그런 이가 사탄이 아니라 성령에 이끌려 사는 사람입니다.
3. 싸워야 오는 봄
복음서를 읽다 보면 예수님께서 자주 제자들과 떨어져 홀로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공생애 기간 동안에 예수님께서 드리셨던 기도는 광야 40일 기도의 연장이자 지속이었습니다. 십자가를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던 예수님의 모습을 떠올려 보십시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매일매일 계속계속 자기 자신과 치열하게 싸우기 위해 기도하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결국 자신의 욕망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셨습니다. 그 승리의 주님이 우리의 희망이요 모범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욕망과 싸워 이길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그 싸움에서 질 수도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주님을 보며 다시 일어나 싸우면 됩니다. 그게 우리의 믿음이요 신앙입니다.
겨울에서 봄으로 옮겨가는 이맘때면 떠오르는 시가 있지요. 이성부 시인의 <봄>이라는 시입니다. 시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맞습니다. 아무런 기다림이 없어도 봄은 찾아옵니다. 그런데 기다리고 기다려도 오지 않는 봄도 있는 것입니다. 시인은 그런 봄을 ‘더디게 오는 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봄을 간절히 기다리던 시인은 마침내 찾아온 봄을 두 팔 벌려 껴안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봄은 결코 그냥 오는 것이 아닙니다. 겨울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오는 것입니다. 이성부 시인은 이 시를 1970년대 초반에 썼습니다. 그 당시는 군사정권이 독재를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군사정권은 사건을 조작해 자유와 민주를 부르짖던 수백 명을 구속하고 수십 명을 사형시켰습니다. 시인은 그 냉혹한 겨울을 이길 힘은 그 겨울에 맞서 치열하게 싸우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외부에 있는 겨울과도 싸워야 하지만 우리 내부에 있는 겨울과도 치열하게 싸워야 합니다.
90일간 무문관 수행을 한 사람들은 90일이 지나면 밖에서 잠그었던 자물쇠가 풀리며 밖으로 나오게 됩니다. 그날을 회향廻向일이라고 합니다.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뜻이 아니라 수행을 통해 얻게 된 것을 자신을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바꾸어 세상 사람들을 향해 나누어준다는 뜻입니다. 사순절 순례길을 통해서 우리에게도 그런 아름다운 변화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다른 무엇보다 우리 속에 있는 그릇된 욕망과 그릇된 절대와 힘껏 싸워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기도와 절제와 나눔이라는 조율의 도구가 있습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만이 절대이심과 우리가 절대가 아님을 고백하고, 우리의 과도한 욕구를 절제하고, 하나님이 주신 것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며 살아갑시다. 많은 이가 하나님이라는 참된 절대에 의해 조율된 삶을 살아갈 때 이 세상은 보다 조화롭고 평화로운 세상이 될 것입니다. 그 귀한 일을 함께 이루어가는 청파의 교우들과 이 시대 믿음의 사람들이 되길 간절히 기원합니다.